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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일괄인하 13년, 정부와 업계는 말한대로 약속지켰나
지난해 한 약업계 관계자를 만났다. 정부부터 산업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험을 거친 그 이기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11.28 약가개편'으로 흘렀다. 그는 정부의 추진 속도와 자정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신약개발은 물론 제네릭을 '바르게'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약가 개편 방향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급해요. 약가를 조금씩 조정하면 노력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일괄로 확 내려버리면 자정 기능이 망가져요. 노력한 회사나 안 한 회사나 똑같이 맞으니까. 그러면 반발만 생기고, 그 반발이 엉뚱한 데로 튀어요. 2012년 장충체육관에서 머리띠 두르고 시위했던 거 기억나세요? 차라리 시장 논리로 정리하게 놔두는 게 맞아요. 노력 안 하는 데는 어차피 망하게 돼 있어요. 근데 정부가 자꾸 한꺼번에 밀어붙이니까 (중략) . 그래야 자정할 시간이라도 있죠."
제법 길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SOLO'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이 프로에는 연애가 서툰 사람들 혹은 이혼을 한 이들이 짝을 찾아 나선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알 정도니 유명한 것이겟는데, '생각을 HIT'를 쓰기 위해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몇 편을 봤다.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유형이 등장한다. 진짜 매력 있고 빛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상대방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 적극적으로 자기 어필에 나서지만 정작 상대가 뭘 원하는지는 묻지 않는 사람. 어렵게 커플에 성공하고도 방송 후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 그리고 끝내 솔로로 남는 사람들까지.
약가 개편 국면의 제약업계는 프로그램 속 인간 군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 중 눈에 띄었던 출연자들은 본인은 충분히 매력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상대방 눈에는 그렇지 않은 유형이다. 내 노력이 상대가 원했던 방향이었는지는 돌아보지 않는 이들이다.
그가 했던 이야기 중 같은 계열의 약이라도 음식과 영향, 반감기, 약동학적 특성이 다르지만 제품을 빠르게 내기 위해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동일한 프로토콜을 적용하다 보니 통계적 동등성은 통과해도 치료학적 동등성은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과도 겹쳐보였다. 경쟁력 없는 회사들도 제네릭을 팔며 연명하고 있고 오너들의 관심은 신약개발이나 시장 진출보다 가업 승계와 자산 관리에 쏠려 있다는 말과도 이어졌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때를 떠올려 보자. 업계는 장충체육관에 모여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했다. 정부 역시 놀랐다. 이와 동시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당시 한국제약협회) 집행부는 이와 함께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CP 위반 업체는 명단을 공개하겠다', '대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총대를 맨 이행명 당시 이사장과 이경호 회장은 리베이트 의심 업체에 세 차례나 설문조사를 거쳤고 회장이 직접 혐의 업체를 방문해 CP 준수를 당부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유통질서 정상화를 외쳤다.
이와 함께 업계의 노력을 3상 임상 비용을 조세감면 대상에 포함해달라, 국내개발 신약의 적정 약가를 보장해달라, 실거래가조사 약가인하 주기를 매년에서 3년으로 늘려달라, R&D 기업 약가인하 감면기준을 확대해달라고 밝혔다. 자정과 지원을 모두 요청했다. 여기에 정부도 화답했다.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차마 도장은 찍지 않고 다시 손잡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업계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 때 이혼도장이라도 찍을 걸' 하는 말이 나올 법 하다. 3상 임상 비용 조세감면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국내개발 신약 약가는 적정 수준을 보장받기는커녕 글로벌 진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실거래가조사는 개편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진행되고 국내사를 위한 약가는 그때보다 더 춥고 엄하다. 건보 재정 논리라는 대의 명분은 업계가 외친 '순응의 대가'에 비해 보잘 것 없에 느껴질 법도 하다.
흥미롭게도 정부의 마음 역시 같다. 그 해 '공개하겠다'던 CP 위반 업체들은 과연 지금 어떻게 됐을까.리베이트는 사라지지도 않았다. 품목별로 다르지만 CSO에 많게는 60~70% 비용을 지급하는 영업 구조, 개인 일탈로 포장되는 조직적 관행 등은 여전하다. 국민이라는 거대한 아이가 있어 차마 이혼서류에 도장은 찍지 못한다는 세간의 수많은 말들이 둘의 입장 사이 그대로 포개진다.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업계의 움직임도 같다. 우리는 다르다는 회사, 연구개발에 힘을 기울이는 회사가 벌써부터 나온다. 개중 진짜도 있지만 아닌 곳도 있을 것이다. 본인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출연자처럼. 그리고 결국 원하는 인연을 얻지 못한 채 솔로로 남는 회사도 나올 것이다.
약가개편은 그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에서 다소 의문이 든다. 노력한 회사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회사가 떠나는 구조가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정치력 있는 곳, 버티기 잘하는 곳만 남고 정작 묵묵히 제대로 만들어온 곳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하는 고민에서다.
프로그램에서는 늘 매력 있는 사람이 선택받는 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사람, 타이밍 잘 잡는 사람, 때로는 그냥 운 좋은 사람이 커플이 된다. 진짜 괜찮은 사람이 끝까지 솔로로 남기도 한다. 약가 개편 이후의 업계 지형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결국 업계 스스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손에 든 도장을 내려놓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 산업이 커나가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신약과 기술을 확보할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십분 공감한다. 무엇보다 13년간 제약업계에 성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큰 회사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작은 회사들도 아이디어 제품을 내놓으며 산업을 풍성하게 했다. 조금은 빛이 덜해도 정말 한 발 한 발을 성실히 내딛은 이를 위해서라도 그 기준은 더욱 선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SOLO는 수많은 시즌과 새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진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의 테이블은 그렇지 못하다. 다음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막강한 행정권력'이 마음을 열어줘야 테이블도 차려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