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주권 못지않게 원료의약품 주권도 필요
"국산원료 약가가산 손 보고, 원료원산지 표기 해야"
자사 국산원료 쓴 완제약 약가가산 실효성 살리고
모든 국산원료의약품 제조업체 전반으로 확대해야

'원료의약품은 제약바이오산업 반도체'…이 말이 더 슬프다
K제약바이오 산업은 뜨겁고, 원료의약품 산업은 차갑다. 끌어다 덮을 이불 한자락없는 정책 사각지대서 중국산, 인도산 원료의약품의 가격 공세를 견디며 활로를 찾고 있다.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에게 역주행 기회는 있을까? 비가역 낭떠러지로 갈지, 글로벌 주요 플레이가 될지 갈림길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
① 방치된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 자급률 20% 남짓
②원료산업계의 하소연 "정부로부터 푸대접 받는다"
③ 사막화 원료의약품 시장에 사과나무 심는 이 기업
국내 원료의약품은 왜 경쟁력을 상실했나
매출 기준 국내 상위급 완제 제약회사에서 10년 이상 원료의약품 구매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A씨는 중국 등 외국산 원료의약품을 구매하는 이유와 관련해 "무엇보다 가격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산 원료를 취급하는 대리점들이 큰 창고를 두고 발주를 내면 즉시 공급해 주는데다, 간혹 로트 단위에서 품질 문제가 발행할 때도 반품이 용이한 등 불편함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산 원료의약품의 품질에 대한 믿음 때문에 원료의약품 구매업무를 시작할 때 국산 원료의약품을 원천적으로 후보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면서도 "(제가) 중국과 인도 등 원료의약품 공장에 실사를 따라가 본적이 몇 차례 있는 데 공장 시설이나 관리 체계 등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해마다 훨씬 좋아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설과 GMP 소프트웨어가 갖춰진 원료회사의 경우 우리나라 못지 않은 데다 가격마저 저렴한 것도 모자라 그들이 운영하는 대리점이나 도매상들은 톤(ton) 단위로 원료의약품을 쟁여 놓고, 국내 허가에 필요한 공통문서(CTD)까지 거의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외국산 원료가 강세를 띨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 완제 제약회사들이 외국산 원료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는 A씨의 이야기가 2021년의 숨길 수 없는 현상이라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완제 제약업계와 원료 산업계는 공통적으로 2012년 일괄약가인하를 꼽고 있다. 일괄약가 인하제도를 기점으로 이어진 제네릭 의약품 가격인하 기조가 지속되면서 완제 제약회사들은 너나없이 제조원가를 낮춰 약가 인하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저가 원료에 눈 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완제의약품 제조 제약회사들은 "보험약가 대비 원료의약품 가격의 비중이 20%를 넘을 경우 생산이 불가능해 더 저렴한 원료의약품을 쓸 수 밖에 없다"며 "성분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통상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차이는 30% 이상 난다"고 설명했다. kg당 국산 원료의약품이 50만원이라면 수입산은 35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다보니 현장에선 얌체상혼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국내 원료의약품 제조업체 고위 관계자 B씨는 "국내 원료의약품으로 허가 받았던 완제 제약사 가운데는 외국산 저렴한 원료가 DMF 등록을 하고 난 뒤 외국산 원료가격에 맞춰줘야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거래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그는 "덩치가 큰 제약회사들은 외국산 대체재가 등장해도 계속 써주는 편이지만 CSO에 기반한 완제사들은 냉혹하리만큼 외국산으로 갈아타는데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말 이런 일이 있을까 싶겠지만 완제사 A씨의 말을 들어보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임상이든 생동시험이든 마치고 난 후 허가 과정에서 품질이 좋은 것으로나, 가격이 저렴하는 것으로나 바꿀 기회가 있는데, 특별히 원료를 교체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렴한 것으로 변경해 이익을 개선하고 싶은 동기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연구단계부터 저렴한 외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바꿀 동기가 사라져 국내 원료의약품에게는 솔직히 기회가 없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들은 완제 제약사들의 요구에 맞춰 가격을 좀더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 완제 제약회사가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저가 원료를 선택하게 되면, 국내 원료 제조사들 역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등에서 조품(Crude)을 수입, 정제 공정을 거쳐 공급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드물지만 포대갈이 방식 등으로 중국 원료의약품을 들여다가 국내 원료의약품인 것처럼 판매하는 불법 사례도 나타나기도 한다.
