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품안전업체서 '의약품' 분야만 취소 성공
해외 분쟁 가능성 등 문제 '싹' 잘라내나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본사 전경 / 사진=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본사 전경 / 사진=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와 이름을 두고 벌인 상표권 소송에서 패소했던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이번엔 역할을 바꿔 상표권을 깨는 공격수로 나섰다. 프랑스 식품안전업체가 가진 영문 미사용 상표를 무효화시킨 것인데 향후 해외에서 분쟁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특허청 제공 특허정보서비스 '키프리스'에 따르면 특허심판원은 11일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프랑스 LCB Food Safety를 상대로 제기한 'LCB' 상표 취소심판에서 리가켐 측 손을 들어주는 청구성립 심결을 내렸다.

이번에 취하된 상표는 2013년 출원된 국내 및 해외 상표다. 상표권의 경우 해당 상표의 성격에 따라 소위 '0류'라고 불리는 분류기호를 사용하는 데 이번에 리가켐이 취소 심결을 받아낸 것은 제1류(농업·식품 분야용 화학제품)와 제5류(소독제, 의약품, 수의약품, 각종 살균제·살충제·제초제 등) 전반이다. 특히 제5류의 경우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상표 등록에서는 반드시 들어가는 분류다.

우리 나라 특허 체계에서 상대방의 상표권을 무너트리는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는 것은 이번에 제기한 '불사용 취소심판'이다. 특허가 등록된 이후 3년 이상 등록된 분류로 제품이 사용되지 않는 경우 해당 심판을 제기해 상표권 보유자가 가진 권리를 없앨 수 있다. 여기에는 리가켐의 사례처럼 특정 분류만을 취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상표를 가진 사람이 사용권을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분류의 상표권이 취소된다. 물론 심판을 제기하는 측은 '선출원'을 통해 불사용 취소심판 이후 바로 출원이 가능하도록 '찜하기'도 가능하다.

리가켐은 실제 5월 7일 불사용을 이유로 취소심판을 청구했고 약 7개월 만에 청구성립 심결을 받아냈다. 실제 피청구인인 LCB Food Safety는 프랑스의 식품 안전을 관리하는 업체로 약 20여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은 점을 미뤄보면 국제 상표만 등록했을 뿐 한국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불사용 취소심판이란?

상표권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등록 후 계속해서 3년 이상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누구든지 그 상표등록의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목적: 상표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보유해 다른 사업자의 상표 사용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
법적 근거
상표법 제119조
미사용 기간
계속 3년 이상
청구 권한
이해관계인 누구나
입증 책임
상표권자가 부담

핵심 포인트

입증 책임

피청구인(상표권자)이 사용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됩니다. 청구인은 단순히 미사용 가능성만 주장하면 되며, 실제 사용 여부를 증명할 책임은 상표권자에게 있습니다.

⚖️ 실무상 효과

특히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상표만 등록하고 실제 사업을 하지 않는 경우, 국내 기업이 해당 상표 사용을 원할 때 효과적인 법적 수단이 됩니다.

전략적 활용

신규 사업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이 선점된 상표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 해당 상표의 실제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불사용 취소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상표법 제119조 제1항
"상표권자·전용사용권자 또는 통상사용권자 중 어느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등록상표를 그 지정상품에 대하여 취소심판청구일 전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누구든지 그 상표등록의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리가켐이 상표권 심판을 제기하면서까지 영문명 상표를 취소한 공격적 행보는 과거 레고와의 상표권 분쟁에서 얻은 교훈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리가켐바이오는 지난 2015년 11월 자사 영문명인 'LEGOCHEMPHARMA' 상표를 제5류(항생제, 항암제 등 의약품)에 출원했다. 화합물 합성기법인 '레고케미스트리'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특허청에서는 한 차례 거절결정을 내렸으나 레고켐바이오는 2018년 상표등록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블록 장난감으로 알려진 완구업체 레고 쥬리스는 당시 레고켐의 상표를 취하하기 위한 등록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이후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3년여의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결과는 리가켐의 패배였다.

당시 대법원 특별2부가 지난 2023년 11월 16일 내린 선고의 판결문을 보면 이름난 상표(저명상표)의 식별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면 당시 레고켐의 상표권을 비슷하지 않더라도 상표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법원은 레고켐바이오가 'Lego Chemistry' 용어의 약칭이라고 반론한 것과 관련해서도 유명 상표인 '레고'와의 연상 작용을 의도하고 출원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봤다. 특허업계 내에서도 완구와 의약품이라는 전혀 다른 업종임에도 상표의 보호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의 선례를 남긴 사례로 이슈가 됐었다.

패소 직후인 2024년 1월 레고켐바이오는 오리온그룹으로부터 5500억원을 투자받아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 측은 "스페인어로 '결합과 연합'을 뜻하는 'Liga'에서 어원을 따왔다"고 밝혔는데 레고와 상표권 문제를 향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리가켐 입장에서는 아주 다른 업종의 레고와 특허분쟁이 문제가 됐던 만큼 향후 해외에서의 분쟁 가능성 등을 해결하기 위해 LCB에 상표 취소심판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다수의 기술수출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넓힌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쓰지 않는 상표를 공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복안인 셈이다. 더욱이 제5류 분야는 리가켐의 핵심 사업 영역인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개발과 직결된다.

상표권 분쟁으로 이름을 내어줬던 리가켐이 IP 반격에 나선 이번 상황은 향후 국내 바이오벤처의 IP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