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상무

바이오벤처 대표가 말하는 기술,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보는 신약개발 생태계, 제약회사 PM이 말하는 제품. 그동안 인터뷰를 진행해온 패턴이다. 이번에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한 인터뷰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술’이라는 매개체로 그들의 속 이야기를 좀 더 듣고자 [HIT 취중잡담]을 기획했다.[편집자 주]

"23일 오후 4시 30분. 제 단골 맥주집 그림버겐에서 봬요."

이번 인터뷰 기획은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TV프로그램 <인생술집>처럼 업계 사람들이 맥주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 편하게 나누는 형식도 재밌을 것 같네요"라는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응해달라는. 설 연휴 하루 전 자신의 단골 맥주집으로 초대했다. 바티칸 교황청의 승인이 있어야 하고, 전 세계 11개 브랜드 밖에 생산이 안 된다는 귀한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1980년대 말에는 일상적이었던 강의실보다 시위하던 거리가 익숙했던 경험, 한솔그룹 연구소로 입사했다가 IMF 이후 공장 근무를 자처한 경험을 쌓고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을 거쳐 투자업계에서 들어온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상무. 바이오 업계에서 조연을 자처하는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신정섭 주연의 짧은 일대기 한편을 써 봤다.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상무와 21일 청담동 그림버겐 맥주집에서 [HIT 취중잡담]을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나오셨잖아요. 원래 생물학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어렸을 때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어린이프로그램에 ‘유전공학’이 주제로 나오더라고요. 요즘 펭수와 같은 프로그램인데요. 유전공학 기술로 감자에서 토마토가 자라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저거다’ 싶었죠. 해부가 두려워 의대는 애당초 접었고 전기전자 용어들은 딴 나라 말로 들리는게 당최 (무슨 말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미생물학과를 선택했죠.

입학하자 마자 알겠더라고요. 연구의 길을 걷지는 않을 거라는걸요.(웃음) 박진모 하버드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학교 교수, 고광표 고바이오랩 대표가 제 동긴데요. 과학자가 될 씨앗은 따로 있구나 싶더라구요. 당시만 하더라도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되는 게 일반적인 경우 였거든요.”

-졸업 하시곤 한솔그룹에 가셨잖아요.

“즐겁게 대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석사 과정까지는 마쳤는데, 박사는 연구에 정말 관심이 많아야 하잖아요. 박사 대신 취업의 길을 생각하게 됐죠. 당시만 하더라도 화학 산업이 주류였죠. 하지만 바이오 ‘공정’ 개념이 나오면서, 기존 화학 공정에 바이오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당시 한솔이 삼성에서 독립한 이후로 충분한 자금을 바탕으로 바이오 공정 연구에 투자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요. 석사 1년차에 한솔 장학생에 선발돼, 일본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장학금도 받은 인연으로 자연스레 한솔연구소에 취직하게 됐어요. 당시 연구소도 마석에 있어서 서울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있었구요.

-한솔에서 어떤 업무를 맡으셨던 거에요?

“본사 근무를 지원했는데 연구 장학생이라 연구소로 배정됐어요. 결국 연구소 상품개발팀에서 일하게 됐어요. 정말 연구에는 뜻이 없었거든요. 기획, 연구개발, 시생산, 제품 생산과 품질 관리까지 제품개발의 전 주기를 도맡아 하는 일이에요.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그후 IMF가 터지고 회사 상황이 어려워졌어요. 연구소가 와해되는걸 보면서 공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전주공장 근무를 자원했죠. 공장을 경험하며, 기업의 핵심은 ‘생산’과 ‘영업’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 이후 마크로젠으로 옮기셨잖아요.

“한솔을 나와서 몇 개월 쉬다가, 미생물학과 동기인 마크로젠 창립 멤버 정현용 박사와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어요. 그러다 서정선 사장과 면접까지 봤어요. 어느새 제가 신 과장이 돼 있더라고요.(웃음). 당시 서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신 과장, 신데렐라의 12시를 아나? 지금이 11시 55분이네. 이제 5분 밖에 안 남았으니 잘 해봅시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다음날부터 출근했죠.”

