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김기상 한국MSD Patient engagement leader

회사엔 두 부류의 직원이 산다. 주어진 업무만 하는 직원과 자신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해 나가는 이. 주어진 업무만 하는 직원이 굳이 자신의 맡은 일과 시간을 타인(기자)에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기상 한국MSD 대외협력부 부장(Patient engagement leader)은 주저없이 제약사 환자 담당자 첫 인터뷰이(interviewee)가 돼 주었다.

그는 MSD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 '다나음' 기획은 물론이고, 암 경험자들이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생활 협동 조합까지 구상 중이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환자' 생각뿐 인 듯 보였다. 환우들이 처한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고민하고 있는 김 부장과 인터뷰를 통해 환우들의 어려움,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해 나가는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김기상 한국MSD Patient engagement leader 

#1. 제약회사 환자 담당 부서가 하는 일

-히트뉴스 독자분 들께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한국MSD에서 환자 업무 리더(Patient Engagement Lead)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환자분들 혹은 환자 단체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권한이 유일하게 부여된 직무를 맡고 있어요.

현재 환자단체들의 역량강화 등 환자 중심의 의료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업무 전반을 맡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다나음(다시 나아가는 한걸음)'을 운영하고 있어요. 키트루다 약제비 환급 지원 프로그램의 운영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약사 환자 담당자는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잖아요. 글로벌 본사도 그런가요?

"본사에는 공중 보건, 정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총괄하는 PCPH라는 부서가 있어요. 환자관련 부서는 이 조직에 속해 있고요. 특히 환자관련 업무는 환자 참여(patient engagement), 환자 혁신(patient innovation), 환자 경험(patient experience) 세 부서로 나눠져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제품의 개발부터 판매 후까지 환자들의 의견과 경험, 통찰력(insight)이 반영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쉽게 말해 환자들은 직·간접적으로 회사가 생산하는 의약품의 전 과정에서 참여할 기회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치료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있는 영역을 찾기 위해 ▲임상 디자인을 설계할 때 ▲제품의 복용 방법, 패키징 결정 등의 단계에서 환자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환자들은 치료를 통해 질병을 치유하고, 삶이 바뀌기 때문에 환자들의 경험은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실제로 환자들의 의견을 통해 회사 혹은 의료진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생각해 볼 수 있죠. 또 출시 전후로도 환자들의 경험과 조언을 통해 해당 약제가 환자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2. 미국과 유럽의 환자들이 헬스케어 산업에 미치는 영향

-국내 일각에선 제약사와 환자 단체 사이의 직접적 연결 고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 이런 상황이 환자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요?

"사실 (제약사와 환자단체의 관계를 부정적을 보는 건) 국내만 그런 건 아니에요. 우리나라도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봐요. 외국처럼 좀 더 투명하게 공개된 구조가 가능하다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미국과 유럽에선 규모가 큰 환자 단체는 평균적으로 제약사 8곳으로부터 펀딩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기금을 바탕으로 단체는 환우들을 도울 수 있고, 환자들 역시 통상적으로 펀딩 능력이 있는 단체를 신뢰하기도 하죠.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미국 등에선 '환자 옹호 전문가'의 연봉이 평균 약 5만 달러(약 6145만원)에 이른다고 해요. 하지만 국내의 경우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 환자 옹호 전문가들이 의지가 있어도 활동하기가 어려워요. 대부분 환자 단체 분들의 자발적인 봉사, 헌신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죠.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환자 단체가 투명하게 펀딩을 받고, 이를 환자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향상 및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환자 단체가 많이 생겼어요. 제약회사가 국내 환우 단체에게 펀딩을 한 뒤,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어려운가요?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에요. 외국의 경우, 환자 단체가 행사를 개최할 때 기부(charitable donation)와 후원(스폰서 공개)을 통해 펀딩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 대중광고금지(DTC) 이슈가 있어 펀딩을 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어려워요. 하지만 기부나 후원의 투명성과 선의가 담보된다면 향후 더 합리적이고 발전된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까 환자 옹호 전문가를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이죠?

"단체에 속해 활동하시는 분이 있고, 개인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어요. 실제로 외국에서는 환자 옹호 전문가가 하나의 직업이며, UCLA에는 전문가 양성 과정이 있어요.

국내에선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속된 한 보호자가 해당 커뮤니티에 있는 환자들이 의료진과 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봤어요. 이 분은 환자 옹호 활동에 대한 열정과 지식이 많아, 지역에 상관없이 환자 분과 동행하며 커뮤니케이션을 도왔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본업으로 돌아가셨어요. 국내는 이 처럼 자원봉사, 재능기부로만 활동할 수밖에 없어, 지속적으로 이 직업을 영위할 수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죠.

전문적으로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생긴다면 환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재정 상태와 치료 목표에 맞는 최적화된 치료를 받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거에요. 앞으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환자 옹호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선 환우들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헬스케어 산업에 반영되는지도 궁금해요. 실제로 환자 관련 국제 컨퍼런스도 많이 참석하셨잖아요. 외국은 환자들이 헬스케어 주요 이해당사자로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인가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질환과 관련된 임상 데이터 등 학회 발표 내용을 들을 수 있어요. 또 혈액암 관련 학회인 미국혈액학회(ASH)에서도 별도의 환자지원(PA) 세션이 마련돼 있고요. 이런 식으로 국제 학회에서는 환자 단체가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세션이 열리고 있죠.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에 발맞춘 변화가 감지됩니다. 2016년 5월 암환자들의 항암 신약 접근성 향상을 위해 종양학회 의료진과 여러 환자 단체가 암치료 보장성 확대 협력단(KCCA)을 발족했어요. 이후 대한종양내과학회 학술대회 개최 때 비급여 약제로 인한 환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소개하고, 미디어, 정부 관계자, 의료진, 환자 단체가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별도의 세션을 마련하는 등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세요?

