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 [10]

성문 폐쇄음(glottal stop/stØd)은 어떤 발음을 말하는 것일까. 문어체 덴마크어와 사전에서는 전혀 알려줄 수 없는 발음이란다.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발음이 성문 폐쇄음만은 아니다. 덴마크어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나는 코펜하겐 여행 책자를 읽다가 도처에 등장하는 새로운 문자들(Ø, å) 때문에 덴마크어 발음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우선 네이버 사전에는 덴마크어가 없다. 지니 톡(Genie Talk)에서 영어로 변환하는 덴마크어를 들어보니, 들으면 들을수록 발음 체계가 알고 싶어진다. 인터넷 서점에서 덴마크어 사전을 검색하다가 아마존에 들러 앙증맞은 덴마크어 사전을 발견하고는 바로 주문했다.

사전을 열어보았다. 책갈피에는 ‘HERB TANDREE(UK)’라는 온라인 서점 안내문이 꽂혀 있다. 철학 교재와 새로운 자료들이 나의 취향을 반영하는 순간이었다. 겔랑 향수의 아포리아(Aporia)는 매력적인 상품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철학책들의 바다에 들어가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포리아로 빨려 들기 전에, 코펜하겐 아이스크림 가게 간판을 정확히 읽고 싶다는 처음 그 느낌을 보존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모음(Vowels)체계부터 읽어 보았다. 모두 9개의 모음들이 각각의 특징을 한정하면서 예시와 함께 설명되어 있다. 모음 ‘a’는 짧게 발음되는 경우, 영어의 ‘man’처럼 들린다. 길게 발음하는 경우는 ‘mare’처럼 들리고, -r- 과 함께 하는 단어(예시:bare, klar)는 ‘park’에 적용하는 발음기호처럼 들린다. ‘e’는 짧은 발음의 경우, 영어의 ‘men’과 ‘pin’의 그 사이에서 각각의 발음을 절반 정도씩 수용한다. 문제는 ‘de’(복수 관사/ 대명사)에 붙은 ‘–e’의 경우이다. 보통의 모음 ‘e’가 앞에 설명한 발음을 하고 있지만 ‘de’는 영어 ‘bee’에 나오는 ‘–ee’처럼 들린다. 장모음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어와 비교하면, ‘de’가 전치사로 쓰일 경우, ‘e’발음이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프랑스어 발음에 익숙해 있던 ‘de’의 변신(?)을 보면서 미소 대신, 울고 싶은 심정이다.
 

드디어 ‘Ø’ 발음 설명에 도달했다. 그것은 프랑스어의 ‘eu’처럼 들린다. 입모양은 ‘o’를 흉내 내면서 발음은 ‘ee’를 시도한다. 코펜하겐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아이스크림 가게 간판에 있는 ‘Ø’가 독일어의 ‘ü’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자, ‘å’는 짧은 발음의 경우, ‘often’처럼, 긴 발음은 ‘saw’에 적용되는 발음이다. 모음 발음 체계를 대충 읽고 난 이후, 나의 궁금증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 녹아내리기 이전에 먹어버렸겠지!
 
‘사유와 느낌(Thought and Feeling)’, ‘인상(Impression)’, ‘자유의지’, ‘정신(Mind)’, ‘인과(Causation)’등등. 최근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슈들보다는 훨씬 명확한 지식 체계로 다가온 덴마크어 사전이 나에게는 꽃처럼 예쁘게 보인다. 글자(Letters)의 수만큼 다양한 꽃병에, 보편성이라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꽃들의 배열. 그 일목요연한 간결성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면 인간의 지식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자유롭게 떠도는 어떤 것(a free floating something)”으로서의 종교 개념을 이야기하는 종교 학자처럼, 나 역시 ‘꽃들의 배열’을 그렇게 한정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도무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사전적 지식이 드러내는 간결성과는 거리가 멀다. 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최단거리의 겹침을 꿈꾸는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견고한 보편이라는 ‘선험적 기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보편적 진리는 공간의 차원을 넘어 설 수 있는 기반이다. 존재자의 존재들이 겹쳐지든, 펼쳐지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신은 일목요연한 간결성을 발판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글 : 이 체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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