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로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선 약국 주력 유통업체
"5년 내 '전면 자동화' 없이는 생존 어려워"

국내 약국 종합의약품 도매 내부 모습.
국내 약국 종합의약품 도매 내부 모습.

 

의약품 유통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 소량의 의약품을 자주 배송해야 하는 약국 특성 상, 약국을 주력으로 하는 종합도매업체들은 이제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고 말한다. 이들 유통업체가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수록 약국 서비스도 변화하고 있다. 

업체들은 십수년 전부터 의약품 유통마진이 지나치게 낮고,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 인상돼 업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해왔다. 아울러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도입에 더해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열악해지는 의약품 유통 환경..."규제 강화도 한 몫"

최근 콜드체인 의무화와 의료기기 일련번호 제도 도입이 업계의 화두다. 모두 냉장배송 시스템 등 새로운 인프라를 도입해 구축해야 하고, 관리 인원도 늘려야 하는 것들이라 업체 입장에서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날로 인상되는 인건비도 부담 중 하나다.

정부는 7월부터 생물학적 제제와 냉장 의약품을 보관, 유통하는 동안 일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콜드체인 의무화를 시행했다. 당장 유통 업체들은 의약품 보관은 물론 배송 과정에서도 온도 유지를 위한 냉장 배송 시스템을 갖추느라 분주했다. 

아울러 의료기기 표준코드 표시와 일련번호 보고 의무화도 코 앞이다. 일부 등급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이미 등록과 공급내역 보고가 시행되고 있다. 그중에서 약국도 많이 판매하는 의료기기인 당뇨 검사지, 임신 테스트기, 요검사 스트립 등을 취급하는 유통업체는 이들 품목의 입고와 출고를 기록해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한 도매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는 대부분 영세한 업체에서 생산하는 것들이 많아 일련번호 제도에 대한 이해와 실행이 부족한 편이다. 지금도 1차원 바코드를 부착해 보내오는 임테기가 있을 정도"라며 "전문의약품 일련번호 때와 똑같은 혼란이 의료기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콜드체인과 의료기기 일련번호 제도는 유통업체 입장에서 설비비 투자가 불가피하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보다 안전하고 투명하게 유통시킨다는 명분에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실제 비용을 유통업체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점은 업체의 애로사항이다. 

 

날로 오르는 인건비..."사람 구하기도, 월급 주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인건비도 부담이다. 정부가 정한 시간 당 최저임금은 최근 5년 동안 크게 늘었다. 내년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 당 9620원으로 정해졌다. 

현재 의약품 입고부터 진열, 검수 등 거의 모든 작업에 인력이 투입돼 관리하고 있다. 의약품 종류가 워낙 많은데다 이름, 용량을 꼼꼼히 체크해 포장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인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젊은 인력 구하기가 힘든 점은 업계가 가진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이를 포함해 물류센터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인건비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설비 투자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인건비는 매달 계속 지급해야 한다. 약국 주력 업체들이 물류센터의 전면 자동화를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도매업체 관계자는 "최저시급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유류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배송비가 수년 전에 비하면 1.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약품 선별부터 출고까지 전면 자동화하지 않으면 약국도매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인건비를 포함해 관리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동화 설비 구축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투자 금액을 회수하려면 몇 년이 걸릴 지 모르는 큰 비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자동화 도입을 고민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일련번호 시스템 구축에도 큰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전면 자동화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가 몇 곳이나 되겠나"라고 덧붙였다. 

약국 의약품 종합도매 내부 모습.
약국 의약품 종합도매 내부 모습.

 

유통환경 악화, 약국 서비스 축소로 귀결

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약국 주력 도매업체들 가운데, 순수하게 의약품 유통에 따른 마진만으로 회사를 유지하는 곳은 없다시피하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업체들이 부동산 임대료, 창고 위수탁 수수료 등 유통이 아닌 다른 사업에서 이익을 확보해 의약품 유통에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같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를 얼마다 더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년 내 약국 의약품 유통 시장 재편 가능성을 제기한다. 많은 관계자들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안에 약국 주력 업체들 다수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소수 살아남은 업체들의 독과점이 우려된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도 있다. 전반적인 이익이 줄어들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업체 숫자는 비슷하게 유지될 거란 의견이다. 

한 약사는 "유통업체가 갑자기 여러 곳 폐업하거나 업체 간 인수합병으로 업체 숫자가 줄어들 것 같진 않다"며 "다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점차 줄어드는 상태로 대부분 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업체 수가 줄어들거나 유지되거나에 상관 없이, 의약품 유통환경 악화와 약국 서비스 축소는 피할 수 없을 거란 예측은 일치한다. 이미 다수의 유통업체들이 하루 배송 가능한 횟수를 줄이거나 주말 배송을 포기하는 등 기존의 방식을 바꿔 비용 절감에 애쓰고 있다.

서울의 한 약사는 "전면 자동화하는 건 단순 배송의 문제가 아닌 물류 시스템의 변화다. 물류의 전산화, 물리적 인프라 구축 등이 뒤 따라야 한다. 그러려면 아무리 작은 업체라 해도 자동화 시스템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서비스는 많이 축소됐다. 앞으로 배송 숫자나 주말배송 등의 서비스가 더 많이 줄어들 거란 점은 분명하다"며 "제약사들이 앞다퉈 온라인몰을 만든데다, 유통업체의 경쟁이 심화되면 유통환경 자체가 혼탁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약국에 이로울 게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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