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다진 판 위에서 하나 둘 씩 실행으로 나타나

'협업하느냐, 아니면 죽느냐(Collaborate or Die).'

국회의원 시절 '제약산업 육성법'을 제정하는 등 제약산업 발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2017년 3월부터 이 화두를 붙잡고, 하드 캐리한 인물이다. AI신약개발지원센터를 비롯해 △코로나19에서 빛났던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인재 양성을 위한 한국형 나이버트(K-NIBRT) 도입 과정 기여 △기술교환의 장이 된 오픈이노베이션플라자 △파이프라인을 통한 연구활성화 플랫폼인 K-스페이스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협업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얻어낸 성과들이다.

<끝까지 HIT>는 원 회장을 만나 추진해온 과제와 성과, 앞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향점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제약산업 육성법 제정을 주도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두 번의 임기 내내 전통제약산업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과 협업의 선순환이 작동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제약산업 육성법 제정을 주도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두 번의 임기 내내 전통제약산업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과 협업의 선순환이 작동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깨지고 있는 '단단한 폐쇄의 벽'

협회는 묵묵히 '혁신의 판'을 깔았다. 원희목 회장은 2017년 취임해 연임까 6년 동안 업계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해 "폐쇄의 벽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시대"라고 했다.

"제약업계는 꽤 오래전 개념화 된 오픈 이노베이션 시대에 뛰어들지 못했다. 각자 가진 정보의 공유를 금기시하는 풍토가 남아있지만, 부분적으로 조금씩 깨지고 있다."

협회는 "기업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드는데 초점을 뒀다"고 했다. 원 회장은 "산·학·연·병·정 모두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이라고 말할 때가 아니었다.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판과 장이 필요했다"며 "판과 장을 만들면 기업이 개입을 하고 이들이 서로의 기술을 사고 파는 운동장이 생긴다. 이를 만드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가 말한 '판'과 '장'은 2022년 1월 문을 연 보스턴 클러스터 민·관 협력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협회는 주보스턴 총영사관,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3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제약바이오산업 관련 기업들의 미국 진출 지원 △국내외 정보와 지식 교류 △미국 진출 지원에 필요한 교육‧세미나‧전문가 강의 개최 협력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신데렐라였던 모더나 등을 비롯해 세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보스턴에서 우리 기업이 산업 인프라 외연 확장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2년전 보스턴의 대표적 연구중심 대학인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산학연계 프로그램(ILP)의 컨소시엄 멤버십에 가입하며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스카이코비원·렉라자가 남긴 교훈
'실패 두려워 말라, 약할수록 힘 모아라'

원희목 회장은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주'와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를 대표적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로 소개하며 그 안에서 업계 안팎이 배워야 할 포인트가 있다는 말도 전한다.

"스카이코비원은 대표적 협업 모델이다. 회사의 노력과 각 분야에서 서로의 노력이 집결하며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이룩한 성과로 볼 수 있다. 다만 타이밍이 아쉽다. 업계는 이같은 사례를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좋은 지침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6월 스카이코비원이 최종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초도 생산을 마친 이후 추가 완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원 회장은 이 문제에서 실시간 소통과 책임을 찾아 냈다. 그는 "뒤따르는 것보다 미국이나 일본이 선제적으로 긴급 승인을 내어주듯 우리 역시 선제적인 길을 가야 한다. 긴급승인이 필요한 백신과 달리 타이밍에 덜 예민한 품목이라고 해도 의약품은 속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임있는 규제당국의 철학과 실시간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협업의 또다른 사례, 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 일각에서는 유한양행의 역할을 쉽게 생각하지만, 실은 바이오벤처들로부터 발굴한 수많은 파이프라인 중 하나를 제대로 성공시켰다는데서 기업의 혁신 노력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좀 더 개발을 진전시켜 더 높은 가치로 빅파마에게 넘기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제노스코에 빠르게 접근해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개발해 얀센에게 전체 규모 1조 4000억 원 상당의 기술수출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여러 실패가 만들어낸 성공이라고 말했다.

원 회장은 "유한양행은 0.01%의 확률 게임을 벌인 것이다. 여러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잡기 위한 노력 속에서 나온 성공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세계적 회사도 한국까지 와서 후보물질을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하다보면 왜 실패했는지를 알지만 실패가 없게만 하려면 정말 실패할 때 ‘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제언했다.

