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

"갈급했어요. 항상 아픈 내 아이는 조금만 방심해도 쉽게 제 곁을 떠날 것만 같았죠. 이런 제 아이는 아프다는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해요.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신현민 회장의 뒤를 이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이 된 이태영 회장. 이 회장은 앞서 9년 동안 연합회에서 부회장이었다. 그에게 9년간 연합회에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아픈 아들을 향한 '갈급함'이었다고 말했다. 히트뉴스는 이태영 신임회장과 연합회에 몸 담아온 경험,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 신임 회장으로서 포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태영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

 #1. 아들과 연합회…"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여기까지 왔죠" 

 

9년 동안 연합회에서 부회장 직을 수행하셨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연합회 초창기인 2003년 쯤 가입해 지금까지 18년간 활동하고 있어요. 희귀질환인 대사이상증후군을 앓는 아들의 특수분유를 구하기 위해 가입했는데, 당시엔 특수분유를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죠. 이런 문제를 정책적으로 지원받을 수 없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던 중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를 알게 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무엇이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회 일을 하게 했을까요?

"아들의 질환 특성상 완치가 어렵고, 언제 어떻게 상태가 나빠질지 몰라요. 아들이 대사이상증후군을 진단받았을 때 앞으로 5년~10년 정도밖에 못산다는 얘기를 들었었죠. 그랬던 아이가 스무살이 됐어요. 1년이라도 더 살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특수분유를 구하러 다니고, 신약이 들어올 때면 신약 처방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을 위한 활동은 결국 환자와 부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정부가 해주는 것이 아니었죠. (연합회 활동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이 직접 뛰어다녀야 하는 환경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어요. 이런 생각을 계기로 한국선천성대사질환협회도 설립했고,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활동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며 연합회 회장직을 맡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가정이 편안해야 직장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직장과 연합회 활동을 병행하는 어려움보다 내 아들, 자식이 먼저였기 때문에 고민 없이 수락할 수 있었죠. 아들 때문에 20년 가까이 연합회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건 이전 회장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직접 겪었고, 환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모여서 지금의 연합회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연합회는 다른 환자단체와 달리 다양한 질환을 앓는 환우들이 있잖아요. 공통된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가족마다 처해있는 상황과 입장은 모두 다르죠.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만큼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어요. 환자와 가족들이 하나로 모여야만 의약품 허가, 의료보험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잖아요. 이런 사실에 다들 깊이 공감하고 있죠."

 

 #2. 산정특례 본인부담금 암은 5%, 희귀질환 10%…"임기 중 개선 목소리 높일 것"

 

코로나19 때문에 병원 방문이 어렵다고 들었어요. 환우들이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요?

"우선 병원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졌어요. 체온 확인도 그렇지만 필요하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해요. 만약 (치료 지연으로) 고암모니아혈증이라도 발생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진료를 위해 대기해야 합니다.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뇌압이 올라가면 열이 날 수밖에 없는데, 이 증상이 모두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환우 중에) 암모니아 수치로 인한 미열 때문에 위독한 상태임에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상대사증후군 환자들은 상태가 순식간에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평균 6시간이나 되는 검사 결과 대기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릴 수도 없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외래 진료, 응급실 방문, 병원 입원 같은 모든 절차가 더 까다로워졌어요. 보호자 면회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은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개선 방안이 있을까요?

"중증난치성환자들을 위해 새로운 병실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압 병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중증희귀·난치성질환자들이 다른 병동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줄 수 없는지 안타까움이 큽니다. 

의료진 부족뿐만 아니라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이 진료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의료 시설이 서울 3차 병원에 치중돼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지방 거점 병원이 더 활성화돼야 하고 더 많은 전문의도 배치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실정이에요.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거점병원 시스템은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태영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
이태영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

진료 시설 부족이 지역거점병원 시스템으로 개선되지 않나요?

"지방에 사는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이 응급한 경우 굳이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까지 가지 않고 지역거점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합니다. 현재 지역거점병원들은 흔히 내원했을 때 거치는 진단, 처방, 입원, 퇴원 등의 과정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무엇보다 보호자 입장에서 전문의료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반드시 대형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는 병원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회장으로서 꼭 이뤄내고 싶은 목표가 있으실텐데요.

