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人] 넥스트 '렉라자' 도전하는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끝까지 HlT 14호] "궁하면 통한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는 국내 최초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GNS-1480)를 포함한 후보물질들을 발명하고, 좋은 표적 항암신약이 될 가능성을 확신하는 자리에서 '렉라자' 탄생의 주역들과 함께한 서명록에 이렇게 사인했다. 11년 전 2014년 5월 15일, 제노스코가 오스코텍과 함께 발명한 '렉라자' 후보물질 GNS-1480 계열의 성공을 기원하며 개발 계획을 세우는 날이었다. 그는 국산 신약의 글로벌 진출 신화를 쓴 '렉라자'의 성취를 이미 경험했지만 "막다른 길에서 돌파구를 찾는 '궁즉통(窮即通)'의 스릴을 지금도 매일 대면하고 있다"고 했다.

'렉라자' 스토리는 하나의 기적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혁신의 심장부로 통하는 미국 보스턴에서 '렉라자' 스토리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던지는 화두는 뭘까.
6월 18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제노스코(Genosco) 본사에서 '넥스트 렉라자’를 치열하게 구상 중인 고 대표를 <끝까지 HIT>가 만났다. 고 대표는 "한국 바이오가 도전하고 성장하는 모범사례(Best Practice)가 계속 쌓여 제2, 제3의 렉라자가 나와야 한다"며 "제노스코는 새로운 단백질 표적 억제 치료제와 표적 단백질 분해제, 항체-단백질분해약물접합체(Drug Antibody Conjugate)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절박하면 새로운 길 보여"...한국 바이오 글로벌 도전은 계속
제노스코는 자체 신약개발 연구 플랫폼 'GENO-K'를 활용해 ROCK2 카이네이즈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독자 신약 후보물질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GENO-K는 휴먼 카이네이즈(Human Kinase) 538종 중 질병 유발 카이네이즈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서열을 선별하고 선택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고유 기술로, 대규모 표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선도물질을 선별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일종의 '시드뱅크(Seed Bank)'다.
제노스코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ROCK2 억제제로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IPF)과 뇌혈관 장벽(Blood-Brain Barrier, BBB) 통과가 필요한 대뇌해면기형(cerebral cavernous malformation, CCM)을 각각 타깃하는 전략을 택했다.

첫 번째로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제 후보물질 'GNS- 3545'에 대한 임상을 올해 하반기에 시작할 계획이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질환으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행이 빨라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은 3년에서 5 년, 5년 생존율도 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된다.
고 대표는 "분명한 수요가 있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치료제가 두 개에 불과하다. 미충족 수요가 존재하는 분야로 새로운 큰 시장이 될 것"이라며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기존 치료제 대비 적은 용량으로 효과를 높이고 독성에 대한 약점은 보완할 수 있어 '넥스트 렉라자'로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파이프라인은 대뇌해면기형(CCM) 치료제다. 대뇌해면기형은 뇌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해면체(벌집 모양)를 형성하는 혈관 기형의 일종으로, 뇌출혈, 뇌전증(발 작) 등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하는 희귀질환이다.
고 대표는 "CCM은 다른 경쟁사와 리커전과 같은 AI 기업들도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타깃으로,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분야"며 "(우리가) 뇌혈관 장벽을 잘 통과하고 약동역학이 우수한 물질을 확보하고 있어 동물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면 상당한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아이디어로 최고의 표적 혁신적 공략법 찾아"
제노스코는 표적 단백질 분해(Targeted Protein Degradation, TPD) 및 분자 접착제 기반 분해제(Molecular Glue Degrader, MGD) 기술을 활용해, 기존 약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비(非)약물화 표적(non-druggable targets)' 단백질을 겨냥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형암 등 다양한 질환에서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고 대표는 "GENO-K와 GENO-D를 통해 발굴한 질병 유발 카이네이즈는 금세기 최고의 표적"이라며 "우수한 인력과 스마트한 이이디어로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아이디어 경제'를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타깃이며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기대했다.
최근 표적 치료 분야에서 'ADC 플랫폼'이 붐을 이루는 시장 상황에 대해서는 "ADC 기술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고 주요 타깃에 대한 선점이 이뤄진 상황으로, 차별화된 접근이 요구된다"며 "기존 ADC가 탑재한 페이로드를 반복 투여할 경우 저항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암세포는 한두 개만 살아남아도 빠르게 증식해 치명적인 재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억제만 아니라 완전한 분해도 중요하다"며 "기존 페이로드 사용이 한계에 도달하면 새로운 작용 기전을 갖춘 페이로드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회로 보고 디그레이더 항체(Degrader Antibody)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페이로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90% 10개보다 100% 1개"…확실한 성공에 투자해야

