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제동에 제약계 등 화들짝...사전 '부속합의 도입' 불가피

[hit-check] 약가협상생략약제, 공단협상안 시나리오

문제삼지 않아 문제 안됐던 협상생략약제 등재절차
알룬브릭 등 '의결보류'서 '조건부의결'로 절충

3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약가협상생략약제들의 급여등재안에 제동이 걸린 건 제약계 뿐 아니라 정부 측 관계자들에게 '쇼크'처럼 받아들여졌다. 

과거 서면의결 과정에서 이슈가 됐던 적이 없었고, 신속등재절차이면서 보험재정에도 부담을 주지않는 약제였던 터라 이런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사전 배포한 보도자료는 약가협상생략절차로 안건에 오른 알룬브릭 등 3개 성분 5품목이 의결된 걸 전제로 작성돼 있었다.
 
방아쇠는 정형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당겼다. 건정심 부위원장이면서 소위원회 위원장인 정 교수는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으로 인해 회의에 불참한 권덕철 복지부차관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했다.

약가협상생략약제는 처음 대면심의에 올랐지만 정 교수가 문제삼기 전에는 눈에 띠는 이슈가 아니었다. 첫해 환자당 연 재정소요액이 5억원이 훌쩍 넘는 척수성 근위축증치료제 스핀라자주에 가려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행간을 읽어 문제삼았다. 우선 약가협상을 생략했어도 이후 절차가 남아있는 지 물었고, 환자보호방안 등의 조치가 뒤따르는 지 점검했다.

협상생략약제는 등재이후 예상청구액(예상사용량)을 협상하도록 돼 있다. 사용량-약가연동 협상으로 사후관리하기 위한 후속조치다. 이 때 협상명령기간은 약가협상과 동일하게 60일이다. 예상청구금액만 협상하기 때문에 지난해 이슈가 돼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는 환자보호방안 부속합의 대상은 아니다.

똑같은 신약인데 협상절차를 생략한다는 이유로 이런 부속합의를 하지 않는 건 합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더구나 이번에 상정된 약제에는 폐암치료제 알룬브릭과 유방암치료제 파슬로덱스 등 항암제 성분이 2개나 포함돼 있었다. 정 교수는 이런 틈을 예리하게 짚어낸 것이다.

정 교수는 결론적으로 환자보호방안 등 부속합의 이후에 등재안을 처리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당한 지적에 별다른 반론은 없었지만, 의결 유보안에 대해서는 환자단체 위원과 정부 측 관계자까지 나서 우려를 제기했다. 해당 약제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고려해 등재시기를 한달이상 늦추는 건 어렵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논박끝에 건정심이 내린 최종결정은 '조건부 의결'이었다. 오는 8일 일단 급여목록에 등재는 시키되, 급여개시일은 부속합의 조건이행 이후로 유예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가장 황당함과 혼란을 느낀 건 해당 품목을 보유한 제약사들이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 측은 건정심 직후 해당 제약사 관계자들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제약사 관계자들에게는 '쇼크' 그 자체였다.

현 시점에서 최선은 '조건'을 가능한 한 빨리 이행하는 것 뿐이라는 말을 듣고 이들 관계자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예상청구금액·환자보호방안 부속합의...'조건' 범주?
알룬브릭 등 부속합의에 한정해 신속진행 필요

그렇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뭘까.

우선은 '조건'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약가협상생략약제는 이미 상한금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예상청구금액과 환자보호방안 등 부속합의를 하면되는데, 건정심 안건상정 전에 마무리해야 할 '조건'의 범위에 두 가지를 모두 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환자보호방안이 주요취지에 부합하는 만큼 부속합의만 포함시킬건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해 신약 신속등재를 위해 2015년 5월 약가협상생략제도가 도입된 취지도 함께 봐야 한다. 이 제도는 등재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지만, '대체약제 가중평균가 90~100% 이하'라는 셈법을 도입해 불필요한 행정력 소진을 방지한 측면도 있다.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90~100%는 당시 약가협상에 넘겨진 신약의 합의가가 심사평가원 평가가격 대비 평균 10~15% 이하 수준이었던 걸 감안해 마련됐었다.

따라서 개별약제를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평균으로 보면, 가중평균가 이하 적용은 약가협상을 거친 효과를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약가도 낮추고 등재기간도 3~4개월 이상 단축시켜 환자의 신약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제도는 현재 시장경쟁에 뒤쳐진 후발신약이 주로 활용하고 있다.

앞선 고려사항들을 감안한 선택 가능한 시나리오는 4가지다.

협상약제와 마찬가지로 복지부가 '예상청구금액 및 부속합의 협상명령'을 60일 간 내리면, 건보공단과 해당 제약사가 이 기간동안 예상청구금액과 부속합의 등을 협상하는 게 첫번째다. 이는 '조건'의 범위에 예상청구금액과 부속합의, 두 가지를 모두 넣은 경우에 해당된다. 이럴 경우 신속등재를 전제로 한 협상생략제도는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되고, 폐지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다음은 복지부가 '예상청구금액 협상명령'과 '부속합의 협상명령'을 분리해서 따로 내는 방안이다. 이 때 예상청구금액 협상은 현재처럼 60일, 부속합의 협상은 30일로 달리 정할 수 있다. 이는 '조건'의 범위를 '부속합의'에 한정한 걸 전제로 한다. 이 시나리오는 신속등재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같은 약제에 동시에 2개의 협상명령을 내리는 것이어서 절차상 번거로운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음은 절충형이다. 복지부가 '예상청구금액 및 부속합의 협상명령'을 60일간 내리고, 건보공단과 해당제약사는 이 기간동안 협상을 진행한다. 이 때 부속합의가 이뤄지면 해당약제는 곧바로 건정심 등재절차를 진행하고, 예상청구금액은 협상기간종료까지 협상을 계속 이어간다. 협상명령은 통합해서 시행하되, '조건'의 범주에는 '부속합의'만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협상생략제도 도입취지와 건정심 결정취지를 비교적 잘 조율한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여기다 약평위 통과이후 복지부 협상명령을 생략하고 곧바로 건보공단과 해당 제약사 간 부속합의 절차를 진행해 시간을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는 제약계 의견도 있다. 이는 '조건' 범주를 '부속합의'에 한정하고, 복지부 협상명령도 생략하자는 의미인데, 현 제도운영 방식에 비춰보면 부자연스런 측면이 있다.

제약계 한 관계자는 "이날 조건부 의결된 약제와 앞으로 진입할 약제를 분리해서 이날 안건이 된 약제들은 환자보호조치 등 부속합의를 신속히 진행해 조건을 이행 급여혜택이 환자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게 하고, 향후 진입할 약제 부분은 약가협상생략제도와 건정심 결정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협상명령 기간이나 내용 등 구체적인 사항은 검토해봐야 한다. 어쨌든 건정심에서 결정한 '조건부 의결'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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