'늙지 않고 아프지 않는 지혜, 줄기세포에서 찾은 영성'
"일본에서 재생의료 기술의 실용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체줄기세포 기술로 미국에서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며 볼티모어에 줄기세포 캠퍼스의 청사진을 그리기까지 꼬박 25년이 흘렀다."
라정찬 네이처셀 회장의 신간은 이렇게 시작한다. 2026년 2월 14일 출간된 '늙지 않고 아프지 않는 지혜, 줄기세포에서 찾은 영성'은 한 연구자의 신념 고백이라기보다, 재생의학 25년 현장에서 축적된 문제의식과 임상적 관찰을 집대성한 기록에 가깝다.
저자는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를 통해 도달한 하나의 결론을 제시한다. 노화와 만성질환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 시스템의 붕괴' 문제라는 것이다.
"회복이 손상을 따라가지 못할 때, 우리는 늙는다"
책 1부에서 라 회장은 노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회복이 손상을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한 상태,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노화의 실체다."
노화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노화가 환경과 신호, 생활 방식의 변화 속에서 회복 신호가 약해진 결과임을 보여준다고 그는 설명한다. 신호가 바뀌면 세포의 행동이 바뀌고, 환경이 회복되면 기능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역노화'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상 복구 프로그램을 다시 가동시키는 방향으로 생리학적 질서를 재정렬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갑자기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손상이 회복을 앞지르기 시작할 때 아프게 된다."
통증 역시 몸의 고장이 아니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덧붙인다.
줄기세포는 '만능 세포'가 아니라 조정자
라 회장은 줄기세포를 신비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특성을 강조한다.
줄기세포는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으며, 필요 이상으로 증식하지도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조용히 물러난다. 그는 줄기세포를 "혼자서 재생을 이루는 존재가 아니라 몸 전체가 다시 협력하도록 만드는 조정자이자 지휘자"로 규정한다.
이 같은 관점은 책 2부에서 제시되는 'R4'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①Regeneration(재생) ②Rejuvenation(젊어짐) ③Revitalization(생기 회복) ④Recreation(재구성)이라는 4단계다.
재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사건이 아니라, 멈춰 있던 생리학적 기능이 다시 작동하도록 환경이 허락되는 과정이다. 임상 현장에서 즉각적인 변화가 드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재생은 급격한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 흐름이며, 기존 세포들이 다시 깨어나 협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젊어짐(Rejuvenation) 역시 외형의 변화가 아니다. 손상을 받아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resilience)이 살아나는 상태다. 그 중심에는 염증 조절과 미세혈관 회복, 면역 균형 회복이 있다. 줄기세포는 염증 신호의 폭주를 진정시키고, 조직이 다시 회복을 시작할 수 있는 생리학적 여유를 만든다.
이어지는 Revitalization 단계에서는 신경·면역·내분비 네트워크가 재조율되며 전신의 기능적 예비력이 회복된다. 수면의 질이 개선되고, 통증이 줄고,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변화는 단번의 기적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Recreation 단계에서는 단순한 기능 회복을 넘어 조직 재구성과 기능 재배치가 일어난다. 손상된 시스템이 복구된 이후, 몸 전체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회복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안정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4H로 풀어낸 줄기세포의 작동 원리
3부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의 핵심 기전을 4H로 정리한다.
①Homing(손상 부위 탐색) ②Homeostasis(항상성 회복) ③Healing(조직 치유) ④Helper(환경 조성)다.
라 회장은 특히 Homing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줄기세포 치료에서 핵심은 "어디에 넣느냐가 아니라 세포가 스스로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줄기세포는 염증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고, 혈관과 미세순환을 개선하며, 신경과 면역의 과민성을 낮춘다.
그는 줄기세포를 '주인공'이 아닌 '헬퍼'로 정의한다. 줄기세포는 새 조직을 억지로 만들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 그 환경 위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연구와 산업을 관통한 25년의 질문
이 책은 이론적 고찰에 머물지 않는다. 일본 재생의료 실용화 경험, 미국 난치병 환자 치료, 해외 줄기세포 캠퍼스 구상 등 저자의 행보는 연구실을 넘어 산업과 임상 현장을 관통한다.
바이오스타줄기세포기술연구원을 설립하고 25년간 줄기세포 연구를 이어온 그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늙지 않고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가."
종교적 서술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화는 숙명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줄기세포는 그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는 매개다.
재생의학을 둘러싼 기대와 논란이 공존하는 시대. 라정찬 회장의 신간은 줄기세포 치료를 기적의 기술이 아닌, 질서를 회복하는 과학으로 설명한다.
늙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아픔을 운명으로 체념하기 전에, 다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는 그의 문제 제기는 재생의학 담론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