원료 제조사들이 아무리 경쟁품과 엇비슷하게 가격을 낮추려해도 결국 바닥을 칠 수 밖에 없다. 규모가 큰 외국산 원료 업체들에게 현저히 밀리는 상황에서 가격 인하 레이스에 들어가면 얼마 못가 손을 들 게 돼있다. 외국 판로가 거의 없는 국내 원료 업체들이 기댈 곳은 국내 완제 제약회사들인데, 이들 역시 경제논리대로 낮은 가격의 원료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케이스 : 중국업체와 가격 레이스서 코피 터졌던 국내 원료사
1990년대 초반 일이다. 세파계 항생제를 만드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던 7-ACA 중간체의 kg당 가격은 당시 200달러 수준으로 국내 원료 의약품업체들에게는 쏠쏠한 품목이었다. 국내 원료제약회사들이 주 플레이어였는데,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 불을 지폈다. 가격은 계속해 떨어져 kg 당 60달러까지 내려갔고, 국내 기업이 먼저 손을 들었다. 이 업체는 원료 중간체를 드롭시키고 말았다.
중간체로 원료를 만들던 원료업체나 완제 제약회사들은 낮아진 가격을 만끽할 틈도 없이 중간체 가격은 다시 급등했다. 중국이 가격경쟁에서 이기고 난 후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가격은 kg 당 200 달러로 원상 회복되었다. 통상 국내 원료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중국 기업들에게 발목을 잡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국내 원료업계 B씨는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수출하는 경우 장려금까지 지원함으로써 전 세계 원료의약품 패권국가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허가당국인 CFDA에 원료의약품을 등록하는데 3~4년 걸리지만, 우리나라 시장에 외국산 원료가 들어오는 데는 문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흔들리는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 생태계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 생태계는 다층적이다. ㉮ 군락은 한미정밀, 에스티팜, 유한화학, 경보제약처럼 완제 제약회사를 관계사로 둔 비교적 규모가 있는 원료 제조업체들이고, ㉯ 군락은 제일약품, 명인제약처럼 완제 제약회사들이 다각 경영 차원에서 혹은 자사 완제의약품을 위해 하나의 사업부서처럼 원료공장을 가동하는 곳이다.
㉰ 군락은 에스텍파마, 이니스트에스티 등으로 원료의약품 전문 제조기업이고, ㉱ 군락은 외국산 원료의약품을 국내에 들여다 판매하는 수입업체, 일명 오퍼상이다.
상황이 어렵기는 ㉮ ㉯ ㉰군 모두 마찬가지만 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곳은, 원료의약품 전문업체라고 불리는 ㉰ 군이다. ㉮ 군의 경우 관계사인 완제 제약회사와 거래를 통해 어느 정도 매출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사가 마냥 모든 원료를 구입해 주지도 않는다. 관계사 역시 경영체인 만큼 낮은 원료의약품 구매에 전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관계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완제사에게 원료공급을 꺼리는 경우도 있을 만큼 생태계는 폐쇄적이다. 이들은 수출을 통한 활로 모색에 공을 들이고 있다.
㉯ 군의 경우도 ㉮ 군과 크게 다르지 않고, 주력 완제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품질 높은 원료의약품을 주로 생산하는 것과 해외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의 중심 축이 완제의약품에 있는 만큼 ㉰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낮고 여유있는 편이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자신들의 연구개발과 피눈물나는 노력 밖에 없는 ㉰군의 자생능력이 가장 취약하고 힘겨운 상황이다. 결국 이들의 고객은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는 완제 제약회사들인데, ㉮ 군과 ㉯ 군이 채우지 못하는 틈새를 찾아 공략해야 한다. 동시에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원료를 들여와 기회를 모색하는 ㉱ 군의 공세도 견뎌내야 한다.
