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7]

페슈트(Pest)를 방문했을 때 내가 받은 첫인상은 이러했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 도나우 강을 따라 흐르는 도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건축한 궁전이 21세기까지 건재한 도시 페슈트는 ‘t’ 앞에서 ‘슈’ 발음을 내는 ‘s’의 특징을 갖는 독일어권 문화를 담고 있다. 짧게 말하면 독일 문화권의 둔탁한 건재함이 첫인상으로 다가와야 마땅하다는 것.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이 있다.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Buda)와 페슈트(Pest)를 연결하는 다리(Ponte delle Catene)는 네오클래식 스타일로 1839년과 1849년 사이에 건축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이탈리아어 가이드북을 참고하고 있으니 그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il primo ponte permanente tra Buda e Pest.” 아름다운 궁전과 교각으로도 이 도시에서 받은 첫인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화려하지만 가벼운 웃음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갖 고뇌를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은근히, 자신의 아름다움을 도나우 강에 비추어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텔방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병마저 날씬한 허리에 긴 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물병을 손에 잡고 뚜껑을 열고 입에 대는 순간은 일종의 입맞춤을 연상시킨다. 샤워를 하는 내내 그 물병 디자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연인과의 도피 행각을 배경으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로마, 남프랑스의 코트다쥐르, 기타 등등. 나는 헝가리의 페슈트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도시 중심을 연결하는 교각위에서 연인과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한 사람은 다리의 위쪽을 따라 걸어갈 것이다. 또 한 사람은 물 위에 비쳐진 나르시스의 시선을 따라 공허한 눈동자를 돌릴 것이다. 지구 끝에서부터 이곳까지 두 사람을 추격해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두 사람을 발견한 추격자는 다리 위쪽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을 먼저 죽여야 할지, 아니면, 물 위에 비쳐진 나르시스에게 몸을 던져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져버린다.

우리의 전통적 고뇌들은 힘의 균형과 관계한다. 욕구의 재분배라고 말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각각의 도시들이 모두 이와 같은 고뇌를 가졌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랜동안 아름다움을 지켜왔던 도시들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전통과 새로움 안에서 보존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계의 모든 도시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이 전통 안에서 그러한지, 새로운 기반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비율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보존해 온 도시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연인들을 추격하는 사람처럼 깊은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전통적 질서는 평안하지만 단조롭고, 새로운 나르시시즘은 아름답지만 크리스털처럼 쉽게 흠집이 생긴다. 제일 간단하게 보이는 일은 이것도 저것도 힘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정해진 목표를 향해 앞만 보며 달려간다면 적어도 하나의 욕구는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정해진 목표와 욕구는 각각의 도시 구성원들의 믿음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하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어찌 보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하나의 도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풍토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움이 일률적인 잣대를 갖고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예상할 수 없다. 잃어버린 도시들에 대한 기억들마저 동일하지 않다. 누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 말하고, 누구는 스쳐지나가는 바람이라고 기억한다. 나는 그것을 연인의 입맞춤이라 기록하고. < 글 : 이 체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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