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

"국회의원 분들이 환자들을 위한 법안 발의를 하는 건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그간 환우회 대표로 일하면서, 여러 국회의원 분들을 만나봤지만 진정으로 환우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느끼진 못 했어요. 그렇다 보니, 아직 관련 정책도 보지 못 했네요."

어느 기획이든 첫 번째 인터뷰이(interviewee)로 요청했을 때 선뜻 수락해 주는 이를 만나긴 쉽지 않다. 기획의도엔 공감해도 실제 기사가 어떤 의도를 담아 발행될 지 인터뷰이 역시 불안하기 마련이다. [HIT, 환자와 만나다]에서 환자단체에게 제21대 국회에선 어떤 보건의료 정책이 반영됐으면 하는지 질문을 던져보려는 기획 역시 섭외는 쉽지 않았다. 기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중에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가 첫 번째 인터뷰이가 돼 주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 백 대표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민원상담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환우들 개개인의 어려움을 위해 몸소 뛰는 백진영 대표에게 21대 보건의료 정책이라는 거대 담론보다 환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4월의 따사로운 봄 햇살만큼 환우들을 향한 그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날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민원상담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1. 환우 가족에서 신장암 환우회 대표가 되기까지 

 

남편 분이 신장암을 앓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남편이 투병할 당시 신장암 관련 약제가 없었어요. 믿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비뇨기과 학회장을 만나고, 구글링을 해서 신장암 신약 관련 임상시험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신장암 신약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제약회사와 연결고리가 생기게 됐죠. 처음에 무작정 제약회사에서 전화해서 임상이 어디서 진행되는지 다짜고짜 물어봤어요. 그러다 담당자와 통화하고, 운이 좋게도 남편이 관련 임상에 참여하게 됐죠. 이런 일을 겪으면서, 환우들이 신약 임상에 왜 이렇게 참여하기 어려운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어요. 동시에 다른 환우들과 가족들은 이런 어려움을 덜 겪게 도움을 드리고 싶었죠."

 

자연스럽게 환우회 활동으로 이어지신 거군요.

"남편의 투병 기간 동안 임상시험의 장점과 단점, 국내 의료시스템에서 중환자실의 문제점을 직접 경험했어요. 자연스레 개선해야 할 점들이 보이더라고요. 다른 환우 분들을 위해 이런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함께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죠. 남편이 떠나면서, 저 역시 이 자리를 떠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 환우 분들을 위해 해 드리고 싶은 부분이 많아요."

 

환우 가족으로 국내 보건의료시스템의 장단점을 더 잘 파악하셨을 것 같은데요.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병원 접근성이 굉장히 좋죠. 건강보험도 잘 돼 있고요. 다만 일반 시민들도 건강보험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가령 감기로 진료를 받을 때, 명세서나 처방전에 건보 재정이 얼마나 쓰이는지 명확히 명시되면 좋겠죠. 그래야 국민들도 건보료가 합리적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을 테니깐요.

또 산정특례 제도 등을 통해 중증 환우 분들도 약제 급여 혜택을 잘 받고 있어요. 다만 질병의 후기 단계로 갈수록 이런 급여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4기 환우 분들은 비급여로 약제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위험분담제 등 좋은 제도가 있지만, 아직 신약 접근성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거죠?

"저희 암종의 경우 면역항암제를 써서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환우 분들이 많아요. 실제로 치료를 받으면서, 사회 생활을 하시는 분도 꽤 있고요.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 오롯이 환자들이 고가 면역항암제 비용을 부담해야 하죠.

면역항암제도 위험분담제 같이 제약사, 정부, 환자 삼자가 부담을 함께 질 수 있는 구조로 갔으면 좋겠어요. 정부와 제약사 간의 줄다리기에서 환자들을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 나죠."

 

#2. 신장암 환우들의 이야기 

 

실제로 환우 분들에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저는 환우 분들이 '치료'라는 특정 영역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거든요. 제가 10여년 간 환우들을 지켜와 보니, 암 환우분들이 정신과 진료 혹은 심리상담이 병행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어요.

대부분의 환우들이 처음 암 진단을 받으면, 그야말로 멘붕이에요.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한 약제 정보도 알아야 하고, 심리적으로도 케어를 받아야 하고, 각종 사회보장 제도도 알아야하고. 실상 이런 준비가 된 환우가 과연 있을까요?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드리는 게 저희의 역할이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치료'에만 집중하죠."

 

환자들이 치료에만 집중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암 환우분들이 치료에만 집중하다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봐 왔어요. 환우 분들은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제 죽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완화 의료 개념에서 살펴보면요. 치료에 실패해도 마지막을 제대로 계획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해요.

실제로 암 진단 초기부터 호스피스 등 완화 의료 개념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암 치료 과정 전반을 계획할 수 있거든요. 단순히 치료 약제만 고려할 게 아니라, 진단 과정부터 완화의료 개념을 도입하고, 심리치료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해요."

 

암 환우 분들 입장에서 실제로 완화의료를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쉽지 않죠. 하지만 치료에만 집중하다, 더 이상 치료법이 없을 때 그 허탈감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상황을 받아들이시지 못 하는 환우 분들을 꽤 뵀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무리할 지도 중요하거든요. 대부분 마무리에 대한 계획은 잘 못하지만요.

사실 환우분들은 '마무리' '죽음' 등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커요. 실제 저희가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해 봐도 그렇고요. 가끔 저도 제 자신에게 내가 암 환우가 직접 되 보지 못 해 이런 담론을 쉽게 말하나 되돌아 보기도 해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완화의료 등 치료 요법이 더 이상 없을 때를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3. 환우들이 원하는 정책

 

이제 총선이 얼만 남지 않았는데요. 환우들이 바라는 정책은 무엇일까요?

"사실 환우 입장에서 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은 아니에요. 제가 뵌 국회의원들도 정치적 제스처만 할 뿐 실질적으로 환우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물론 국회의원의 역할은 중요하죠. 관련 법안을 만드는 주체니깐요. 보통 선거 공약을 환자단체 차원에서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급여 과정에 대한 의견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약가 자체보다 급여 결정 과정이 좀 더 투명하게 공개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급여가 결정되면, 저희는 가격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의사 결정을 거쳐 급여화가 이뤄졌는지 명확히 알기 어려워요.

또 급여 협상 기간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령 기준 시점에서 6개월~1년은 넘지 않는 식으로요. 정부와 제약사가 협상을 하는 동안 환자들은 그만큼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거에요. 경제성평가 등이 진행될 때도 단순히 치료 효과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돼야 하고요. 아직도 신장암 환우들이 면역항암제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속상해요."

 

해외 환우들의 상황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 환우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개선되길 바라시나요?

"해외에 나가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그들은 자신들의 투병 과정을 당당하게 밝히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요. 그 과정에서 치료제를 공급하는 제약사는 치료제 하나로 환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고요. 우리나라는 이런 활동 등이 광고로 비쳐질 소지가 있어서, 이런 활동이 쉽지 않지만요. 우리나라도 좀 더 시야를 넓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약사와 환자의 협력 관계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한국신장암환우회 

신장암으로 투병중인 환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완치의 희망을 키워나가는 있는 환자단체다. 환우회는 2004년 2월 인터넷카페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약 10000여명의 회원이 함께하는 환우회로 성장했다. 

지난해 6월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아 올해 심리케어사업 '감정 다이어리'와 약제 정보를 담은 치료제 E-BOOK, 1~3기와 4기용 정보북, 의료진과의 동영상 제작, 임상 지도 구축 등을 추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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