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4]

내게는 단 하나의 소망이 있었다. 우리의 꿈들이 꿈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들 수 있다. 4살 무렵 산타클로스가 선물로 주었다는 곰 인형을 마지막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잊혀져갔다. 하나의 꿈이 유년 시절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꿈을 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부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서 꿈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운명에 처했고, 또 다른 꿈들은 산타클로스 이야기처럼, 세상을 많이 알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사라진 꿈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꿈들은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추억들, 그렇게 올라가고 싶었던 높은 산에서의 전망, 온갖 명품과 보석들, 우아한 예술과 철학, 그리고 건강한 삶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꿈의 실재화로 구체적으로 내 곁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꿈 꾸어야할 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 몇 개 중에 하나가 로맨스에 대한 꿈이다.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부터 꿈꾸고 있는 그 로맨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도 더 완벽한 로맨스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연인과 함께 있어도 로맨스에 대한 나의 회의는 깊어만 간다.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이 나의 '일상'과 '일상 아님'을 장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의심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장 빈번한 회의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다. '그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천형처럼 가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와 동일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답변이다. 난 그가 내 취향대로 노래할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스럽지 않은 그의 일상에 난 좀처럼 개입하고 싶지 않다.

쉽게 말하면, 내가 심심할 때 언제든지 깨어 있어야만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다른 일에 몰두해 있다든가, 일상적 필요로 분주한 경우, 난 그의 연인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시작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나의 즐거움들로 일상의 여백이 사라진 경우 난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즐거움에 푹 빠져든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내 관심 영역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로맨스를 그토록 꿈꾸어 왔던 것은 아니다. 최소한 그러하다.

그래서 난 내가 심심할 때, 주저 없이 연인을 잠에서 깨워버린다. 때로는 확성기를 그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네가 사랑하는 내가 여기 있어!" 반응은 여러 가지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부터 시작해서, '알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의 중간에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이 나야?'라는 물음에 이르기까지.
 
아무튼 우리가 꿈꾸어 왔던 로맨스는 매순간 진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의 연인들이 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이별을 선포하는 내 앞에서 나의 연인들은 두려움과 선망에 마지않는 눈빛과 태도로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난 내일 아침, 연인의 입맞춤과 아침 햇살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그의 향기에 눈과 귀가 멀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읽을 때 발생한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 글 : 이 체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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