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이정규 대표와 판교 투뿔등심에서 [HIT 취중잡담]을 진행했다. 

"행복은 신기루에요.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큰 슬픔을 덮고 살 뿐이죠. 다행인 건 그나마 자기 성질대로 잘 살다 보면 만족하고, 만족이 지속되면 자주 행복을 느낀다는 거에요."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정신의학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생각난 몇몇 바이오벤처 대표들이 있었다. 이정규 대표도 그 중 한명이다. 업계에 아는 사람들이야 알겠지만, 이 대표의 벤처 인생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이야 국내에서 NRDO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글로벌제약사와 큰 규모의 기술이전을 했지만, 2008년 그가 처음 창업한 렉스바이오는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그는 렉스바이오의 경험을 "좋았다"고 말한다. 실패한 경험을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근후 박사가 말한대로 ‘자기 성질대로’ 운영했던 렉스바이오가 어쩌면 그에게 행복한 기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교 투뿔등심에서 레드와인과 함께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의 행복한 바이오벤처 경험과 신정섭 KB인베스트먼트 상무에게 말했다던 '좋은 투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0년이면 국내 바이오벤처가 막 움트던 때인데, 괜찮은 직장에서 바이오벤처로 나오는 게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IMF를 통해 동화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 은행이 직접 문을 닫는 것을 목격했죠. LG가 대기업이긴 해도, 이 안에서 나는 어떻게 성장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MBA 과정 밟는 것에 관심을 가지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회장이 벤처 합류를 제안했을 때 고민없이 합류하게 됐죠.”

-고민도 없이? 당시 벤처에 대한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기회를 잡으려면 본인 만의 기술(skill set)이 있거나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시 사회 구조는 이미 바뀌고 있었고, 저만의 자리(position)를 잡기엔 늦었다고 봤어요. 하지만 저만의 기술은 있다고 봤죠. LG 시절부터 연구와 사업을 중개(translation)하는 일을 계속 훈련 받아 왔으니까요. 바이오 분야에서 사업과 과학을 연결해 주는 사업개발 부분에서 저만의 스킬 셋을 키우고 싶었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벤처 생태계로 나오니 정말 재밌던가요?

“엄청 재밌었죠. 제가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는 벤처만의 매력이 있었거든요. 대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요. 당시 조중명 박사님께서도 사업 개발 영역에 대해서 저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해 주셨고요. 사업개발이나 기획 부문에선 제가 CEO 역할을 한 셈이죠.”

-크리스탈지노믹스를 나와 렉스바이오를 차리셨잖아요.

“크리스탈지노믹스도 점점 규모가 커져가고 저도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좀 더 진취적으로 해 보고 싶었죠. 비단 크리스탈지노믹스 뿐만 아니라 보통 다른 바이오벤처도 창업 멤버들이 CEO를 역임하죠. 다양한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점점 힘든 구조로 가죠. 리더십을 바꾸기 쉬운 구조도 아니고요. 크리스탈을 떠나 좀 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었죠.”

-렉스바이오 시절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망했잖아요.(웃음) 결과적으로 망했지만 정말 좋았어요. 예전부터 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어요. 해외에선 절대 회사 규모, 인원을 묻지 않아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그 프로젝트가 어떤 과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만 질문하죠. 국내는 반대의 상황이지만요.

당시 로슈에서 렉스바이오 과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당시 저는 로슈에 기술이전을 포함하여 회사 인수 등 다양한 협력방안을 협의하고 있었어요. 구체적인 제안도 있었구요. 안타깝게도 제가 투자가와의 관계 관리를 잘 못해서 성사되진 않았지만요.

렉스바이오는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보다 더 극단적인 NRDO 비즈니스 모델을 취하고 있었거든요. 직원도 저 포함 2명에 나머지 인원은 모두 컨설턴트였죠. 하지만 로슈는 협상 내내 단 한 차례도 직원 수나 자본금을 묻지 않았어요.”

-글로벌제약사와 협상 경험은 언제부터 쌓으셨죠?

