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5]

배경 설화 ‘해가(海歌)’와 함께 신라 천년 향가의 등장인물로 모습을 드러낸 수로부인. 우리는 그녀의 정체성을 알고 싶다. ‘헌화가(獻花歌)’에 나오는 수로 부인은 이렇다. “부인께서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신다면 한 묶음 꽃 꺾어 바칠 수 있으리여.” 지금 꽃을 바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녀의 남편 순정공이 아니다. 수로부인이 누구인가. 바다의 용이 그녀를 납치해서 바다 속으로 들어갔을 만큼 신비로운 설화의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그녀의 남편 순정(純貞)공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조 한 곳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성덕왕(聖德王)때 “강릉(江陵)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곁에는 높이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었고, 그 위에 철쭉꽃이 피어 있었다.”(『천년 향가의 비밀』 : p.218)
 
지나가던 노옹(老翁)이 수로 부인에게 꽃을 꺾어 주면서 지어 바친 노래가 ‘헌화가’이다. 여기까지만 살펴본다면, 수로(水路)는 바다의 용이 납치해서 내어 주고 싶지 않은 여인이고, 지나가던 노옹(老翁)이 절벽에 핀 꽃을 꺾어 바치고 싶어 하는 순정(純貞)공의 부인(夫人)이다. 짧게 말하면 ‘남의 아내’라는 말이다. 우리는 천 년 신라의 향가를 접할 때마다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우리의 관심사, ‘남의 아내’에 대한 노래를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은유 안에 담아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수로(水路)의 남편 순정(純貞)공의 이름만 보아도 흥미롭다. ‘순수하고 곧은 절개’는 오히려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미덕이 아닌가. 『천년 향가의 비밀』을 집필한 김 영회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수로(水路)나 강(江)은 40금 그 이상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한다.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풍자한다. 선화(善化)공주가 등장하는 서동요(薯童謠)에 있는 문자 ‘지(只)’의 활용을 두고 의문이 분분한 것과 같다.
 

“거북 아, 거북 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글쓰기의 순수성은 즐거움에 있다. 아무리 높은 절개와 우아한 시문을 가락에 싣는다 해도 그것이 드러내는, 또는, 숨기면서 드러내고 싶은 진솔한 정서 앞에 서면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천 년 신라 향가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건들 가운데 하나는 지극한 은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바다의 용이 납치해서 내어주고 싶지 않은 여인, 지나가던 노옹이 꽃을 꺾어 노래를 지어 바치고 싶은 여인, 즉 ‘남의 아내’의 설화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질 것이 없다. 하지만 수로(水路)의 남편 순정(純貞)공의 절개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매력은 훨씬 반감했을 터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더욱 궁금해진다. 바다의 용은 그녀를 납치해서 무엇을 했을까. 순정공이 수로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다. “칠보로 꾸민 궁전의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답변과는 정반대로, 주변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부른 ‘해가(海歌)’의 내용은 이러하다. “거북 아, 거북 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참으로 무시무시한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수로 부인을 내놓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정작 용궁으로 납치당했던 수로부인의 옷에서는 이상한 향내가 풍기고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지역 내 백성들을 모아 지어 부른 노래는 몽둥이로 언덕을 치면서 바다의 용을 위협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결국 우리는 수로(水路) 부인의 정체성에 전혀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은유로 시작해서 지극한 풍자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 글 : 이 체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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