이상적인 생태계라면, 원료 제조업체 별로 특색있는 원료를 생산하고 완제 제약회사들이 이를 구매하는 빈도와 경로가 다양한 경우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료 제조업체들은 일정 판로를 확보한 가운데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는 오리지널 브랜드의 원료를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전부터 미리 연구개발하고, 퍼스트 제네릭 완제의약품을 개발하려는 완제 제약회사와 개발 단계부터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난이도가 높은 원료의약품 개발에 도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선순환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격경쟁이라는 경제논리로만 작동되는 까닭에 원료산업계의 R&D 동기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발빠른 연구개발은 중국과 인도 등의 원료업체들이 주력으로 하고 있다.
케이스 : 일본 완제사들의 독특한 선택과 시사점
일본에 원료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는 국내 중견 완제제약회사에서 20년 이상 원료의약품 공장근무와 해외수출 업무 등의 경력을 쌓은 C씨는 "국내 완제 제약회사들의 스탠스와 달리 일본 완제 제약회사들은 자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완제 제약회사들의 원료의약품에 대한 옵션은 첫째가 자국산, 둘째가 유럽산, 셋째가 한국산 혹은 대만산 넷째가 중국, 인도산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완제사들의 경우 자체기준에 부합하는 원료의약품을 선택하는데 엄청 까다롭다고 말했다.
국내 원료의약품의 생존 방향으로 해외 수출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수출 대상국이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의 상황도 미세하지만 바뀌고 있다. 일본 당국이 제네릭 약가인하 정책을 쓰면서 제조원가 절감이 필요해진 완제사들도 점차 중국, 인도산 원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품질이 좋으면서 가격도 적정한편이라는 이유로 선택받았던 메이드인 코리아 원료의약품의 일본내 경쟁력도 영구적일 수 없다는 의미다. 중국이나 인도에 앞선 원료의약품 연구개발이 없으면 가격경쟁만 남게되는데, 이런 경우 승산은 매우 낮다는 것이 C씨의 진단이다.
원료의약품 자급률 증진 왜, 필요한가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DMF 현황이든, 국내 생산 금액이든 20% 언저리다. 자급률 20% 미만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문제 의식을 가질만한 이벤트가 코로나 원년인 2020년 나타났다.
오장석 전 의약품수출입협회장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 기고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원료의약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우려하게 됐다. 중국 우한지역 근처 많은 원료의약품 공장이 정상 가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무렵 인도마저 의약품 주성분 26종의 수출을 제한하며 안정적인 원료의약품 확보의 중요성을 학습시켰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바이오의약품 생산에서 소재, 부품, 장치(일명 소부장)의 외국 의존가 높은 데, 도날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신속한 코로나19 백신 개발, 배포, 접종을 위해 코로나19 OWS(Operation Warp Speed)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백신 개발·생산 기간 단축을 위해 미국산 원부자재의 국외 유출을 막아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래된 용어 '식량 자급화'가 제약바이오 산업계에서 환생하고 있는 것이다.
원료의약품 자급화 문제가 등장한데는 또다른 요인도 있다. 코로나 상황에 앞서 국내 허가당국은 물론 원료 제조사, 수입사, 완제의약품회사들이 다함께 홍역을 앓은 원료의약품 품질 문제가 그것이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NDMA(발암성 추정 물질) 불순물 파동이 외국산 저가 원료의약품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미확인 의구심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원료의약품 자급화 문제가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 제약선진국들도 다같이 떠안고 있는 과제다. 의약 선진국들이 함께 겪는 과제라고 원료의약품산업이 존재감이 없을만큼 취약해지고 있는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의 걱정이나 염려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설마 원료의약품 못구해 완제 의약품을 만들지 못하겠어?'와 같은 안이함은 코로나 백신 부족으로 세계 각국이 확보 전쟁을 벌이는 앞에서 무력하니까 말이다. 백신주권 못지 않게 원료의약품 주권도 필요한 것이다.