"과거에는 정보의 비대칭성 혹은 부족 등으로 환자가 치료를 결정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환자들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능동적으로 본인의 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커지고 있어요.

최근 전세계적으로 '나(환자)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Nothing about me without me)'는 슬로건으로 환자단체들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죠. 이처럼 치료 의사 결정 과정에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환자들의 이해도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으로 환자들을 대변하고 옹호할 수 있는 환자 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 지고 있어요."

#3. 국내 환우들의 이야기

-외국도 그렇겠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급여 이슈가 환자들에게 중요할 것 같아요. 실제로 환자분들을 만난 경험에 비춰 우리나라 급여 결정 시 환우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다고 느끼나요?

"우리나라에도 약제의 보험 결정 과정에 환자 단체 대표가 참석해 환우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치료를 받고 있거나 치료를 준비 중인 일부 중증 질환자 및 암환자, 그 가족들의 경우 직접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해 그들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고 싶어합니다.

대만의 경우, 치료제 보험 급여 결정 시 실제로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가 직접 15분 간 발표를 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죠. 우리나라도 이처럼 해당 치료제를 실제로 치료 받거나 치료를 희망하는 환자나 보호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된다면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에요.

물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환자 단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환자단체연합회의 '샤우팅카페'가 있는데요, 정기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환자의 사연을 듣고 의료적 측면, 법률적 측면, 알 권리 측면에서 전문가가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렇게 환자들이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암치료 보장성 확대 협력단이 2018년 '메디컬푸어'라는 용어를 통해 비급여 항암제, 혹은 신약으로 인한 환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알렸고, 이듬해 많은 약제가 보험 급여를 적용 받는 등 실질적 성과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의료진과 환자들은 가깝고도 먼 사이로 보여요. 의료진과 환자들을 연결해 주는 게 환자 옹호자 혹은 환자 단체 분들이란 생각도 드는데요.

"환자단체와 환자 옹호자 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특히 우리나라는 한 명의 의료진이 짧은 시간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죠. 이는 환자들뿐 아니라 의료진도 공감하는 점이고요.

실제로 한 교수님은 환자와 의료진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교육 세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일부 환자 단체에선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캠페인 등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4. MSD가 환자와 만나는 방식

-회사 관련해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위험분담제(RSA) 업무도 진행하신 걸로 압니다. RSA 업무를 진행하며, 환자들에게 치료 기회같은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을까요?

"위험분담제(RSA, Risk Sharing Agreement)는 정부와 계약에 의거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전액본인부담 환자에게 회사에서 치료비 환급을 해주는 제도로, 현재까지 약 2800여명에게 약제비 환급을 진행했어요. 실제로 보험이 되지 않아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며 항암 치료를 하는 환자와 환자 가족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매우 뿌듯합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정책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패널로 참가한 환자분들의 발표나 의견을 들을 때 특히 많은 영감을 받아요. 예를 들어 혁신적인 항암 신약의 효과에 대해 표현할 때 의료진의 경우, 종양이 줄어드는 것을 '암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라고 비유해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고, 이는 매우 인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암환자분들은 종양의 사이즈가 줄어드는 것 자체도 기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질, 부작용, 완치에 대한 희망, 재발에 대한 두려움, 치료 비용 등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환자, 환자단체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매우 고유한 요인들을 고려합니다.

환자들은 치료 효과도 중요하지만, 부작용이 얼마나 적은지, 재발에 대한 걱정이 없는지, 나와 가족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합니다. 환자, 환자 단체가 소외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요. 이렇게 환자분들의 직접 체험을 통해 나온 의견들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헬스케어 환경에서 환자들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MSD는 환자들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죠?

"암 경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다나음' 프로그램을 통해 암 경험자에게 상담, 사진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상담 프로그램은 '의료적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암 경험자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사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죠. 암 경험자들은 치료 후에도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출사를 나가며 활력을 되찾고 있어요. '다나음'은 궁극적으로 환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주죠.

현재 암 치료를 받거나, 치료 중인 환자는 약 180만명이고, 환자 가족 등 직?간접적으로 암을 경험하는 사람은 약 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누구나 암 환자, 암 환자의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암 환자들이 살기 좋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헬스케어 종사자, 환자, 소셜 벤처, 환자 단체 등 다양한 분들과 함께 '온랩'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 모임에선 암 경험자들이 직장에 취업하고, 근무하는데 차별 받지 않도록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끝으로 앞으로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요?

“환자 옹호 전문가들에게 오래도록 가장 신뢰 받는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환자 단체 분들이 환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되고 싶고, 환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회사의 직접적인 치료 영역뿐 아니라 국내 많은 환자 단체에 기여하고 싶고, 우리의 활동이 사용자 중심의 헬스케어 환경의 작은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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