효율적인 신약 개발을 위해 '최고의 가성비로 최적의 성과를 내는 확실한 성공'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90% 확률의 다양성에 기대기보다는 100% 확신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해 끝까지 몰입하는 안목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대표는 "지난해 한국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출시된 신약은 많지 않다"며 "우리가 제대로 된 물질을 임상 단계로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진지하게 따져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약 개발은 과학적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실제로 처방돼 환자를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 과정이 길고 지난하기 때문에 가성비 좋은 연구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90점짜리 열 개보다 100점짜리 하나를 선별하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신약 개발의 여정에서 포지션 파워나 파이낸셜 파워에 흔들리는 바이오텍은 오래가지 못한다"며 "소중하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항상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과 협업(Data-driven collaboration)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보다 남을 위한 일, 신약 개발 소명 다할 것"
신약 개발은 선점해야 살아남는 경쟁의 산물이고, 하나가 어긋나면 전체가 무너지는 고위험 사업이지만 나보다 남을, 닫힌 지식보다는 열린 지식을 지향하는 '오픈 마인드'로 성공을 부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는 신약 개발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자기가 과학적으로 확신하는 사실도 보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연구자를 포함한 동료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때 바로잡을 기회가 생긴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함께 어울리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신약 개발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남을 위한 일이며, 열심히 일한 결과가 환자에게 도달해 질병을 치료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나를 위해 한 일은 내가 죽으면 사라지지만 남을 위해 한 일은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으로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노스코는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신약 개발 바이오텍 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 때 상장 실패 등을 겪으며 우려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신약 개발자의 오기와 사명으로 제2, 제3의 렉라자를 제노스코의 화단에서 꽃피워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6월 16일부터 19일(현지시각)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BIO USA에서 한국 제약바 이오기업들이 글로벌 무대를 장악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기업이 발로 뛰며 자사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알리고 정부와 관계기관이 파트너링을 지원하는 '민관 협력 모델'이 현장에서 연출됐다.
현지 기업인과 과학자, 정부 기관이 접점을 찾아 새로운 성장 기회를 탐색하는 가운데, 보스턴 제노스코 사옥에서 고종성 대표와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만났다. 글로벌 바이오 생태계의 혁신을 상징하는 보스턴 클러스터에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지향하는 그들의 대화를 담아 봤다.

노연홍 회장(이하 노연홍) : 2008년에 보스턴에 진출했는데 기적적으로 짧은 시간에 국내 최초 폐암신약 '렉라자' 후보물질 등을 개발했다. '아이디어 경제'를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기반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내 오픈이노베이션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고종성 대표(이하 고종성) : 협력하는 연구자와 회사들이 함께 이룬 성과다. 연구자와 임상 전문가들이 잘 공조했고, 중요하고 필요한 시기마다 파트너를 잘 만났다. 오스코텍이 그랬고, 유한양행과 존슨앤드존슨도 마찬가지였다.
노연홍 : 처음부터 해외로 진출해 활동하면서 기술 이전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앞으로 정부나 제약바이오협회 차원에서 어떤 지원을 해준다면 더 힘이 되겠나.
고종성 :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신약 가능성이 있는 후보물질을 만들면, 국가가 집중적으로 육성해 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최근 중국도 유망한 표적이 나타나면 수십 개 후보물질을 경쟁시키고, 그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을 선택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민간의 혁신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적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노연홍 : AI 신약 개발은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전략 분야 중 하나다. 신약 개발에서 양질의 의료데이터가 가장 중요한데, 국내에 이미 활용 가능한 병원 데이터 플랫폼이 구축돼 있고, 연구개발 전 과정을 AI 기반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AI팀과 협력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고종성 : 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융합연 구원이나 국내 젊은 의료진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싶다. 네트워킹과 정보 교류를 위해 서로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했으면 한다.
노연홍 : 국내에 축적된 의료데이터 인프라가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데이터 표준 선도병원을 지정해 제약회사 등 민간에서도 일정 비용을 지 불하고 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협회가 K-멜로디 사업을 통해 추진하는 AI 융합 연구는 물론 제약회사 신약 개발에도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종성 : 바이오텍은 제한된 인력과 자본으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협회가 국내외 산업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연구원 등 우수 인력 매칭에도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노연홍 : 협회 역량이 허락하는 만큼 해외 진출 기업에도 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지원하겠다. 후학들이 용기를 가지고 연구하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한 말씀 해 달라.
고종성 : 겁먹지 말고 기죽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