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앞으로는 개별 환자단체와 활동가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에요. 연합회가 전체 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지만 이제는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이 돼 환자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올 겁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의 믿음은 굳건했다. 2001년 그의 아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자 환자 보호자가 된 그는 "글리벡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 놓았다. 환자권리 보호 활동을 하는 봉사자, 상근자, 여러 단체가 환자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만든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연합회)'의 대표가 됐고, 그렇게 20여 년 활동했다. 

특히 자신이 [HIT, 환자를 만나다] 인터뷰에 참여하게 된 다섯 번째 환우회 대표라는 사실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언론사에서 환자 목소리를 듣겠다고 환자단체 인터뷰를 한다면 저나 한국희귀질환연합회장님, 이렇게 두 명이 나섰었죠. 2020년을 터닝포인트로 앞으로 10년은 개별 단체와 활동가들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2010년 2월 창립 당시 슬로건이던 '환자중심의 보건의료환경 조성'을 올해 2월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으로 바꿨다. 비전을 함축한 슬로건의 변경에는 그동안 10년 연합회가 환자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주력했지만, 앞으로 10년은 개별 환자단체가 직접 질환을 알리고,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연합회는 각 환자단체가 대외적 독자활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환자단체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를 위한 이슈가 '한 편의 드라마'라면, 환자와 환자가족은 주연·조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게 안 대표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환자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히트뉴스가 지난달 25일 안 대표를 만났다.

 

#1.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환자단체 역량 강화 

 

연합회 연륜은 10년이지만, 활동은 더 오래되지 않으셨나요?

"아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글리벡을 복용했어요. 환자 보호자로서 '글리벡의 현실적 접근성 운동'에 참여했고 그렇게 한국백혈병환우회 봉사자에서 상근자로, 사무국장에서 대표로 이어졌죠. 2010년 2월 4일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암시민연대 등 다섯 개 단체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창립하게 됐습니다.

모두 열심히 활동했는데 전체 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긴 힘들었어요. 백혈병환우회 목소리가 백혈병환우회 만의 의견으로 한정되었죠. 모든 환자의 복지와 권리를 외칠 운동을 함께 하려면 단체들의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했어요."

 

10년 만에 8개 단체와 5만2000명의 회원이 모였죠. 올해 연합회에 변화가 있나요?

"연합회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는 달라질 거에요. 몇년 전이라면 언론에서 환자단체 인터뷰를 한다면 저나 한국희귀질환연합회장님만 보도됐을 거에요. 그런데 히트뉴스도 여러 환자단체의 대표를 만나셨지요. 환자단체는 지금 100여개, 아니 몇 백개가 있을 거에요. 이제 연합회는 개별 단체와 활동가들이 많은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창립 때 슬로건이 "대한민국에 환자중심의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자"였는데 올해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으로 바꿨어요.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눈치보지 말자고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7주년 기념식 (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7주년 기념식 (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환자분들의 치료제와 의료기기 급여에 관한 요구는 늘 절실합니다.

"직능 단체들의 모임에는 몇 만명이 모이지만, 환자단체의 경우 100일동안 환자 1명이 시위를 합니다. 만약 100개의 환자단체에서 100명씩 모인다면 토론의 자리를 만들 수 있어요. 환자단체가 역량을 키우면 사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0년 전 시민단체와 기업, 의료공급자단체는 물론 국회와 정부가 한 테이블에 앉으면 환자단체인 우리는 단역처럼 느껴졌어요. 

'환자 이슈'에 있어서는 철저히 환자가 주연, 환자가족이 조연, 나머지 모두는 주연을 위한 단역이 돼야 한다고 봐요. 적어도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한 드라마에선요."

 

#2. 환자 한 명이 무대에서 외친 샤우팅… 정책을 바꾼다 

 

 "대사없는 단역"은 조명받기 힘들잖아요. 상황 반전을 위한 고민은 진행형이시죠?

"그렇죠. 그래서 2012년 6월부터 환자 의료민원과 관련한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도 하고, 함께 공감하며 응어리도 풀기위해 '환자 샤우팅 카페'를 해봤어요. "우리 얘기를 들어주세요"라는 의미였죠. 환자와 환자보호자가 주연과 조연이 돼 외치면서 정책, 제도, 법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폐암 치료제 '잴코리'를 복용했던 두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14년 무렵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됐어요. 환자들이 절절하게 요구했는데 말이죠. 폐암 환우회 카페지기들에게 "급여화 요구가 많던데 샤우팅 카페에 두 분정도만 '샤우팅' 해줄 수 있는지" 알아봤죠.

말기 폐암 환자셨던 김경희씨와 박소현씨였어요. 김경희씨는 '잴코리'가 워낙 고가라 돈이 없으니 실손보험을 적용받으려고 매일 병원에 갔어요. 그래야 20만원에 받을 수 있으니까요. 입원 당일만 받고 퇴원하는 날은 비급여었거든요. 그러다가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고 채무불인증 소송까지 진행됐어요. 참다못해 금융감독원 앞에서 시위를 했고, 퇴원 약도 실손보험에 적용되는 걸로 바뀌었어요.

두 분이 전체 환자를 위해서 본인 모습을, 목소리를 다 공개석상에서 나서준 거에요. 연합회가 함께 연대한 끝에 잴코리는 위험분담제(RSA) 적용까지 이어졌어요."

