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본격 도입…안전성 강화 불구 시민사회 우려 여전

'첨단법'이 우여곡절 끝에 입법화 최종 절차인 국회 본회의 문턱을 가까스로 넘었다. 3년여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제약·바이오업계와 시민단체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건 말할 것도 없다.

국회는 2일 오후 3시30분 본회의를 열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첨바법'을 비롯한 141건의 민생법안을 의결했다. 

첨단법은 치료법이 없는 희귀·난치성 환자를 위해 등장한 첨단바이오의약품의 특수성을 의료법·약사법이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출발했다.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활성화,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속 처리를 통한 환자 치료 기회 확대, 장기 추적조사를 통한 안전 관리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첨단법은 바이오 신약 개발의 '패스트 트랙'을 골자로 한다. 허가·심사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된 첨단바이오의약품은 맞춤형 심사,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임상 3상 면제)를 통해 이른 시일 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즉, 대체 치료제가 없는 중대한 질환 및 희귀·난치 질환 신약은 시판 후 임상3상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임상2상을 완료하고 조건부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법에서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대상자는 대체 치료제가 없는 질환, 암 등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환, 희귀·난치질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재생의료기관은 연구대상자에게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비용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 만일 위반할 경우 1천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며 지정 취소 또는 업무 정지(1년 범위) 처분을 받게 된다. 

재생의료에 바이오의약품을 더하니…길어지는 법안명

첨단법은 사실상 치료법이 없는 희귀·난치성 환자를 위해 등장했다. 2016년 6월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現 자유한국당)은 줄기세포를 활용한 첨단재생의료의 실시 근거를 마련한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바로 첨바법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당시 이 법을 검토한 김승기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환자 치료기회 확대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험·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안전성·유효성 검증 부실, 국민 건강권 위협 등의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므로 충분한 의견 수렴·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안전성을 보완한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같은 해 11월 발의했다. 이 법에는 김승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환자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 내용을 추가해 안전성을 더욱 강화했다. 

이듬해에는 '바이오의약품'이 등장했다. 2017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첨단바이오의약품 특성을 반영하고, 허가·심사의 신속처리 대상과 절차를 규정한 '첨단바이오의약품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에서는 발병 후 수개월 내 사망이 예견되는 질병에 대해 안전성·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첨단바이오의약품과 희귀질환·생물테러 감염병의 대유행을 예방·치료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해당 의약품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맞춤형 심사·우선 심사·조건부 허가 등 신속처리를 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석영환 수석전문위원은 "현재 첨단재생의료법 2건이 계류 중인데, 첨단바이오의약품법안과 2건의 법안이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검토했다. 

이에 2018년 8월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당시 보건복지위원장)은 김승희 의원과 전혜숙 의원,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취합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며,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각각의 안을 병합한 내용의 대안을 제안했다.

발목 잡는 시민사회·인보사, 국회 '개점휴업'도 한몫

국회는 첨단법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한 듯했으나 시민단체는 달랐다. 첨바법을 '규제개악법'·'의료민영화법', 한발 더 나아가 '인보사 양산법'으로 명명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첨바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관련 기자회견을 수 차례 열어 입법화를 강력히 저지했다. 

올 2월 임시국회 휴업과 시민사회 반대가 맞물리면서 첨바법 처리는 좀 더 지연되는 듯 보였다. 다행히 3월 임시국회는 개원됐으나, 연구대상 환자 범위를 구체화하라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제2소위원회로 회부됐다. 4월 발생한 '인보사 사태'도 발목을 잡았다. 

지난 3월 31일 코오롱생명과학은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주성분 중 2액 세포가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세포와 다른 세포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4월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액 세포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임을 확인해 코오롱생과에 인보사의 제조·판매중지를 요청했다고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인보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첨바법 제정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인보사 사태는 규제 완화와 느슨한 허가가 결국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면서, "식약처는 첨바법 통과를 재발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이는 식약처가 인보사 사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할 능력·의지가 없다는 것이며, 기업 이익을 우선순위에 둬서 초래된 인보사 사태를 안전·생명을 위협하는 법률 제정에 악용하려는 구제불능의 파렴치한 집단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첨단법은 조건부 허가 요건을 더 완화해 시장 출시를 손쉽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제약사 돈벌이에만 이로울 뿐, 환자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실험 대상으로 만드는 매우 비윤리적인 법"이라면서, "제약·바이오업계 이윤을 위해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첨바법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료받다가 사망해도 좋아"…절박한 희귀질환자들

첨단법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통과 전 몇 가지 손질을 거쳤다. 당초 법안에서 약사법 등과 중복돼 준용 가능한 조문들을 삭제했고, 시민사회가 제기한 우려를 보완하기 위한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인 오신환 의원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 연구대상자 범위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한 질환, 희귀의약품법에 따른 희귀질환, 난치질환 등으로 구체화됐다. 여기에 정부가 5년마다 세우는 기본계획에 환자 안전관리 방안도 추가했다. 

이에 대해 이정훈 바이오의약품협회 이사는 "초기 첨바법, 즉 재생의료법은 임상시험을 간소화하고, 재생의료기관이 대상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법이 합쳐지면서 임상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일부 병원을 소유한 제약사에서는 굉장히 아쉬워 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이사는 "신약 개발 업체에서는 대개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법이 합쳐지는 바람에 아직까지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대한 질환의 경우 패스트 트랙을 많이 만들어놨고, 디스커버리 단계에서도 상담해줄 수 있는 여러 지원책을 포함하기 때문에 첨단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거나 개발 예정인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첨바법은 청와대와 여당이 산업계 민원을 받아 추진한 법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의료민영화법이다. 우리는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해왔고, 막판에는 의원실도 돌아다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물리력으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 법의 문제점을 비롯해 이로 인해 실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면서, "낙선운동도 진행할 거다. 의원 활동에서 의료민영화를 중요 평가 포인트로 놓고 대응하려 한다."고 했다.

신현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고통을 받는 희귀·난치질환자들은 환자들을 위한 여러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3상 허가를 조건부라도 먼저 내 달라'고 주장하는 건 환자가 치료를 받다가 사망해도 좋다는 의미다.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했다.

신 회장은 "인보사 사태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처방전다운 처방전이라도 한 번 받아보고 원 없이 죽겠다는 환자들의 절규는 정말 안타깝다. 우리는 이 법에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다. 아니, 찬성해야 한다.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은 치료가 되지 않는 병으로, 우리는 평생을 병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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