“1997년 LG 시절부터 협상을 지원(support)해 주는 보조 역할부터 시작했죠. 그러면서 점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어요. 렉스바이오와 올리패스 협상 때 실제 리드하는 역할을 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협상은요?

“아무래도 작년에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으로 기술이전 된 BBT-877(특발성 폐섬유증 후보물질)이 가장 기억에 남죠. 결과적으로 특발성 폐섬유증 질환 영역에서 상당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베링거인겔하임(BI)과 거래를 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협상 상대를 직접 고를 수 있었고, 자본금도 충분해서 가장 럭셔리(?)하게 할 수 있는 거래였고요.

여담이지만, BI외에도 미국에 꽤 유명한 바이오텍 회사도 저희와 기술이전 거래를 하길 원했어요. 저희 파이프라인을 그쪽에서 도입하면 기업공개(IPO)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그 쪽에서 제시하는 지분을 받으면 저희가 대주주가 될 수 도 있었거든요. 우리에게 간곡하게 제안을 했고, 거절하는 데 참 힘들었죠.”

-국내에는 아직 대표님과 같이 글로벌 제약사와 협상할 수 있는 인력이 그리 많진 않은 것 같아요.

“경험을 많이 하면 인력도 풍성해 지겠죠. 국내에서 의미있는 기술이전 거래를 꼽으라면 단연 한미약품을 꼽을 수 있고요.”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협상 전략이란 무엇인가요?

“협상을 배우면서 명언을 몇 개 모아 뒀는데요, 협상을 할 때 항상 테이블에 잔돈은 남겨둬야 한다는 거에요. 상대방이 가져갈 수 있는 잔돈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협상을 마치고 누군가 피해를 본 주체가 있다면, 전 그 협상은 좋은 협상이 아니라고 봐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협상을 생각해 보면요. 초기 수익 배분율이 레고켐 쪽에 더 많이 가는 조건이었거든요. 그런데 협상 진행 과정 중에 1상보다 좀 더 빠른 템포로 기술이전 협상을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1상 이후에 협상에 들어가면 타이밍을 놓친다고 봤거든요.

직접 레고와 상의 끝에 우리의 협상력이 더 많이 들어가니 수익 배분율을 저희가 55를 받는 쪽으로 바꾸자고 했죠. 레고 입장에서 수익배분율은 줄었어도 결과적으로 거래 규모 자체가 커졌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늘어나게 된 거죠. 서로 만족할 만한 타이밍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학부 시절부터 신약개발에 뜻이 있으셨나요?

“석사 시절 단백질 구조를 연구했어요. X-ray로 단백질 구조를 보면, 전자 지도(map)를 그래픽으로 볼 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최첨단 기술이었거든요. 이를 신약개발에 이용하는 곳이 LG 밖에 없었죠. 실험실에서 2년 5개월 정도 관련 연구를 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당시는 석사와 박사 간 차이가 있어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 쪽으로 넘어가게 됐죠.”

-박사 과정을 왜 밟지 않으셨을까요.

“학부 시절부터 유시버클리(UC Berkeley)에 김성호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은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LG 연구기획과 사업개발 쪽에서 일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결과적으로 석사 이후 LG에서 사업개발 경험을 쌓은 것이 창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박사가 아니어서 특정 분야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고요. 오히려 다른 분야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죠.”

-기업 거버넌스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기업 거버넌스 부회장 직도 같은 맥락에서 수락하신 건가요?

“현명한 왕은 있지만, 모든 왕들이 현명하긴 힘들잖아요. 결국 우리나라 재벌(대기업) 구조로는 물려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나마 물려받는 사람이 뛰어나면 괜찮은데, 그렇기 쉽지 않고요. 현명한 왕이 되기 위해선 자기 절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실무도 알아야 하는데 재벌 체제 안에서 물려 받는 경영권 자가 이런 덕목을 다 갖추긴 힘들죠.

