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 해야한다
오랜 연구로 정립한 가설을 입증해 신약으로 만들어 보겠다며 바이오 벤처를 세운 연구자들이 노심초사 끝에 임상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생태계에 돈가뭄이 들어 임상시험을 할 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에 따라 다르지만, 신약 기술을 사가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임상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은 일상화됐다고 한다. 법인통장의 돈이 사우나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순식간 뚝뚝 떨어지고, 임직원들은 하나 둘 흩어지는 중이다. 창업자와 벤처가 쌓은 자산(assets)은 고스란히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매몰될 참이다. 공들여 쌓은 특허 등 지식재산이 바이오 생태계의 유산으로 남지 못하고 거품처럼 사라진다.
대규모 기술 이전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오름테라퓨틱 같은 바이오 벤처들의 역광 때문에 '나는 안 볼 란다'와 같은 의도적 회피 때문에 외면해서 그렇지 죽음의 계곡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벤처들은 적지 않다. SNS에 투자소식을 알리며 서로 격려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더 깊은 동면 상태(dorment)에 빠져들지 않으려 발이 닳도록 투자 유치를 위해 뛰지만 손에 쥐는 것이 없다. 2018년부터 2021년 무렵 투자 호황기에 의욕적으로 탄생해 투자 혹한기에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없다. 투자한 VC들은 청산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 투자할 의향도 없다.

우수한 인재들, 그들의 지식과 꿈, 더 크게 자라나려는 자본이 단단하게 뭉친 바이오 벤처들은 이렇게 형해화 된다. 대단히 역설적인 것은 임상시험에 쓸 돈이 없어 죽음의 계곡에 빠지는 벤처들이 많지만, 정부의 지원금은 창업을 부추기는 쪽에 또 쓰인다. ADC처럼 인기있는 분야가 아닌 신약개발은 그나마 있는 임상지원 창구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물론 생태계에도 경쟁논리가 작동한다며 기업의 분발을 촉구하는 냉정한 목소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벤처가 돈을 모아 다음을 모색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공개(IPO) 뿐이다. 담장은 높아지고 진입문은 좁아진다. 전통제약사는 신약보다 기대값이 높은 개량신약이나 퍼스트 제네릭 개발에 돈을 쓰는 편이다. 유망하지만 어려워진 벤처의 신약개발 기술과 유능한 인재까지 품어주는 M&A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을 외칠 수밖에 없다. 큰 기업이 유망한 벤처의 손을 잡아줄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성장펀드 규모를 100조원에서 15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온 9월 10일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말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돈준 사람이 없다. 2009년 싱가포르 정부가 8000억원을 주니 JP 모건은 싱가포르가 왜 줬냐 물어보고 5000억원을 더 줬다. 1조3000억 받으면 실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트 해야 한다. 금산분리법이 이를 가로 막고 있다. 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지만 돈이 돌도록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꼭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해 보고 싶다"는 벤처들의 절규가 환청이 돼 떠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