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매류 선별 공급에 물류비 부담까지 가중
"5월 넘기면 생산 차질 가능성도 배제 못 해"

중동발 공급망 불안이 원료의약품 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완제의약품 포장재, 약국의 약포지, 수액백 중심으로 제기되던 우려가 원료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용매류 수급 불안과 물류비 상승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원료의약품 업체들 사이에서는 최근 메탄올, IPA(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톨루엔, 사이클로헥산 등 공정용 용매 수급 불안을 느끼고 있다. 가격도 주 단위로 오르기 시작했고 일부 공급업체는 물량 부족을 이유로 고객별 선별 공급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공정의 핵심 기초 원료로, 각종 플라스틱 원료뿐 아니라 일부 공정용 용매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는 나프타 수급 불안이 길어질 경우 포장재와 용매 시장이 함께 흔들리면서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 생산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는 당장 전면적인 생산 중단 국면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상황이 5월까지 이어질 경우 생산 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원료업체 한 임원은 "3월 셋째주부터 나프타 생산이 중단된 걸로 알고 있다. 원유 공급 차질이 나프타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아세톤·메탄올·톨루엔·사이클로헥산 등 용매 부족으로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료의약품 공장은 중국·인도처럼 전용 라인보다 여러 품목을 돌려가며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 제품을 바꿀 때마다 아세톤·메탄올 등으로 세척하는 클리닝 밸리데이션(CV) 이 필수다. 원료가 있어도 세척용 용매가 없으면 생산을 못 한다"고 부연했다. 현재 솔벤트가 50% 올랐고 4월 첫째 주부터는 100%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메탄올, IPA처럼 많이 쓰는 용매들이 벌써 수급 불안이 있고 가격도 주 단위로 오르기 시작했다"며 "공급업체들도 물량이 부족해 선별 공급을 시작한 상태"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재고 확보에 신경쓰는 모습이다.
원료업체 임원은 "지금은 입금을 먼저 해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익월 또는 월말 결제가 아니라 현금 선결제가 아니면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들에서도 톨루엔이나 사이클로헥산 부족 이야기가 들린다며 원유 기반 용매 시장이 흔들리면 생산 공정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직접 수출을 하는 원료의약품 회사들은 물류비 부담도 체감하고 있다. 원료업체 대표는 "중동 수출 물량이 아주 크진 않지만 직접 피해가 있다. 유류할증료와 보험료가 올라 수출 물류비가 이미 뛰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전쟁이 멈추더라도 피해 복구와 공급망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료업체 대표는 "전쟁이 곧 멈춘다고 해도 피해를 입은 시설을 복구하고 물류 흐름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석유화학 업계의 혼란이 조금씩 산업 전반으로 번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원료 업계에서는 이 여파가 완제의약품 분야로도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료업체 관계자는 "원료에서는 솔벤트(용매) 문제가 크고, 완제는 포장재가 문제다.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같은 포장재도 나프타가 없으면 못 만든다"며 "수액백과 약포지, 정제·캡슐 포장재 등은 단순한 부자재가 아니라 의약품 생산과 공급을 좌우하는 품목인데, 소재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해도 안정성시험과 허가 변경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실제 포장재 변경에는 최소 6개월 수준의 안정성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때문에 업계는 정부가 단순 모니터링을 넘어 실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원료업체 임원은 "쇼티지 상황에서 대체 가능한 원료나 포장 방법이 있으면 패스트트랙으로 허가를 내줘야 한다"며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면 수입이나 제조를 신속히 풀 수 있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업체들이 평소보다 많은 용매를 쌓아둘 수 있도록 소방법상 보관 수량 규제 등도 한시적으로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나프타 수급 차질이 석유화학제품으로 확대되면서 정부와 석유화학 업계가 국내 물량 공급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산업 공급망 불안과 국민 생활 불편을 막기 위해 안정적인 나프타 확보, 석유화학제품 국내 물량 공급 관리, 범정부 공급망 대응 체계 상시 가동을 3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대체 나프타 도입 기업 부담을 덜기 위해 추경예산 4695억원을 편성해 수입단가 차액을 지원하고, 필요시 나프타 수출 제한과 공급 확대 조치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