사실 IMF도 생각해 보면, 기업과 정부 리더들이 잘못 판단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거든요. 물론 지금 당장은 (재벌 체제 등이) 굳어져 있어서 극복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전 거버넌스로 (재벌 체제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봐요.

회사가 잘 됐을 때, 공정하게 성과를 배분하고 젊고 유능한 사람에게 리더십을 넘겨주는 기업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봐요. 이런 공통된 의견으로 지난해 학계, 투자계에 계신 분과 뜻을 모아 기업 거버넌스를 논의할 수 있는 곳을 만들게 됐죠.”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해 12월 창립됐다. 포럼 초대 회장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부회장은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티스 대표, 이한상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각각 맡았다. 발기인엔 강성부 KCGI 대표,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대표, 이재웅 쏘카 대표, 장덕수 DS자산운용 회장,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포럼 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의 공공선 달성, 국민과 투자자의 후생 극대화 차원에서 설립된 포럼인 만큼 세계 수준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고 이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거버넌스가 구축되면 어떤 긍정적인 모습이 나올까요.

“국내에는 세계적 기술력을 가졌거나 작은 시장이지만 독점 (혹은 과점)을 이루고 있는 회사들도 꽤 있어요. 이런 회사들의 기업거버넌스가 개선되면 해외투자가들이 몰리게 되고, 또 우수한 인재들이 몰릴 수 있습니다. 바이오텍도 그러한 투자가들, 창업자, 새로 들어오는 능력있는 분들 모두의 이익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 바이오벤처 생태계가 성장했다고 하잖아요. 성장이 지속되려면 무엇이 더 보완돼야 하나요.

“여러 시도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의견, 생각, 경험을 공유하는 게 약해요. 미디어와 리더들이 공유할 만한 의견, 생각, 경험에 대해 목소리를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깐요. 사회가 좀 더 빨리 발전하려면 경험이나 의견 교환이 자유롭게 돼야, 다음 사람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거든요.”

-바이오벤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미 저는 과거를 산 사람이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별다른 할 말은 없어요. 그들은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살아야죠. 다만 최대한 많은 것을 시도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로 시리즈 A를 받을 때 기업가치를 너무 높게 받지 말고, 좋은 투자가를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물론 본인이 직접 겪어야 이 말의 중요성을 알겠지만요.”

-KB인베스트먼트 신정섭 상무가 좋은 투자가 이야기를 했다는데,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투자가란 어떤 건가요.

“단계와 상황마다 다르겠죠. 미국의 경우 투자가가 리드할 수 있겠지만, 지금 국내 상황에선 회사를 지원해 주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봐요. 우리나라도 10년 이후 벤처를 했던 사람이 투자가가 되면, 투자가가 기업을 이끌 수도 있겠지만요. 투자가가 기업과 ‘협력’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경우 사외이사는 우리가 가르쳐 주고, 투자가가 서포트 해 주면서 협력 관계를 가지고 갔죠.”

-페이스북에서 기업문화에 관심을 보이세요. 전부터 꿈꾸는 기업 문화가 있나요?

“개인의 개성은 터치하지 않되, 주어진 업무만 전문적으로 해 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개성은 드러내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종종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하잖아요. 저흰 각자의 개성은 터치하지 않아요. 업무 방식, 장소의 구애 없이 업무 진행 상황만 명확하게 전달되면 됩니다. 요즘엔 온라인에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니 별 문제도 없고요. 앞으로 인원이 충원돼도 이런 문화는 유지할 생각입니다.”

*이정규 대표

△1968년 충남 부여 출생 △1987년~1991년 서울대 화학과 학사 △1991년~1993년 서울대 화학과 석사 △1993~2000년 LG화학 연구기획·사업개발 차장 △2000년~2007년 크리스탈지노믹스 공동 창업 후 사업개발 이사 및 CFO 역임 △2008년~2013년 렉스바이오 대표이사 △2013년~2015년 리&리 어드바이저리 자문 (국내 바이오텍 및 주요 제약사 대상 사업개발 자문 역임) △2015년~현재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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