-마크로젠에서 기획팀에서 근무하셨잖아요. 회사의 비전도 안 보고 들어가신 것 아니실 것 같은데요.

"입사 시기와 맞불려 유전체학회에 참가했어요. 학회 참석자 대부분이 서정선 교수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더라고요. 2000년대 유전체학(genomics) 열풍을 직접 목격했죠. 학교 다닐 때 접했던 유전자 염기서열(sequencing) 분석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이후 ‘앞으로는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한마디와 함께’ 기획팀에서 5년 동안 근무했어요. 더 이상 연구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죠. 총리, 장관 방문 시 보고자료 작성부터 정책기획서 작성, 언론 관리, 투자 등 다양한 업무를 접하게 되었죠."

-벤처캐피털리스트(VC)는 어떻게 되신 거에요?

"마크로젠에 들어오기 전부터 투자업계에서 제안이 있었어요. 당시는 VC가 뭔지도 모르니 당연히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죠. 그러다 마크로젠에 가기로 결정하면서 5년 뒤에는 투자 업계를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VC는 숲(산업 생태계)을 보는 일이에요. 숲을 보려면 일단 나무(개별 기업)를 알아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마크로젠에서 경험을 쌓은 뒤 산업은행의 투자전문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에 합류하며 투자계에 들어섰죠."

-산은캐피탈과 KB인베스트먼트 두 곳에서 바이오벤처 투자만 해 오셨잖아요. 다른 분야는 아예 생각이 없으셨어요?

"결국 두 가지거든요. 바이오와 투자. 제 준거는 바이오가 늘 첫 번째에요. 투자는 그 다음이고요. 제가 산은캐피탈에 최초 경력직으로 입사한 것도 ‘바이오’ 투자를 할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또 제가 아는 게 바이오 밖에 없으니, 바이오만 투자했죠."

-첫 번째로 상장해서 엑시트(Exit)한 회사는 어딘가요?

"제넥신입니다. 투자 이후 2년 만에 상장까지 가서 큰 수익을 올렸죠."

-산은캐피탈이면 정말 좋은 직장인데, 왜 그만두셨어요?

"산은캐피탈에 5년간 있었죠. 40살이 됐어요. 40세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어요. 제넥신 상장 이후 사표를 냈죠. 다음 계획은 딱히 없었지만 벤처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회사에서 휴가를 받아 40일간 유럽 배낭여행을 갔죠.

마지막 여행지가 프랑크푸르트였는데요. 글로벌 제약사 출신 60대 일본인 투자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늙어서도 투자를 하는 삶도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다 현재까지도 투자 업계에 몸 담고 계신 것이군요. 요즘 신약개발 생태계는 어느 단계까지 왔다고 보세요? 한마디로 표현하시다면요?

"2000년에 태어나서 이제 스무살이 됐다고 봅니다. 기업이 상장한다는 것은 비로소 성인이 되는 것이거든요. 상장 전에는 엔젤투자자, VC 등에서 등록금(투자금)을 받아 자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죠.

상장 이후에는 개인투자들의 공모 자금을 통해 비전 사업을 할 수 있는 군량미를 확보하는 거에요. 바이오 기업이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도 이윤을 창출하긴 어려운 구조지만, 이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정도까진 온 것 같아요."

-업계에 오래 계셨으니 이런 질문도 드리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신약개발 생태계를 가장 이상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절대자라면 어떤 생태계로 조율하고 싶으세요?

"공적 자금은 연구(research)에 투자하고 싶어요. 연구와 개발(development)은 정말 다른 영역이거든요. 개발은 민간자본이 충분히 충당할 수 있어요. 결국 신약개발 역시 시작은 ‘기초연구’ 거든요. 기초연구야 말로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그 나라의 과학 ‘문화’의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기초연구도 그렇지만, 아직까지 개발 단계도 전 주기를 완수한 사례가 거의 없잖아요.