"본인부담금 산정특례제도 중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 부담하는 비율이 조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암환자의 경우 산정특례제도에 따라 본인이 진료비의 5%만을 부담하면 됩니다. 반면 희귀질환자는 10%를 부담해야 합니다. 항암제 같은 경우엔 위험분담제 같은 제도를 통해 빠르게 보험급여를 받고 있는 반면, 희귀 ·난치성질환자들은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평생 약을 먹고,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본인부담금이 10%로 책정된 것은 너무 큰 부담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들만해도 3개월 치 본인부담금이 100만원 이상입니다. 특히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은 장애를 동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질환뿐만 아니라 신체적 장애도 해결해야 한다는 뜻인데 법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희귀 ·난치성질환자의 본인부담금 비율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짧은 기간 내 이뤄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상병분류코드와 질환명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완료하고 싶어요. 웬만한 질환들은 진단을 받으면 상병코드가 확인이 돼 바로 보험 적용이나 산정 특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귀·난치성질환은 상병코드와 질환명이 모두 일치해야 산정특례 등록이 가능한데, 상병코드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에요. 질환을 등록해 상병코드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과정도 무척 어렵습니다. 희귀 질환과 난치성 질환을 분리하든, 분리하지 않든, 상병코드 하나만으로 바로 치료제를 처방받고 산정 특례를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연합회는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분들로 인해 치료제 급여에 대한 목소리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현 시점에서 급여가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치료제가 있나요?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환자들과 가족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파악하는 중입니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환자 수는 적고 치료제 개발은 더뎌 치료제 비용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에 쓸 수 있는 약이 있어도 현행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허가 받기가 쉽지 않죠. 

앞서 말씀드렸듯, 급여가 어려운 치료제를 위해 위험분담제도(RSA)나 경제성평가면제제도 등의 신약 허가 제도가 갖춰져 있잖아요. 이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희귀질환치료제 허가와 급여에 있어서는 아직 현행 제도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무엇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만성질환 치료제 같은 기존 약제들과 같은 경제성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희귀질환의 질환특성을 고려한 제도 마련과 운영이 필요합니다."

 

 #3. 치료제 뿐 아니라 환우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펼칠 것 

 

희귀·난치성질환자 분들은 비단 치료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편견이 가장 힘듭니다.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생각으로 가족 간 갈등이 매우 심한 편이에요. 

상상 이상으로 삶의 질이 정말 많이 떨어져요. 장애 때문에 병원 진료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 질환 때문에 성인이 돼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는 중장년층도 많아요. 희귀·난치성질환자들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라 경제적 부담도 크고요. 병원 진료 한 번에 가계가 흔들릴 수도 있는 가족들도 있어요. 정신적인 부분도 굉장히 힘든데, 20년 동안 한결같이 아들을 돌보고 있고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지만 가끔 너무 힘들어서 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찰나여도 그런 생각이 스치면 자식이 있는 부모로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힘들죠."

 

치료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의 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의 삶의 질이 전체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환자들이 평소에 자주 외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연합회에서는 매년 가족 캠프를 진행하고 있어요. 중증희귀·난치성환자들은 가족들까지 모두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깝죠. 웬만한 희귀·난치성질환자 가족들은 이에 대한 고민과 고충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예전에 TV에서 해외에서 환자들의 외출을 위해 구급차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암을 포함해 중증질환, 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보내주고 가족 간에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이었는데요, 급식차 뿐만 아니라 전문 의료인, 간병인도 함께 지원해주는 것을 봤어요. (기회가 된다면) 연합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구급차가 어렵다면 캠핑카와 간병인을 지원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마련하면, 환자나 가족들이 병에 대한 부담없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 이런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 시간 외에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질환 교육, 전문가를 초빙해 진행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싶어요."

 

연합회에서 꼭 해 보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휴양림을 만들어서 환자들과 가족들이 누구나 와서 쉬어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요. 연합회 활동을 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자와 가족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지금부터라도 이상을 높게 잡아야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질 향상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 희귀·난치성질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다면, 저 역시 뿌듯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희귀난치성질환 환우 권리옹호와 복지향상, 정보공유 등을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01년 설립된 사회복지기관이다. 연합회는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며 국가 정책 개발협력, 해외 유관기관과의 교류, 의료 및 문화복지사업, 후원홍보사업, 교육자활사업 등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들의 복지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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