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 [2]

어떤 경우일지라도 다이어트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살벌한 뷰티 전쟁터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도 적당한 몸매를 가꾸지 않는 자의 게으름을 감추어 줄 수 없다. 마치 맥베스에 등장하는 배신자들이 그들의 손을 아무리 열심히 닦고,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뿌렸지만 피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있겠다.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뷰티 시장을 장악하는 자만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매일 거울 앞에 서 있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일부터 문제의 발단이다.

연인과의 데이트 약속을 앞둔 여성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안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어떤 메이크업으로 연인의 눈을 내 앞에 고정시킬 수 있는지부터 고민한다. 어떤 머릿결에 어떤 향기를 얹어서 연인의 기분을 장밋빛 무드로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의상에 맞춘 신발을 선택하는 일만해도 24시간은 부족하다. 정장 스커트를 입는다 해도 신발 종류에 따라 전혀 다른 패션 감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은 곧 우리의 생명이다.
 
이쯤에서 의상 부문만을 이야기해보자. 백화점 쇼 윈도우 앞에 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옷이 나에게 어울릴지에 대한 고민이 가볍지 않다. 신장과 몸무게, 나의 취향, 코스튬 착용의 시간과 공간, 기타 등등에 대한 고려는, 내가 광활한 뷰티 패션 시장의 주체가 되는가, 아니면 객체일 뿐인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지각의 대상(percept)으로서의 지각된 것과 실재하는 오브제(object)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형성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말하면, 나의 몸매는 여러 가지 개별적 사안으로 독특한 조건 아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앞서의 개별성과는 멀리 떨어져서, 저 혼자 찬란한 빛 아래 서 있게 마련이다. 내 몸매에 옷을 맞추자니, 아름다움의 관념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내 앞에 서 있는 예쁜 옷을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옷을 입지 않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므로 때로는 내 몸에 맞는 옷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서 너 개월간의 눈물겨운 다이어트를 실행한 이후, 찬란한 빛 아래 서 있는 아름다움가까이에 다가서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만족스럽지 않다. 마치 골프 치는 사람이 자신의 비거리 기록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있는 쪽은 후자이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몸매를 관리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부지런히 고민하고 실행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몸매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음과 같다. 평생 동안 다이어트란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잤다. 어느 순간 그 정점에 이르러서는 내 몸매에 맞춘 옷을 입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예쁜 옷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도 관리하지 않은 몸매를 가릴 수는 없었다. 예쁜 옷이 입고 싶어서 감행한 다이어트의 결과는 훌륭했다. 나는 한동안 그냥 예쁜 옷들을 신나게 입고 다녔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각의 대상으로서 지각된 외부 조건과 실재하는 오브제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끝없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타협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거울과 저울 사이를 분주하게 오고간다. 혹시 또 모른다. 그 어느 날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도래한다면, 집에 있는 거울과 저울이 모두 사라지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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