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리 스토리 [9]

주간 초반에는 계절보다 앞서간 고온 현상으로 낮에 후덥지근했다. 골프 대회가 열리는 주간 후반에 다시 평년 기온으로 돌아왔지만 금요일은 비가 내리고 쌀쌀한 날씨였다. TV 중계 화면에서 만난 골프 대회 분위기는 추운 날씨를 반영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털모자 달린 패딩 재킷을 입고 필드를 걸어 다녔다. 거실에 앉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TV중계를 시청하고 있던 내 몸에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토요일에 대회장 구경을 나가기로 했는데 지금처럼 비가 내린다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 대회 갤러리로 참관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맛있는 산딸기와 롤리 팝 캔디를 먹는 날이었기 때문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쾌청한 하늘과 봄꽃들의 노래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주말 아침이었다. 예정대로 산딸기와 롤리 팝 캔디를 백 팩에 넣어 담은 우리는 골프장으로 출발했다. 차가 조금 밀렸지만 정오 5분전쯤 대회장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우산, 골프 볼, 드링크를 손에 들고 대회장 입구에 들어선다. 우리는 드링크를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가방을 정리하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곧바로 골프 코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회장 입구 주변에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가 펼쳐져 있기 마련이다. 각종 골프 용품 매장사이, 푸드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바로 그것이다. 알록달록한 푸드 트럭들마다 새로운 이슈들을 내걸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이슈들 가운데 우리가 고른 것은 꽈배기.

봄날에 웬 코스모스 꽃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꼭 코스모스를 닮은 아가씨가 꽈배기 푸드 트럭에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싱그러운 봄날과 코스모스는 한 쌍의 이어링처럼 어울렸다. 나중에 대회가 끝나갈 무렵 골프 코스에서 발견한 튤립의 화려한 색채감을 예고한 것이었을까. 아무튼 꽈배기 한 봉지를 받아 들고는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기분 좋은 날씨, 경쾌한 분위기, 봄꽃들의 노래에 둘러싸인 우리는 바로 튀겨 낸 꽈배기의 한 쪽 끝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맛있다! 너무 너무 맛있다.

10번 홀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형 스크린 앞에 드리워진 그늘에 서서 선수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한 무리의 선수들이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다. 캐디들의 씩씩한 발걸음에는 ‘나이스 샷’을 기원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며 멋진 폼으로 찰옥수수 같은 샷을 날리고는 두 번째 샷을 치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다음 조 선수들의 티샷을 한 번 더 기다리기로 한다. 코스 주변의 꽃나무들과 호숫가 해저드를 먼 시야에 담아 보던 우리는 어디쯤에서 자리 잡고 앉아 산딸기를 먹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한다. 선수들의 샷을 감상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가 유지되는 나무 그늘을 찾고 있는 것이다. 다른 갤러리들의 진행 방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장소를 선호한다.

13번 홀까지 이동한 우리는 유명 선수들의 티샷을 응원하는 팀들과 함께 갤러리 라인에 서 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휴대폰 통화를 하는 아저씨는 선수들의 샷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통화를 마친다. 통화 내용은 심각하다. 누구의 민원으로 자신의 사업 영역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이렇게 아름다운 골프 코스까지 따라온 문제의 민원이 반드시 내 귓가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선수들의 멋진 샷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순간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의 남다른 하체 근육과 유연한 꼬임 동작에도 시선이 멈춘다. 어느새 18번 홀까지 걸어왔다. 우리로서는 적당한 운동과 휴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글 : 이 체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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