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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신약의 가치를 담은 약가, 글로벌 제약사만의 문제 아냐

"미국과 중국 출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국내의 약가 제도 하에서는 우리가 개발한 신약의 가치를 인정받는 약가는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국내 신약개발 제약회사 관계자)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례없는 의료보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칫 신약개발의 관점에서 볼 때, 통상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내 업계들이 외국에 나가서 임상을 진행하는 이유는 국내의 약가 제도도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강진형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본사에서 (신약 출시국을 설정할 때) 한국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분류됩니다. 대규모 임상시험이나 시장의로서 가치는 중국이, 싱가포르와 호주는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국가로 분류됩니다.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한국의 위치는 점점 애매해 지고 있습니다."(글로벌 제약회사 한국지사 임원)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춘 국가입니다. 집 근처에서 양질의 의료시스템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 내 대학병원에서 선진국 수준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가의 항암제 역시 급여 등재되면, 환자의 본인 부담금은 약가의 5%에 불과합니다. 물론 급여 사각지대가 존재하긴 합니다.
국내 건강보험 시스템이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여주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신약의 적정 가치를 약가에 반영해 주지 못한다는 목소리는 글로벌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 특히 국내에 지사를 둔 약가 담당자들은 본사와 국내 보험 재정을 담당하는 정부 당국 사이에서 이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어려움은 지난 2018년 중국 국가 의료보험국이 보험약가 참조국가에 한국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신약 접근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탄탄한 임상 인프라로 비교적 신약 접근성이 높았던 한국이 이제 중국 발매 이후 신약 출시국으로 분류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인력자원과 사회보장부, 국가위생계획위원회,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민정부 등이 참여하는 중국 의료보험국은 타그리소(오시머티닙) 등 약 18개 품목에 대해서 각 제약사들에 기업 자기평가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으며, 여기에 임상자료 등과 함께 참조국 의약품 정보를 세세히 기재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시장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큰 중국 약가가 한국의 보험등재가격으로 낮게 책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본사 차원에서 불가피 우회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 지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이 점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정된 정부 재정에서 국민의 신약 접근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점점 약가를 인하는 구조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국내 보험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 이는 비단 글로벌 제약회사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내 기업 중 임상 3상을 준비하거나, SK바이오팜처럼 이미 출시를 한 회사들 중 한국 시장을 먼저 염두에 둔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혁신신약을 정작 국내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없는 환경에 놓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SK바이오팜은 미국과 유럽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 국내 시장 출시 계획은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임상 3상을 진행 중인 신약개발 회사들 조차 국내 출시 계획은 미국 출시 이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공공연하게 국내에서 (신약개발 전주기에 들어간 비용을을 보상할 만한) 약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국내 시장 출시는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한정된 재정 내에서 신약의 급여를 관리해야 하는 데 정부의 어려움을 짐작하지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 특히 다양한 암종에 처방될 수 있는 면역항암제, 억대 치료제 포문을 연 졸겐스마와 킴리아의 등장으로 정부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더 이상 한정된 재정 내에서만 혁신 신약의 가치를 책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혁신적인 신약을 담을 수 있는 약가 제도를 정부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레이저티닙 관련 강진형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와 인터뷰 중 나온 대목은 함께 고민해 볼 만한 담론입니다. 꼭 이 방식이 정답이라 할 순 없지만 혁신 신약의 가치를 인정할 만한 새로운 약가 제도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국내 보험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사보험과 정부 건강보험을 연계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과 사보험을 연계해 각 재정에서 누수되는 재정을 막는 것입니다. 특히 사보험의 경우 반드시 입원을 해야지만 보험금을 지불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불필요한 입원비가 사보험 재정에서 소요되고 있습니다.
또한 (임상적 근거가 불명확한) 면역요법, 뜸 요법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에서는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사보험에서는 보장해 줍니다. 이처럼 사보험과 건강보험을 연계해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재정을 신약의 적정 가치를 인정해 주는 데 써야 합니다.
더 큰 담론에서 정치권에서 보험 재정 확대 등도 논의해야 할텐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심평원과 공단이 사보험과 건강보험 연계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