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

"(사비라도) 무조건 파리로 가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은 한국에서 환우회를 만들기 이전부터 각종 국제 학술대회를 다녔다. 캐나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 회장은 자신이 앓고 있는 희귀질환을 알아야 했다. 운이 좋게도 6개월 만에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이라는 병명을 듣자마자, 그는 치료제 개발 현황과 각국의 의료 환경 등을 파악하고 아밀로이증 관련 학회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아밀로이드증은 체내의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면서 여러 조직과 장기에 섬유질이 형성되는 질환이다. 체내에 축적되는 단백질 덩어리들은 아밀로이드(Amyloid) 침전물 이라고 부르며, 아밀로이드가 쌓이게 된 장기는 점차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아밀로이드증의 종류는 일차성 아밀로이드증, 이차성 아밀로이드증,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으로 나뉜다.

일차성 아밀로이드증은 신체 전신적인 아밀로이드증 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며 골수조직의 형질세포의 일차적인 이상 때문에 나타난다.

이차성 아밀로이드증은 약 5%의 미만에서 발병하고 있으며 ,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만성적 감염과 같은 질환에서 이차적으로 발병한다. 결핵, 나병, 만성골수염,  만성 신우신염, 기관지확장증 등 만성 감염질환자들 에게서 많이 발병한다.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은 굉장히 드물게 나타나며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간에서 만들어지는 트랜스싸이레틴(Transthyretin, TTR) 단백질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하게 된다. 노인성 아밀로이드증은 유전성과는 달리 돌연변이 TTR 단백질이 아닌 정상 TTR 단백질이 조직에 침착되는 타입으로 주로 고령자에게서 발병한다.

아밀로이드 증상은 피로감, 발목관절의 부종, 체중감소, 어지러움, 위장관의 증상, 사지의 감각둔화 현상, 소변에서 단백뇨, 혀가 비대해진다.

히트뉴스는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을 만나 아밀로이드증 개념부터 환자단체 결성, 환우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들어봤다. 

"캐나다는 아밀로이드증 환자와 이를 치료해 줄 전문 의료진이 매우 부족했어요. 그러던 차에 한국 상황을 알아보니, 삼성서울병원에 '아밀로이드팀'이 별도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한국 의료진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2016년 한국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죠. 다양한 치료를 받다가 우연히 일본에서는 이 질환의 환자도 많고, 국제 학회가 큰 규모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와 멀지 않으니 고민없이 의료진과 학회에 함께 가겠다고 했죠."

 

국제 네트워킹 만들면서 국내 환자단체 만들어 

일본 국제 아밀로이드증 학회에 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희귀질환이라고만 생각했던 질환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환자 단체가 두 곳이나 있는 일본의 현실을 마주하며, 그는 환자단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의료진 세션도 아니고, 환자들을 위한 세션이었는데, 알고보니 일본은 약 50~100년 역사를 가진 환자단체가 두 곳이나 있었어요. 당시 그 세션을 통해 이 질병의 역사를 알게됐고, 환자단체와 의료진들이 유기적 활동을 보고 (환자단체 결성에 대한) 동기를 갖게 됐어요. 당시 학회 참석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게 됐어요.

그러다 파리에서 국제아밀로이드증연합회(AA) 창립 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환자단체조차 없었지만, 일단 세계적으로 이 질환 환자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했죠."

우리나라보다 환자가 많은 유럽은 일찍부터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이 질환은 인접 유럽국가들로 전파되고15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직접 받은 일본에 가장 많은 환자가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TTR 단백질 유전자의 변이는 전세계적으로 120종이 넘는데 국내에서 확인된 것도 16종에 이른다.

"AA 창립총회에서 질병에 대한 다양한 역사를 듣고, 전 세계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네트워크를 접하며, 이 질환이 희귀질환임에도 불구하고 고립돼 있진 않다는 희망을 봤어요. 이런 국제 네트워크에 한국도 속하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환자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환자단체가 만들어기 지기도 전, 그의 열정 덕분에 한국은 AA 네트워킹에 포함됐다. 이후 2019년 차곡차곡 절차를 밟아 국내에서 환자단체를 결성했다.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내가 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다는 느낌이 가장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저는 파리 창립총회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 걸 알았지만, 국내 환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거에요. 같은 질환을 앓는 환우에게 유익한 정보와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을 알리고 함께 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초까지 이렇게 한 두분씩 들어오시면서 환우회가 만들어 졌어요. 지난해 환자단체로 정식 등록하면서, 각종 서류들의 영문 작업도 병행했어요. AA 준회원으로 승인받기 위한 절차였죠. 내년쯤이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식 회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운이 좋게 미국에서 6개월 만에 진단을 받았지만, 그가 진단 받은 2013년만 하더라도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양한 정보를 통해 화이자의 빈다켈(타파미디스)이 임상 중이라는 소식을 알게 됐지만, 임상 참여는 쉽지 않았다.

"당시 진단을 받은 보스턴 센터에서 타파미디스의 임상 2상과 3상이 진행 중이었어요. 아직 타파미디스가 승인이 나기 이전이어서, 이 약물 대신 항염증제를 처방받아야 했는데, 캐나다 치료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한국은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빈다켈이 빨리 도입된 편이에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이어 비교적 빠른 템포로 치료제가 들어왔거든요."

