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서울대 졸업과 하버드대 박사후과정 등 '정식 교수 코스'를 밟은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의 발길은 산업계를 거쳐 바이오벤처 생태계로 향했다. 그는 "똑똑한 사람을 피해 남들이 가지 않을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다소 상투적인 쓰임처럼 변했지만 에이비엘바이오 핵심 투자자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상무가 투자 업계에 들어온 계기도 '가지 않은 길'로의 선택이었다. 비슷한 성향 덕에 합을 잘 맞춰 초고속 상장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와인의 기운에 힘입어 직구를 던졌다. 어떻게 창업 3년만에 한투파와 손잡고 상장을 했어요?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와 [HIT 취중잡담]을 진행했다.

 

밖에서 보기엔 쉽게 상장한 느낌 있어요. 한투파와 손잡고 상장한 스토리가 궁금해요.

"황만순 CIO를 비롯해 김연준 상무, 김요한 상무 등이 (상장이나 투자 등에) 중요한 인물이죠. 이들과의 인연은 2009년 파멥신 공동창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죠. 당시 노바티스가 바이오벤처를 선정해서, 투자해 주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당시 담당자가 김연준 상무였죠. 황만순 상무는 이후에 알게 됐고요.

한화에 들어갈 때도 계획은 4~5년 뒤에는 벤처 창업을 하는 것이었어요. 한화의 사업 철수로 그 주기가 앞당겨 지긴 했지만요. 2015년 가을 김연준 상무를 찾아가, 우리가 가진 기술을 설명하면서 창업 계획을 밝혔죠. 한투에 직접 찾아가 칠판에 기술을 그려가며 설명했죠. 몇 개월 이후 김연준 상무가 연락이 왔어요. 계획대로 창업을 진행하냐고 물었어요. 자신들이 투자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투가 투자한다고 해서 상장이 쉽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운이 좋게도 다른 회사와 달리 투자가들과 함께 투자활동(IR)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요. 김연준 상무와 김요한 상무와 함께  2~3주 간격으로 만나 기술에 대해서 논의를 거치며, IR 자료를 만들었어요. 이중항체, 항체접합체약물(ADC), 시뉴클레인 등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을 다듬는 과정을 6개월 동안 피드백을 거쳐 수정했어요.

벤처캐피털 쪽에 공유되는 자료를 통해 이중항체 글로벌 트렌드도 익히고, IR 슬라이드만 수차례 고쳤어요. 마지막에 DSC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증권에 가서 IR 발표를 할 당시 자료를 보면, 초기에 준비했던 것과 완전히 버전이 달랐다는 것을 느끼죠. 황 상무까지 합류하면서, 운이 좋았죠."

 

보통 VC와 초기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도 많잖아요.

"사실 저 역시 파멥신 등 초기 창업 과정에서 투자자와 불협화음을 경험하기도 했어요. 에이비엘바이오 창업 당시 VC와 머리를 맞대고 IR 자료를 만들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우리 IR 자료는 우리만의 기술이 아니라, 투자가들의 값진 피드백이 함께 녹아 있는 자료에요. 밖에서 보기엔 3년여 만에 에이비엘바이오를 창업한 것으로 보이지만, 파멥신, 한화 시절까지 합하면 저 역시 10여년 걸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비엘바이오를 부러워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은데요.

"최종 목표 자체가 상장은 아니잖아요. 결국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선 '조급증'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역시 이런 조급함을 완전히 버리진 못 했지만, 요즘엔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요즘엔 어떤 점이 조급하세요?

"상장사로서 향후 5년 안에 목표를 구체적으로 시장에 보여줘야 하잖아요.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데이터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생각해요. 이젠 김종란 전무가 합류해 어느 정도 임상팀도 꾸렸으니, 예전처럼 기술이전만을 목표로 하진 않아요. 적어도 임상 1상-2a상까지 완고한 임상 데이터를 마련해 기술이전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대표님 개인 시간은 부족하실 것 같아요.

"잠과 TV보는 시간을 줄이면 돼요.(웃음) 그래도 골프, 테니스, 강아지 산책 등 틈틈이 취미 생활을 즐기죠. 힙합을 제외하고 가요,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듣기도 하고요. 독서는 많이 하진 않지만, 아내의 권유로 종종 책을 읽기도 하고요."

 

창업은 언제부터 꿈꾸셨던 거에요? 미국 유학시절부터 인가요?

"미국 유학시절 전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스탠포드 지도교수님이 저에게 산업계 경험을 쌓아 보라는 권유로 당시 암젠, 제넨텍과 어깨를 나란히 한 카이론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회사에서 똑똑한 친구들은 초기 후보물질 발굴(early discovery) 그룹으로 많이 갔어요. 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인 동물실험을 하는 파마콜로지(pharmacology) 그룹을 선택했죠.

에이비엘바이오 창업을 했던 건 이런 산업계 경험이 축적돼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제 정체성은 결국 사이언스(science)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에서의 학계와 산업계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대표님 처음 뵀을 때 '기술이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젠 '지속가능성'을 말씀하시네요. 바이오벤처와 지속가능성, 매치가 잘 안 됩니다.

"기술이 진보하듯, 회사 역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야 생존할 수 있겠죠. 저를 비롯해 에이비엘바이오 임원은 3~5년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 목표는 기술이전입니다. 하지만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경험이 축적되면, 10년 후에는 우리도 글로벌 제약사 등과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에 신약을 출시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물론 여전히 마음 속으로 '조급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간 미국이나 유럽도 하루 아침에 신약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암젠이나 제넨텍도 초기엔 기술이전 등을 통해 성장해 나간 것이거든요."

 

1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85명까지 직원이 늘었어요.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세요?

"상장 후에 오히려 더 직원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직원들이 에이비엘바이오를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큰 인사이동은 없어 감사하게 여기고 있죠. 이런 분위기를 5~10년 후에서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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