김경희씨가 '환자 샤우팅 카페'를 통해 잴코리 복용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김경희씨가 '환자 샤우팅 카페'를 통해 잴코리 복용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예전과 비교해 환자단체의 목소리는 정책에 얼마나 더 반영되나요?

"옛날과 비교하면 환자단체 목소리는 정책과 제도, 법률에 반영되고 있어요. 환자 샤우팅 카페로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는 있었어요.

예들 들면,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가 그렇죠. 법안 발의 하루 만에 폐기되는 우여곡절도 겪었고요.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입법을 강하게 주장할 생각입니다. 유령수술 의료인 면허취소 입법화와 성범죄 의료인에 면허취소 입법화도 추진할 겁니다.

특히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료법 개정 상 합의가 안 됐어요. 몇 년 늦어졌지만 수술실 안에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낼 거에요. 우리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 목소리가 있거든요. 이 목소리를 국회에 전하고 싶어요."

 

21대 국회에 우선 제안하고 싶은 입법 사안은 뭔가요?

"수술실과 반대로 이미 의료기관 내 진료실 등에는 CCTV가 설치돼 있죠. 그런데 중대한 의료사고와 분쟁이 있었을 때만 확인해야 하는데 의료기관은 언제든 열람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 볼 수 있다는 것인데 환자 권리 침해입니다. 진료실 등의 CCTV를 의료기관 종사자가 함부로 보지 못 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할 계획이에요."

 

#3. 고가약제 급여화… 사회적 공론으로 해결해야 

 

-환자에게 절실한 치료제 급여 이슈는 끊이지 않습니다.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와 표적 면역항암제가 그렇잖아요.

"글리벡, 루타테라, 면역항암제는 모두 환자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해 준 약이에요. 건강보험 급여가 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죠. 

급여당국이 약제비를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할 수 있을지 고민해주고, 합의를 제안했으면 좋겠어요. 대안이라도 줬으면 해요. 앞으로도 좋은 신약과 의료기기가 나올 텐데 환자들이 건강보험을 믿도록 해줘야죠. 비급여 고가 약제와 의료기기로 부담 느끼는 환자 많아요.

연합회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약제평가위원회에 속해 있는데요, 사회적 공감과 공론을 이끌어야죠. 환자들은 급여화를 요구하고, 우리는 각 당사자들을 설득할 거에요."

환자단체연합회와 면역항암제 치료 환자들은 고가약 논란과 재정분담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한국오노약품공업·한국BMS을 찾아가 면역항암제 옵디보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해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지난달 14일 개최했다. 면역항암제 옵디보로 치료받고 있는 신세권 신장암 환자가 발언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와 면역항암제 치료 환자들은 고가약 논란과 재정분담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한국오노약품공업·한국BMS을 찾아가 면역항암제 옵디보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해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지난달 14일 개최했다. 면역항암제 옵디보로 치료받고 있는 신세권 신장암 환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회가 환자 개인과 정책 입안자 사이 '가교' 같은데요?

"보건의료와 의약산업 대부분 정책 이슈는 환자와 연관됐어요. 2010년대와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환자단체가 역량이 부족해 이슈를 감당하지 못 했어요. 이제는 여러 정책 이슈에 이야기할 거에요. 환자 중심에서 필요한 요구사항과 대부분 정책은 환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신약에 대한 치료 접근성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라는 장벽 앞에서 앞으로도 불멸의 이슈일 것 같습니다. 

"좋아지고 있다지만, 환자가 느끼기엔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많습니다. 신약의 허가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고 느껴요. 글리벡 허가도 스위스와 미국, 그 다음이 우리나라였어요. 하지만 2011년 약가제도가 바뀌고 난 뒤부터 허가를 받으면 급여로 연계되니 제약사가 '허가 받기를 미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 먼저 출시한 후 우리나라는 후순위에 밀어놓는 것이죠. 

아이러니지만 최근에는 허가받고 1~2년이면 대부분 급여까지 받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많이 빨라졌어요. 예전에 비해 신약의 허가는 늦어지고, 급여는 빨라진 거에요. 그러나 제가 느끼기에는 허가와 급여 모두 "빨라져야 한다"는 거에요.

급여가 더딘 이유가 정부와 제약사 간 '돈'의 문제라면 논의해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요. 검토하는 행정력에 문제가 있다면 충분한 심사 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나라의 의약품 접근권은 '건강보험 급여화'에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가격이 비싸면, 기본적으로 환자는 접근을 못 해요. 급여화가 신속히 이뤄져야 해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2010년 2월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질병·이념·국경을 넘어 환자들의 투병환경 개선과 복지·권익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환자단체들의 연대체다.

지난 2010년 2월 4일 창립됐고 현재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NP+ 등 8개 환자단체, 5만2000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연합회는 지난 2월 4일 창립 10년을 맞이해 슬로건을 '아파도 걱정 없는 세상'으로 바꾸고, 다음 10년에는 개별 환자단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소속 환자단체들을 대상으로 '환자단체 역량강화 요구도 조사'를 한 결과 '환자단체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즌 1을 시작한다.

9월에 개최 예정인 시즌2부터는 네이버·다음 등 웹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환우카페·환우회 카페지기·운영자 등을 초대해 환자단체·환우카페·환우회가 대외적 독자활동이 가능한 환자단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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