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뜯어보니, 건보공단 주장 줄줄이 배척 당해
불순물 기준 없었는데 시험 안했다는 무리한 논리

챗GPT작성 이미지= 최선재 선임기자 작성 

라니티딘 NDMA 사태와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구상금 소송은 제약회사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건보공단은 제약사들이 사전에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불순물 위험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공단 주장을 배척하고 제약사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라니티딘, 니자티딘, 메트포르민 등 여러 성분 의약품에서 NDMA가 잇따라 확인되면서 촉발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환자 보호를 위해 재처방·재조제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우선 집행한 뒤, 2021년 이를 제약사들에 구상금 형태로 청구했다.

건일제약 등 22개사는 구상금을 이미 납부했지만 2022년 7월 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제약사들이 라니티딘 불순물 도출 가능성을 사전에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공단에 납부한 구상금을 부당이득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최근 법원이 제약사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판결을 향해 업계 이목이 쏠렸다. 건보공단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고 판결이 확정되면서 제약사들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의지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행정 소송 전문 변호사는 "정부가 1심 재판에서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2심에서 정부 재정으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기 때문에 승산이 조금만 있어도 적극적으로 항소를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약사의 주의의무 부족을 입증하기 위한 공단의 모든 주장이 배척된 점이 항소 포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히트뉴스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소송 과정에서 제약사들이 라니티딘에서 NDMA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수차례 주장한 대목이 나온다.

먼저 건보공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싱가포르 의약품청(HSA)의 시험법 게시 일자를 근거로 제약사들이 최소한 그 시점부터는 자체 시험을 실시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HSA가 2019년 9월 12일, FDA가 13일에 라티티딘 NDMA 검출 시험법을 각 기관 홈페이지에 게재했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시험법 공개 시점에 불순물 시험을 실시하고 5일(통상 시험에 소요된 기간)이 지났다면 식약처의 판매 중단 조치(9월 26일) 이전에라도 라니티딘 불순물 위험을 사전에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FDA가 시험법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9월 12일과 24일 사이에 제약사들이 시험법을 적용해 자체적으로 라니티딘 불순물을 파악 할 수 있었다는 공단 주장에 현실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FDA 등이 공고한 NDMA 검출 시험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각 국가마다 다른 시험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제약사들이 해외 기관이 발표한 시험방법을 즉시 확인하고 적용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FDA가 시험법을 공개했더라도 국내 식약처가 시험법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제약사들이 선제적으로 불순물 검출 시험을 하기에 국가마다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보공단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2018년 제약사들이 발사르탄 불순물 사태를 경험했기 때문에 해외 시험법을 참고해 선제적으로 불순물 위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도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공단은 재차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발사르탄과 라니티딘 불순물 발생의 성격 자체가 다르고 판단했다. 

법원은 "발사르탄 성분 의약품은  원료의약품 제조공정에서 용매 등으로 인하여 NDMA가 생성될 수 있다"며 "그러나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서는 위 성분의 화학구조적 특성상 어떠한 외부 원인 없이도 자체적인 분해·결합을 통해 NDMA가 생성될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발사르탄과 라니티딘 성분은 그 화학적 구조가 상이하고 NDMA 발생 기전도 상이하다"며 "제약사들이 선행 사건에 비추어 이 사건 라니티딘 의약품에서 NDMA가 검출될 가능성을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약사들이 FDA가 공고한 시험법을 적용해 NDMA 검출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약사들이 라니티딘 성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원은 식약처가 라니티딘 의약품 판매 중단 이후 2019년 9월 26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잠정관리기준을 공표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과 관련한 NDMA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놓은 국가는 없었다고 언급했다. 

법원은 "미국 또한 2019년 9월 13일 시험법을 게재하고 14일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서 NDMA가 극미량검출됐다고 발표했을 뿐 검출량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9월 26일 식약처 판매 중단 당시 미국 FDA도 라니티딘 불순물 잠정관리기준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식약처 판매 중단이 이뤄진 2019년 9월 26일 이전에는 제약사들이 라니티딘 의약품의 NDMA 검출 시험을 수행해도 검출 결과가 의약품의 안전성에 문제를 초래하는 정도인지 여부를 제약사들이 평가할 만한 기준이 없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즉 건보공단이 라니티딘 의약품 판매 중단으로 인한 재처방료 등의 대금을 국가 예산으로 지급한 이후 제약사들에 청구하는 근거로 '제약사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점들을 법원이 전부 배척한 것이다. 

행정소송 전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사후적으로 드러난 위험을 근거로 기업의 주의의무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당시 과학적·제도적 기준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NDMA가 검출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제약사의 과실을 추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법원이 해외 규제기관의 시험법 공개 시점과 국내 기준 부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견 가능성을 엄격하게 판단한 점도 의미가 있다"며 "이는 향후 유사한 의약품 불순물 사안에서 공적 재정 부담을 어디까지 민간 기업에 전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건보공단이 항소를 포기했다는 점은 1심 판결의 법리적 안정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며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서 향후 불순물 관련 행정·민사 책임을 둘러싼 분쟁 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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