원 회장은 투자와 정부 등의 위험 분담도 중시한다. "경우의 수를 많이 쌓기 위해서는 투자처와 정부의 위험 분담도 필요하다. 성공하면 정부도 투자 이상의 무언가를 얻지만 실패하면 책임을 서로 나눠가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미국은 그 경우의 수를 위해 예산의 상당수를 쏟고 있다. 돈이 없고 기반이 약할 수록 성공도, 책임도 힘을 모아야 한다."

원 회장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힘을 합치는 과정이다. 업계가 그토록 희구하는 퀀텀 점프는 업계 스스로 문호를 열면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의 역점사업이자 실제 성과로 나타난 것이 유명 바이오공정 교육기관인 아일랜드의 ‘나이버트’(NIBRT)를 한국에 도입한 'K-나이버트'다. 세계적 인력양성 기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수급하려는 차원이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인천광역시, 인천 관내의 연세대학교 등이 모두 어우러진다. 각 이해당사자 간 조율이 필요해 지지부진했던 사안이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제약바이오협회가 등장하며 급물살을 탄 것도 사실이다. "모두의 노력이 있었고 이를 통한 모두의 성과를 높게 볼 필요가 있다. 실적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결국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육성을 위해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부처 특징상 소관 업무가 있다보니 중심을 제약에 놓아도 갈라지는 아쉬움이 있다. 국무총리 산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등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섹터가 정체성을 유지하되 충분한 공유를 급격하게 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원희목 회장은 AI신약개발센터에서 연합학습기반 신약개발(Federated Drug Discovery, FDD)등을 고민하고 있다. 회사의 솔루션과 프레임을 통한 기술을 도입하면 완성도는 높이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과 협업을 근간으로 새로이 제시한 것이 바로 K-스페이스. ‘우주’와 ‘공간’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 단어를 통해 신약개발을 위한 공간에서 회사들이 자유롭게 항해하며 좋은 기술과 신약물질을 찾고 이를 원동력으로 나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 K-스페이스는 회사가 연구하는 공간을 모아서 관심이 있는 파이프라인을 논의하고 전략적 협력 혹은 투자 더 나아가 라이선싱의 단초를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협회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227곳의 파이프라인 중 협회가 검증을 완료한 1200여 개 파이프라인을 플랫폼에서 확인하고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세계적 제약사의 협업 플랫폼을 우리 업계에 적용한 사례다.

원희목 회장이 12월5일 2022 KPBMA 오픈 이노베이션 플라자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원희목 회장이 12월5일 2022 KPBMA 오픈 이노베이션 플라자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속 던진 메시지
'협업이냐, 죽느냐' 이젠 업계 생존 문제로

오픈 이노베이션과 협업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것이 12월 5일 '2022 KPBMA OPEN INNOVATION PLAZA'다. 여기서는 무려 48건의 미팅이 열렸다.

그 동안 협회는 해외 대상 사업으로 △MIT ILP 프로그램 가입(2020년) △보스턴 CIC 진출(2021년) △미국헬스케어유통연합(HDA) 가입(2020년) △재미한인 단체 및 미 규제당국 한국계 전문가와의 네트워킹 강화(2022년) △캠브리지 MILNER GTA 가입(2021년) △스위스 바젤 투자청 연계 프로그램 계약(2021년) △영국 MEDCITY 협력 사업(2019년) △바이오유럽 참여 및 연계 네트워킹 행사(2022년) 등을 진행했다. 특히 보스턴 CIC의 경우 2021년 3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 지사 이전을 시작으로 협회 회원사를 포함한 십수 곳이 입주해 있다. 지난 11월 Massbio 방문 이후 민관이 협력하는 '코리아 파마 데이 2023(가칭)' 역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 설립 및 운영(2019년)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출범(2020년) △K-스페이스 플랫폼 출시(2022년) 등을 통해 오픈 이노베이션의 기반을 다져놓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기존 정보의 자동화가 아닌 자율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융복합·초연결·탈경계·무한확장이라는 개념 속 빅데이터에서 업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 원희목 회장은 "업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협력'이다. 시작은 크지 않지만 모든 주체가 서로 모여 쌓고 다듬으며 애를 써야 한다. 그 노력은 협회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면 죽는다는 의지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던지는 메시지”라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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