원료의약품 자급화라고 자급률 100%를 목표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렇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다만, 간과하지 않고 주목해야 해야할 것은 현 자급률이 20% 밑돌고 있는 근본 원인이 '무한 저가 경쟁'을 방치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정책이 개입되지 않고, 현 상태가 이어지면 자급률은 더 빠르게 떨어져 급기야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이 회복 불능 상태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신약이든, 개량신약이든, 퍼스트 제네릭 의약품이든 시의적절하게 개발되려면 원료의약품 산업의 발전은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 의약품 개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오장석 전 의약품수출입협회장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보고서 기고문에서 같은 맥락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원료의약품을 한국이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원료의약품의 해외시장 진출이다. 고부가가치 특화된 원료의약품의 수출을 통해 선진국 시장을 공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완제의약품의 글로벌 수출도 특화된 원료의약품 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결론으로 "(원료의약품과 관련해) 우리만의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야 하며 이는 제약산업의 주권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맞다. 아예 완제 의약품을 수입해다 쓰는 국가라면 차라리 마음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혁신신약 연구개발부터 원료의약품, 완제의약품까지 산업 생태계를 형성한 나라에서 가치사슬을 이어주는 원료의약품의 연구개발과 생산 역량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원료산업계의 외침 "정부로부터 푸대접 받는다"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계는 '정부 완제의약품 약가 인하정책 지속→완제사 원료의약품 가격 인하 지속 압박→저가 경쟁서 중국 등 외국산 기업에 패배→R&D 투자 여력 부진→정책적 무관심→약가 인하정책 지속'이라는 악순환 고리에 단단하게 엮여 있다. 과연, 어느 지점을 자르고 탈출구를 찾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반면 산업계에게 던져지는 충고는 경영교과서 한 대목처럼 반듯하기만하다. '차별화된 기술개발로 경쟁력있는 원료를 합성해 외국 시장을 노려한다'는 대명제 아래 제시되는 대안으로는 ① 품목 선택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파악 ②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기술 개발 ③희소성 있거나 미래 성장 품목의 개발 ④개발의 난이도가 높은 품목의 개발 ⑤ GMP 시설, 서류화, 품질, 가격 경쟁력 등 고객 니즈에 맞춘 조건 구비와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개별 원료업체들 입장에서 이같은 대안들이라는 것은 화살을 쏘아볼 엄두조차 내기 힘든 멀리있는 과녁일 따름이다. 기초 소재 원재료의 국내 생산 기반이 거의 없는데다, 경쟁국 대비 높은 임금과 높은 제조경비, 숙련된 연구원 이탈 등 원료의약품 산업에 내재된 근본적인 문제에 정부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만 분투해서 될 상황은 아니다.
원료의약품 제조업체 종사하는 D씨는 "원료의약품 산업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였다"며 "우리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다. 동일 업계 E씨도 "완제사가 개발한 원료의약품엔 보험약가 측면에서 우대라도 있지만, 순전히 원료의약품만 다루는 전문 업체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며 "대한민국에서 원료의약품 업계를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도, 단체도 없다"고 허탈해 했다.
D씨와 E씨의 이야기는 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 주장일까. 정부는 한미FTA 협상 즈음이나 완제의약품 약가 인하 정책을 발표할 때면 완제산업계에게 혁신형제약회사 경쟁력 강화 정책 등 각종 혜택성 정책을 내놓았으나, 완제사와 직간접으로 연동되는 원료의약품 산업계를 위해서는 립서비스조차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작년 7월 '제네릭의약품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관협의체' 결과 발표를 통해 '제네릭의약품의 부가가치를 향상하기 위한 위해 국산 원료를 사용한 완제의약품에 대해 신속심사를 하겠다'는 인센티브 방안을 살짝 제시했다. K제네릭 경쟁력 강화를 통한 해외진출 지원 방안의 일환인데, 외부 연구용역도 추진해 틀을 잡겠다고 밝혔다. 연구용역에서는 국산 원료 여부에 대해 Crude 원료까지 인정해야 할지, 최소 2단계는 공정을 수행해야 자국산으로 인정할 지 등도 다뤄져야 할 것이다.
