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대한 재정분담' 키워드 던진 환자단체연합회

"단순히 면역항암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고가의 유전자·세포치료제는 계속 나올 텐데, (우리는) 고가 신약이 나올 때 마다 이렇게 집회를 해야 하나. 환자들에게 신약이 희망이 아닌 절망이 돼야 하는가."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4일 한국오노약품공업 앞에서 열린 면역항암제 옵디보·키트루다의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해 한국오노·BMS와 한국MSD에게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안 대표는 "제약회사와 정부 모두에게 환자에게 신약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재정분담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오전 10시 한국오노약품공업 앞에서 면역항암제 옵디보·키트루다의 건강보험 급여기준 확대를 위한 한국오노·BMS와 한국MSD에게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고가신약에 대한 재정분담은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 정부, 기업, 국민(환자)이 모두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은 졸겐스마보다 앞서 허가된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 '스핀라자'로, 급여 상한금액이 9235만원이다. 환자 당 첫해 5억5400만원, 그 후 매년 2억 7700만원의 약값이 들어간다.

졸겐스마와 킴리아까지 가세하면 '억' 소리나는 치료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졸겐스마는 1회 투여로 SMA를 치료한다. '원샷 치료제'인 졸겐스마의 약값은 약 25억원(210만 달러)에 이른다. 미국에서 킴리아 투약 비용은 1인 당 5억3566만원(47만 5000달러)이다. 작년 5월 일본에서 아시아 최초로 킴리아의 의료보험 적용을 승인했으며, 일본에서 약가는 1회 투여당 3억6000만원(3349만엔)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 대표의 '고가 신약에 대한 각 주체의 재정분담'은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정부에선 한정된 약제비를 이유로 고가 신약에 대한 급여 확대를 망설이고 있고, 제약회사는 신약의 가치를 이유로 약가 자체를 내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당장 생사 기로에 놓인 환자들은 이들의 줄다리기에 속수무책이다.

한국환자단체엽합회는 14일 기자회견문에서 "환자가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재정당국과 제약사가 힘 겨루기를 하는 동안 면역항암제 약값을 감당하지 못한 암환자들은 생명 연장이나 완치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죽어간다"고 밝혔다.

정부는 면역항암제와 같은 중증질환 약제비 재원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은 몇몇 공식 석상에서 언급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 계획은 내놓지 못 하고 있다.

곽명섭 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항암제, 희귀난치치료제, 중증아토피치료제 등 중증질환 약제비에 재정이 쓰일 수 있도록 별도 규정을 만들겠다"고 말했었다. 곽 과장은 "지출구조 분석을 위한 장기적 계획을 용역 연구를 거쳐 세울 계획"이라며 "우선 단기 대책을 위해 제네릭 제도 약가개편, 재평가 실시를 통해 얻어진 재원을 중증질환 치료제에 쓰일 수 있도록 별도의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레이드 오프 제도를 공식화 해 각 제약사와 직접적으로 논의를 할 것"이라며 "특허만료의약품과 신약의 트레이드 오프 제도를 통해 회사 역시 구조적 개편에 수락해 줘야 한다"고 했다.

곽 전 과장의 이런 계획 자체에 반대를 하지 않지만, 업계는 과연 특허만료약이나 제네릭 약가에 쓰인 재정이 신약에 할당될 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약가 담당자는 <HIT 블라인드>에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등 정부가 약제비 절감과 관련된 정책을 시행했지만, 과연 이렇게 절감된 재정이 신약으로 돌아갔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선 약제비 뿐만 아니라 '사용량'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 약가 담당자는 "제산제, 지사제 등 우리나라는 불필요한 약제를 과다하게 처방하고 있어 이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며 "의료진을 대상으로 사용량 통제를 해야 하는데, 정부가 의사보다 제약사에 규제를 가하는 것을 더 손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곽 전 과장은 이와 관련해 원론적으로 사용량 통제에 동의했으나, 구체적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약제 사용량 적정화는 단순히 약제비 뿐만 아니라 의사 처방,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위 등 종합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현재 복지부 차원에서 고민이 많다"고 언급했었다.

신약에 대한 부담을 업계에만 지워선 안 된다는 업계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히트뉴스에 "면역항암제 등 앞으로 나올 고가 신약에 대한 재정분담을 회사와 정부가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회사에게만 그 부담을 전가하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암종 별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암 종간 급여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환자단체연합회는 급여 면역항암제 급여 촉구 기자회견을 제약회사를 시작으로 재정당국(심평원 등)에도 동일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급여 확대 문제는 제약사뿐만이 아니라, 재정당국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면역항암제 급여 확대에 대한)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앞으로 정부도 급여 확대를 적극적으로 임해 주길 원한다"며 "신장암과 같은 소수 암종에 대한 급여 확대 논의도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