"결국 바이오산업도 가치사슬의 최종 단계는 생산과 영업이에요. 지금은 후기 단계를 모르니 기술이전을 하지만 이 역시 의미가 큽니다. 기술이전을 하게 되면 글로벌 제약사 등과 전략적 미팅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신약개발 후기 단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SK바이오팜도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혹자는 SK바이오팜 한 기업의 성과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냐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신약개발 전 주기를 경험한 SK바이오팜의 경험과 인력들이 평생 SK바이오팜에만 있을까요? 생태계 전체로 확산될 수 있어요.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쌓여 우리도 길리어드 사이언스나 제넨텍이 될 수 있겠죠."

-이야기하다 보니, 업계 이야기만 여쭤봤네요. 대학교 시절 이야기도 더 들려주세요.

"대학교 때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4학년때까지 700권 정도 읽었죠. 당시 읽은 책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사회과학 40%, 실존주의 20%, 나머지 문학과 전공 관련 책을 읽었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그 때 읽은 책들이 제 삶의 큰 자산인 것 같아요."

-상무님은 상황 판단이 빠르신 것 같아요. 가령 바이오공정 시대를 예견 하시는 것이나, 유전체학이 한창 붐이 일던 시기에 마크로젠에 가신 것도 그렇고요. 마냥 운이라고 표현하긴 어려워 보여요. 이렇게 들어보면 꽤 탄탄대로를 달리신 것 같은데. 살면서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이 일을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어요. 즐거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요. 아직 집 한채 없지만 먹고 살 걱정은 안하니까요. 다만 학부때 전공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듣는 귀에 보는 눈을 더할 수 있었으면 좋은 투자심사역이 될 수 있었겠죠."

-VC로서 가장 경계하는 점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주인공이 아니고, 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조연이나 스태프에요. 국내 바이오 생태계의 주인공은 대기업도 아니고, 과학 기반 벤처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기업 등에게) 가르치려 들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주객전도라고 봐요."

-미국은 VC가 주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상황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환경이 맞다고 보지도 않고요. 미국이나 우리나라 역시 일면 지나치게 ‘자본’ 중심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어요. 자본이 신약개발의 연료는 될 수 있지만, 엔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엔진은 과학적 발견이고 지속적인 과학이죠. 종착역은 환자이구요. 종국적으로는 바이오의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보는 비욘드 바이오(Beyond Bio)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믿습니다."

-비욘드 바이오, 어떤 개념이죠?

"현재의 자본주의 모습과는 조금 다를 거라고 봐요. 그래서 제가 투자하는 회사는 연구자가 창업하는 초기 회사입니다. 돈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 게 제 원칙이고요. 저 역시 직장인이기 때문에 회사에 돈을 벌어줄 의무는 있지만, 무조건 돈을 좇지는 않습니다. 저희 회사는 투자를 통해 돈을 벌지만, 개인적으로는 투자회사들과 관계를 얻는게 보람이죠."

-그렇다면 상무님의 투자는 대부분 '초기'인가요?

"그 동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행히 초기투자를 통해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구요. 지노믹트리 첫 투자가 10억원이었는데, 450억원을 회수했습니다. 2번째 이후 투자분은 아직도 보유중입니다.

제가 KB그룹 회장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바이오는 미래 수익의 원천이다. 은행이 고객을 확보하려면 벤처캐피탈이 커야 한다고요. KB인베스트먼트의 바이오는 해외로 외연을 넓히는 한편 더 초기단계로 내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저는 앞으로 초기투자에 더욱 매진코자 합니다. 일반투자는 후배들이 이미 잘 하고 있으니깐요."

-앞으로 투자 업계에 몸 담으면서 목표는요?

"투자자에서 투자가로 진화하고 싶어요. 者(놈 자)와 家(집 가)의 차이인데요. 일가를 이룬 사람을 ‘가’(家)라고 표현 하잖아요. 단순히 투자하고 돈을 버는 사람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욕심입니다.

이정규 대표가 상장을 하며 브릿지바이오 투자자그룹 단톡방에 투자가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어요. 정답은 없지만 저 역시 업계 분들에게 ‘투자가’로 불리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단순히 수익을 많이 냈다고해서는 이런 호칭을 얻을 수 없겠죠."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