기왕 용역연구를 한다면 '화평법으로 인한 어려움'도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 완제 제약회사들이 중국산이나 인도산 원료와 첫 인연을 맺어 거래관계를 계속 이어가는데는 중국과 인도 기업들이 국내 원료업체들보다 연구용 원료를 훨씬 빠르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용 원료를 통해 허가데이터를 만들고 난 뒤 가격경쟁력 마저 좋지 않은 국산 원료로 바꿀 이유는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중간체 생산기반이 약하고, 국내 원료업체들이 연구용 원료를 미리미리 연구개발하지 못하는 점과 함께 화평법도 연관성이 크다고 원료 산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화평법이 생기면서 중간체 수입 규제가 심해졌는데, 식약처와 환경부가 물질별로 검토해 '의약품 제조용 원료물질' 여부를 인정해야 화평법 적용의 예외를 받아 수입 가능함으로써 의약품 제조용 원료물질이 국내 원료사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기간이 더뎌지는 것이다.
더뎌지는 것보다 더큰 문제도 있다. 완제의약품 허가서 또는 원료의약품 허가서, DMF 등 허가등록 서류에 나타나지 않는 미시판 연구용 원료는 '의약품 제조용 원료물질'로 인정되기 어려운 구조여서 업체들이 중간체를 일찍 수입해 연구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한다.
외부 연구용역 하겠다던 식약처 약속, 10개월 지났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작년 7월 발표했던 원료의약품 산업과 관련한 외부 용역연구는 아직까지 착수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2020년 내놓겠다는 대책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원료의약품 산업계는 R&D를 통해 원료의약품 개발을 활발히 하고, 내수를 넘어 해외 수출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지원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원료 산업계는 우선적으로 내수에서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이 활성화돼야 자신들의 운신의 폭이 커질 수 있다며 '국내 생산 원료 사용한 완제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퍼스트 제네릭 품목허가를 받은 제품 가운데 자사합성 원료를 사용하면 68%의 약가우대(가산)를 받고, 오리지날 품목을 포함해 품목수가 3개 이하면 5년동안 68%의 약가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5년 가산은 커녕 1년 유지도 어렵운 실정이다.
완제 제약회사는 원료를 합성한 경우 이나마 약가가산을 받지만, 완제약회사를 관계사로 두고 있는 경보제약, 에스티팜의 경우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 에스티팜에서 개발한 원료의약품을 관계사인 동아ST가 사용할 때 약가가산은 이뤄지지 않는다. 동아ST조차 에스티팜 원료를 써야하는 동기가 없는 것이다. 원료의약품 전문업체들은 약가 가산제도의 냄새조차 맡지 못하는 상황이다.
완제의약품업 산업계는 물론 원료의약품 산업계는 "현재 자급률 20% 남짓이라도 유지되고 종종 일본 등에 수출할 수 있는 기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자사 원료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 약가를 낫게 쳐주는 정책 때문"이라며 " 앞으로 정책에서 이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원료 산업계는 국가 신약개발(R&D) 과제에서 '완제 제약회사가 국산 원료를 사용해 협업하는 경우 가점제도'를 도입하고,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할 때 완제의약품 포장에 원산지를 기재하는 내용도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원산지 표기의 경우 국내 완제 제약회사들의 국산 원료의약품 구매 동기를 주고, 소비자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측면에서 꽤 실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산업계는 더 적극적인 유인책도 주장하고 있다. 국산 원료의약품 인센티브에 대해 일본과 베트남의 사례를 참고해 보자는 것이다. 베트남은 원료는 아니지만, 자국산 의약품(완제)을 국공립병원에서 우선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베트남 입찰에서 한국산이 홀대 받았다가 우리 정부 노력으로 원상복귀시킨 사례를 국산 원료의약품으로 바꿔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베트남 국공립 병원들은 구매우선순위에 자국산 의약품을 높은 순위에 올려 놓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국공립병원 입찰에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의약품을 구매 우선순위에 두자는 발상이다. 일본 도도부현이 운영하는 병원도 자국산 제네릭의약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고 있다. 반면 이런 문제에서 우리나라 당국은 늘 '점잖은 편 말이 없'다.
