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이정욱 한국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 부모회 회장

뇌병변 환우들을 위해 만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이정욱 한국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 부모회 회장
뇌병변 환우들을 위해 만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이정욱 한국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 부모회 회장

따가운 햇볕으로 덴탈 마스크 너머 코끝에 맺힌 땀방울을 씻겨줄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회색 마스크 한 장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이정욱 회장은 이 마스크가 나오기까지 과정을 설명해 줬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라는 다섯 글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5월 초부터 학교를 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흔히 쓰는 덴탈 마스크, KF 마스크는 우리 아이들이 착용하면, 귀에서 빠졌어요. 스스로 착용할 수 없어 누군가 착용해 줘야 하는데 코로나로 접촉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쉽지 않는 과정이었죠. 우리 아이들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자 싶었죠."

그가 '우리 아이들'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이다.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은 뇌전증, 지적 지체, 시각, 청각, 언어, 자폐, 섭식장애와 희귀질환 및 난치질환 등으로 적게는 2~4가지를 중복으로 앓고 있다. 관련 질환으로 인해 평생 뇌전증 등 약물 복용은 물론이고 증상에 따라 수술을 해야 한다.

"우리 아이만 해도 뇌전증 약물을 평생 복용해야 해요. 이 외에도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근육 강직을 막기 위해 근육이완제를 복용하고 증상에 따라 보톡스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기도 하죠. 결국 약물로 치료가 효과가 더 이상 없으면, 수술을 하는데요, 여러 번의 큰 수술을 하는 아이들도 많죠.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고관절 수술을 3차까지 하고, 나중에는 근육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수술을 하기도 해요. 또 성장하면서 척추측만이 오기 때문에, 이 역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시계방향으로) 뇌병변 장애인들을 위해 한국중증중복뇌병변 학부모회에서 직접 제작한 턱받이, 방한용 부츠, 가이드북 

 

"맞벌이 불가능한데 병원비 약값 외 물품비 끝도 없어"

기본적으로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들은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 일주일에 2~3번 내원은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피할 수 없다. 노후자금은 커녕 '저축'이라는 개념과 멀어진 지는 오래다.

"맞벌이 자체가 불가능해요. 우리 아이들을 맞이하면, 전적으로 집중으로 아이들에게 집중해 돌봐야 하거든요. 이렇다 보니 수입 자체가 맞벌이 가정과 비교해 적을 수 밖에 없고, 여기에 주기적으로 치료비가 드니 재산 증식 자체가 어려워요. 서울시 중산층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중증중복뇌병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노후 자금은 꿈도 꿀 수 없어요.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은 위장이혼을 통해 기초수급자 자격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실제로 (중증중복뇌병변 환우가 있는 가정 중) 기초수급자가 많고요. 그나마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는 가족들도 모든 소비를 줄이고,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요. 비장애 아이까지 함께 키우려면 어려움은 가중되고요."

실제로 병원비, 약값을 제외하더라도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들은 다양한 보조기기, 기저귀 등 각종 물품으로 겪는 어려움도 크다. 그들에게는 휠체어를 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정이다.

"우리 아이들은 흔히 보는 휠체어 타는 것도 쉽지 않아요. 아이들 체형에 맞는 등좌판(자세 보조 유지기)이 있어야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거든요. 모두 아이들 체형에 맞게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저희 아이만 해도 2000년에 처음 사용했는데, 그 당시 가격이 350만원 정도였어요. 이 등좌판은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계속 바꿔줘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참다 못해 국가적 지원방법을 찾다가 당시 전동 휠체어가 급여로 208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뜻이 맞는 엄마끼리 모여 보호장구 급여 방법을 물색하고 다녔죠."

2008년 시작된 자세유지보조기기(휠체어 이너) 건강보험 보장구 보험급여를 추진하며, 2013년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다. 4년 여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쉽지않은 과정이었다.

"재활의학과, 소아 재활의학과 교수님들 뿐만 아니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복지부, 공단을 만나 급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공청회도 열고, 국회의원도 만나 국정감사 안건으로 올라가도록 하고, 일만인 서명운동도 펼쳤어요. 4년만에 급여화를 이뤘는데, 초기에는 복지부에서 만18세 이하만 지원을 해 주겠다고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18세 이상이면 걷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성인이 될수록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 지는데, 말도 안 되는 정책 결정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복지부와 논의 끝에 전 연령으로 확대했어요.

사실 당시는 보장구 급여화만 이뤄내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해보니, 국가가 알아서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필요한 건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뇌병변 장애는 그 실태를 알 수 있는 통계 자료조차 없어요. 기껏해야 연령대별 뇌병변 장애인 데이터가 전부죠. 우리 아이들은 국가 기본 데이터 안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2017년 처음 서울시 정책 테이블서

뇌병변 장애인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이렇게 정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한 그는 2011년 4월 회원이 500명으로 증가함에 따라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해 중증중복 뇌병변장애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활, 복지, 교육, 권익 등의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7년 처음으로 서울시 정책 테이블에서 뇌병변 장애인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 아이들은 평생 기저귀를 써야 하는데, 보통 기저귀가 유아용과 성인용만 있었거든요. 청소년기 아이들이 쓸 수 있는 기저귀는 국내에 없었어요. 2018년 시범 사업을 통해 한 달에 최대 5만원까지 기저귀 구입 비용을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이끌었어요.

이후 서울시에서 뇌병변 장애인 정책을 만들기 위해 현황 실태 조사 연구가 시작됐고요. 연구 결과는 중중중복뇌병변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기저귀 지원 사업 외에는 없다는 것이었죠.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19년 뇌병변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고 중지가 모아졌고, 박원순 시장의 발표로 뇌병변 마스트플랜 5개년 계획(~2023년)까지 총 23개 사업으로 603억원을 지원하게 됩니다."

12년 이상 뇌병변 환우들을 위해 뛰어온 그는 영리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의료기관에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사실 저희가 의료기관과 제약회사에 주요 소비자이지만, 오히려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만약 단순 소비자 개념에 빗댄다면, 저희야 말로 의료기관, 제약회사의 VIP 고객일텐데요. 하지만 저희는 오히려 대접은커녕 천대를 받아요.

대학병원 물리치료를 받을 때도 낙후된 환경을 개선을 요구하면, 소아 치료실 자체가 병원 입장에서 어려운 것이니, 이 조차도 감지덕지 받으라고 하시죠. 심지어 모 대학병원은 적자 운영을 이유로 소아치료실 자체를 폐쇄했어요. 국내 대학병원 규모 정도면 장애 아동의 생애 주기별 지원을 고려한 운영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한국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뇌전증, 지적, 지체, 시각, 청각, 언어, 자폐, 섭식장애와 희귀질환 및 난치질환을 적게는 2~4가지에서 그 이상을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중증중복 뇌병병장애인'의 복지와 그 가족의 행복한 삶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2008년 8월 서울시 소재 지체특수학교 학부모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으로, 2009년 6월 서울시 소재 지체특수학교 학부모 외 다수의 부모들이 참여해 '중증중복지체장애인부모회(중지모)'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2011년 4월 회원이 500명으로 증가함에 따라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중애모)'로 명칭을 변경하고, 서울시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 중증중복 뇌병변장애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활, 복지, 교육, 권익 등의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18일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2020년 1월 14일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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