비교적 단시간 내에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는 있다. 심근병증 증상만 가진 ATTR-CM 질환의 아밀로이드증 환자는 빈다켈을 복용할 수 없다. 아밀로이드증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크게 ▷신경병증(ATTR-PN) ▷심근병증(ATTR-CM)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보통 ATTR-PN은 대부분 유전형이고, ATTR-CM은 유전형과 야생형(wild-type) 모두를 포함한다. 삼성병원과 건국대병원 자료를 취합해 보면, 국내 아밀로이드증 환자 수는 약 100여명으로 집계됐는데, 환자 80%이상은 ATTR-CM 질환을 앓고 있다. 김 회장은 ATTR-PN과 ATTR-CM을 모두 가지고 있어 빈다켈 복용이 가능하지만, ATTR-CM 질환인 환자는 현재 치료제가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빈다켈은 ATTR-PN에 적응증이 있는 약물이고, ATTR-CM에 쓰이는 빈다맥스는 현재 국내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근병증 환자들, 신약 혜택 제대로 못 받는 아쉬움 

"환자들이 빈다켈을 복용해 보면, 확실히 신경 뿐만 아니라 심장에도 큰 이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국제 학회에서 발표된 최근의 연구내용을 보면 화이자의 빈다맥스라는 신약이 ATTR-CM을 타깃으로 했을 때 어느정도 생존율 개선도 보이고 있고요. 특히 국내는 ATTR-CM 환자가 대다수이니, 빈다맥스의 신속한 국내 허가와 급여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까지도 ATTR-CM 환자는 일반 항염증제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ATTR-CM 치료제가 없다는 문제 외에도 빈다켈 처방의 또 다른 문제는 말기환자(3~4기)가 빈다켈을 복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빈다켈은 유럽과 동일하게, 1기 환자에게만 적용되도록 허가와 급여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말기 환자에서도 허가와 급여가 모두 적용됐다.

"올초 ATTR-PN과 ATTR-CM 증상을 모두 가진 말기 환자 분이 돌아가셨어요. 빈다켈과 같은 좋은 약제로 증상 지연은 시도도 못 한 거죠. 특히 빈다켈을 복용하다가 약을 끊는 순간부터 현격하게 악화되거든요. 의료진 입장에서도 말기 환자에게 약제를 처방하고 싶지만, 허가사항 외에 처방을 할 순 없으니, 대체제를 처방하는데, 대체제의 효능은 훨씬 떨어지죠."

그는 앞으로 아밀로이드증을 갖고 있는 자녀 세대가 환우회를 통해 질환을 정확히 알고, 환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공포가 극대화되는 시점은 무지할 때에요. 내가 죽는다는 정보는 알았는데, 왜 죽는지 모를 때 그 공포가 배가 되는 것이죠. 환우회는 무지로 인한 공포를 깨뜨리는 게 가장 큰 목표에요. 유전병이기 때문에, 제가 이 질환을 앓고 있으면 저희 조카들도 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요.

미리 질환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우리 다음 세대들은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에요. 향후 개발될 치료제 혜택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앞으로 환우회를 통해 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닦아 놓을테니, 다음 세대에 이 질환을 겪는 이들이 환우회를 플랫폼 삼아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어요."

올해초 환우회에서 자체적으로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확진을 받을 때까지 평균 5년 이상의 시간과 3군데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에서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의 조기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아밀로이드증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 시스템 및 전문 의료진의 부족과 희귀질환에 대한 국내 의료계 전반의 인식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밀로이드증은 여러 장기를 침범하는 전신 질환이기 때문에 다학제 연구 네트워크를 통한 긴밀한 협의로 정확한 진단과 신속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국내에서 이와 같은 다학제 진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의료기관은 삼성서울병원의 아밀로이드증센터가 유일하다.

“아밀로이드증과 같은 희귀질환에 대해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립아밀로이드증센터(National Amyloidosis Center)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잠재적 환자군에 대한 위험을 관리하고, 확진 환자군에 대한 지속적인 치료기반을 마련하는데는 막대한 재정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희귀질환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복지 측면에서 적절한 대안이 모색돼야 합니다.

유럽과 북미, 일본 등에서는 국립아밀로이드증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질환에 대한 조기진단의 어려움이나 의료기관들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요.”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유전성 아밀로이드증(Hereditary Amyloidosis)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알려진 환자수가 100명이 되지 않는 매우 드문 희귀질환으로 전세계적으로도 어림잡아 수만명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 질환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일반 의료진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따라서 발병 초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오래 전부터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의 유병률이 높았던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치료제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최근 몇몇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임상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한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발병한 환자에게는 여전히 치명적이거나 난치성 질환으로 장애가 초래될 수 있으나, 조기 진단으로 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은 환자나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유전성 아밀로이드증은 부모와 자식 간에 대물림하는 유전질환으로 환자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가족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도 매우 크다. 희귀질환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복지 측면에서 적절한 대안이 모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환자 자신과 가족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이 모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환우회는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 간의 유대를 통하여 희망을 나누는 공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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