국산 원료의약품 원산지 표기, 불가능한가?
원료의약품 산업계는 그동안 완제의약품 포장에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이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를 자주 냈지만, 귀담아 들어주는 이는 없는 실정이다.
모든 완제의약품에 원료의약품 원산지를 표기하거나, 아니라면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경우에 한해 표기해 달라는 주장이다. 모든 식당에서 원재료 생산지를 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검토해 볼만하다는 것이 원료 산업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원산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국산 원료의약품의 원산지 표기는 완제 제약회사들이 비가격적 요소인 품질 기반으로 국산 원료를 구매하는 동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우수탁생산이 제도화 돼 제조원을 표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원료의약품 원산지를 표기할 수 있다는 논리적 기반도 담겨있다.
원료 산업계는 또 산업활성화를 위해 ▷원료의약품 개발 및 활성화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API 제조시 사용되는 원료에 대한 관세 감면 ▷해외 수출시 세제 감면 ▷R&D 연구비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꼽고 있다.
실상 R&D 자금이 돌아야 희소성이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원료의약품이나 퍼스트제네릭 원료의약품을 미리미리 개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화학벤처’도 활성화 될 수 있다. 현재 바이오벤처는 활황인데, 화학벤처는 가뭄이다. 정부 차원의 원료의약품 개발과제 공모도 필요하다고 산업계는 주장한다.
규제 측면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불순물 관리 강화 방침에 따라 분석 수요가 급증한만큼 지역별로 시험분석기관 증설 및 분석장비 구입 지원도 필요해 졌다. 시험기관수가 한정돼 있어 의뢰에 어려움이 있는데다, 불순물 유전독성 평가의 경우 외부 의뢰 비용이 2~3억원 가량 소요되는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료의약품 산업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최종 지향점은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이다. 원료의약품이든, 완제의약품이든 내수시장만 바라보면 분명한 한계를 맞는다는 전망은 누구도 뒤집을 수 없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에 놓여진 근원적인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근래 바이오벤처에 돈이 몰리고, 신약개발 기술 수출이 활발해져 제약바이오산업은 어느때보다 물이 올라있다.
반면 생태계의 일원인 원료의약품 산업군은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원료의약품 산업을 경제논리 아래 방치하면 원료 기업들은 하나둘 씩 경쟁력을 잃어 결국 완제 제약회사들이 필요로하는 원료의약품을 중국, 인도등 외국산 원료에 의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내 원료의약품산업이 조금도 역할을 하지 못할 때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생태계가 외국 원료기업들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안녕할지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원료의약품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국내 기업들은 일본, 중국, 아일랜드, 브라질 등 국가에 꾸준히 수출을 하고 있다. 여전히 수입금액이 훨씬 큰 상황이지만, 이들의 노력 덕분에 수출에서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난이도 높은 고 부가가치 원료의약품을 수출하는 국가로 성장하려면, 또 이처럼 고품질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대한민국표 의약품이 글로벌에 내놓으려면 원료의약품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R&D를 투자해 선제적으로 퍼스트 제네릭 원료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순물 제로’의 완제의약품 공급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으로 가려면,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연구개발(R&D)을 하려면 내수에서 최소한 수익성을 갖춰야 가능하다. 지하 암반수를 끌어올리려면 마중물 한 바가지가 필요하듯 원료의약품 산업에 혈액이 돌 수 있도록 '정책적 수혈'이 필요한 실정이다.

제약업의 특성상 규제산업은 맞지만 그밖에 산업,노동,환경등의 2중3중의 규제를 받아가면서 살아남기가 정말 어려운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경제논리로만 이현실을 바라보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경제논리로 원료종속화가 빠르게 이어질것입니다. 규제를 강화하려면 그에맞게 정부도 예산과 지원에 총력을 해야할것같습니다. 규제는 하는데 업계에서 알아서 하라면 그거야말로 더욱 개발과 성장이 위축되는 결과만 낫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기사가 대한민국 원료의약품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했다는데 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기업과 그종사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좋은기사 많이 써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