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보고서 발간 웨비나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희귀질환'을 정해야 할까?
씨에스엘베링 후원 아래 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보고서 '침묵 속의 고통: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희귀질환 인식 및 관리수준'을 발표하며 이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보고서 발간을 기념해 16일 웨비나가 개최됐는데, 찰스 로스(Charles Ross) 이코노미스트 아시아 편집장 사회로, 매튜 벨가드(Mattew Bellgard)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희귀질환 네트워크장, 리투 제인(Ritu Jain) 아시아태평양 희귀질환 연합회 회장, 제시 퀴글리 존스(Jesse Quigley Jones) 이코노미스트 국장, 피터 차우(Peter Chow) 씨에스엘베링 아시아태평양 의학 및 마켓엑세스 전무이사가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보고서는 지난해 10월부터 11일까지 호주, 중국, 일본, 한국, 대만 의료진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네 명의 주요 전문가들과 사전 자문 인터뷰에서 수립한 설문 방식을 기반으로, 희귀질환에 대한 각국 의료진의 이해도를 측정해 제시합니다. 또 양적 자료의 수집 및 분석 후, 13명의 핵심 전문가 그룹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결과의 정성적 분석을 수렴했다고 합니다.
히트뉴스는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이날 진행된 웨비나 내용을 정리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진단 후 근거 기반의 치료 가능한 희귀질환자 3명 중 1명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희귀질환은 6000~7000개에 달합니다. '희귀질환'이라고 정의된 의미와 모순되게도, 아태 지역에만 2억5800만명가량의 많은 환우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중 약 50%가 소아 환자입니다.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의료비지원사업 대상으로 희귀질환 1038개가 등록돼 있으며, 25만명 이상 환자가 희귀질환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의료진들은 희귀질환에 대한 표준 진료 지침이나 규제 당국에서 승인된 의약품, 진단 및 치료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평균적으로 희귀질환자 3명 중 1명만이 근거에 기반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희귀질환 분야의 질병 부담과 미충족 수요가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수준임을 의미합니다.
이번 보고서에 한국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안윤진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과장은 "2015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된 이후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진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시사점에 공감했습니다.
리투 제인(Ritu Jain) 아시아태평양 희귀질환 연합회 회장은 "아태지역의 약 6%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며 "희귀질환에 대한 부담은 천식, 당뇨병과 같은 질환과 유사해 최근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희귀'의 기준은 무엇인가?… "유병률 기준 세워야 하지만 한계점도 있어"
보고서에 담긴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94%는 희귀질환 유병률에 대한 수치가 어떤 형태로든 희귀질환을 정의하는데, 사용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호주,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은 각기 다른 희귀질환 기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17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2만명 미만의 환자의 질환(약 1만명당 3.9건)을 희귀질환으로 정의합니다. 이 밖에 호주는 1만명당 5건, 일본은 50만명 이하의 질환, 대만은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중국은 아직 데이터 부족으로 마땅한 기준이 없는 상황입니다.
매튜 벨가드(Mattew Bellgard)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희귀질환 네트워크장은 "정확한 유병률에 대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별 희귀질환 역학 자료도 부족한 실정이다"며 "각 국가별로 희귀질환에 대한 유병률 정의를 위해 각국 정책 담당자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희귀질환의 기준을 단순히 유병률로 한정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Elizabeth Elliott) 시드니대학 소아아동보건학과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모든 희귀질환이 유전적인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며 "희귀 사고, 희귀 감염, 희귀한 약물 부작용 등으로 희귀질환의 개념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또 리차드 빈스(Richard Vines) 호주 희귀암환우회 대표는 "희귀암의 경우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유병률 대신 발병률 수치를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유병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책적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에 자원을 분배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목표와 자원 여부에 따라 어떤 질환이 '희귀질환'으로 정의되는지가 큰 부분으로 결정됩니다.
대만 희귀질환재단의 Min-Chieh Tseng 공동설립자는 "대만의 경우 유병률 수치에 따라 희귀질환을 정의하기 때문에, 기준 범위에 들어오는 환자는 보다 용이하게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설문에 참여한 다른 나라에 비해 희귀질환 숫자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대만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 희귀질환자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지원이 제공되지 않고, 치료비의 10%는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응답자 44%는 환자단체 인지도 부족…12%는 지역내 환자단체 부재
이 보고서를 편집한 제시 퀴글리 존스(Jesse Quigley Jones) 이코노미스트 국장은 희귀질환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환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에 나온 환자단체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설문 응답자 44%는 환자단체가 있는지조차 몰랐고, 응답자의 12%는 지역내 희귀질환 관련 단체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제시 국장은 "환자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환자단체를 비롯한 대표기관이 (희귀질환 환경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결정적 요소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귀질환 환자들의 목소리는 (정책적으로 크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호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미진단 질환 프로그램 유전학서비스 과장인 그레이드 베이남(Gareth Baynam) 유전학박사는 "환자 의견, 환자권리단체, 희귀질환 커뮤니티 대표기관 등이 의료제도 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결정자 (determinant)"라고 꼽았습니다.
제약사 차원에서 신약개발 연구 초기부터 환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피터 차우(Peter Chow) 씨에스엘베링 아시아태평양 의학 및 마켓엑세스 전무이사는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신약개발 연구(reserch) 프로그램에 환자 목소리 직접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고서는 희귀질환 관리 수준 개선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 외에도, 희귀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가 단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데이터의 수집 및 활용 방식 개선 ▲의료진 교육 강화 ▲이용 가능한 지식의 광범위한 보급 ▲환자단체 파트너십 기반의 통합적 사회복지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치료 접근이 수반된다면, 희귀질환 환자들이 각국의 보건의료 정책 결정에 발언권을 갖고,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양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제시 편집장은 이번 보고서의 시사점에 대해 "아태지역 전반적으로 희귀질환 분야의 보건의료 체계는 보다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발전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희귀질환 분야의 의료 및 사회적 수요를 모두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손지영 씨에스엘베링 코리아 사장은 보도자료에서 "보고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씨에스엘베링은 국내 혈우병 환자를 비롯한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