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진 지놈앤컴퍼니 부사장

"재무와 회계를 관장하는 경영지원 그룹이 없으면, 그 벤처는 단순한 연구자 모임일 뿐이죠."

바이오벤처는 연구개발 스페셜리스트가 많을 것이란 오해가 있었다. 최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관련 기술을 보다 규모가 큰 기업과 거래를 하는 곳. 이런 조직에서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연결하는 '제너럴리스트'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영진 지놈앤컴퍼니 부사장과 첫 저녁식사 자리 이후, 그 오해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연구개발 관점에서 제너럴리스트지만, 재무와 회계를 포함한 경영지원이라는 면에선 스페셜리스트였다. 첫 만남인데도 그와 첫 저녁식사 자리에서 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히트뉴스 독자와 나누고 싶었다. [HIT 취중잡담] 코너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코로나가 앗아간 일상은 저녁에 간단한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자리도 쉽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판교 지놈앤컴퍼니로 찾아가 그날 못다한 질문을 쏟아 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으니 '다중잡담'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HIT 취중잡담]은 술 대신 차로 대신해 지놈앤컴퍼니 회의실에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했다.

레지던트까지 마치시고, 임상 의사의 길은 선택하지 않으셨네요.

"레지던트 시절 피츠버그 의과대학으로 단기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어요. 생각보다 의사 역할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기초연구, 병원 경영, 디지털헬스케어 등 진료 외에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 컨설팅 업계에 진출한 의사 출신 선배님들은 쭉 만날 기회를 가졌어요. 당시 맥킨지에 근무하시던 김치원 원장님을 비롯해 배지수 대표님, 정승원 한올바이오파마 미국 법인 대표님들을 뵀어요. 당시 군대 시기와도 겹쳤는데, 좀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군의관 대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의료진으로 베트남 하노이에 가게 됐어요.

베트남은 중국과 비슷하게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 시장구조를 취하고 있어요.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영리병원이 많았는데, 당시 비즈니스 관점으로 헬스케어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생각이 깊어져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공부를 했고, 듀크대학교 MBA 과정에 합격했죠."

 

MBA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불안하지 않았나요?

"의사에서 다시 늦깎이 학생이 되는 것이니, 불안했어요. 학비가 만만치 않으니,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유학길에 올랐어요. MBA를 밟기 직전에 현재의 아내를 운좋게 만나됐어요. 이후 배지수 대표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 덕분에  베인앤컴퍼니에 취직할 수 있어 학자금을 갚을 수 있었죠.

제 인생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가 가장 불안한 시기였어요. 그러다 베인앤컴퍼니에서 헬스케어 관련 컨설팅 업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죠. 당시의 경험은 제가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동력이 됐어요. 재밌는 것에 도전하고, 힘든 과정을 버티고, 그 과정 이후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베인앤컴퍼니에선 뭘 하셨나요.

"당시 회사에 들어갈 무렵이 2015년인데, 그 시기가 한미약품이 기술이전의 포문을 열었던 시기였어요. 특히 국내 대기업 중 제약회사를 계열사로 둔 곳이 한미약품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달라는 컨설팅 의뢰가 꽤 들어왔죠. 당시 SK, LG, 보령제약 등 국내 제약업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헬스케어 산업 군관 관련된 경험을 쌓았죠.

당시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님, 김재순 피에이치파마 전무님께 많은 도움을 받으며, 벤처로 들어오는 계기가 됐어요. 2년 간 회사 생활을 마치고, 헬스케어 분야의 사업개발을 배우기 위해 피에이치파마로 자리를 옮겼죠."

 

지금은 지놈앤컴퍼니에서 일하시잖아요.

"당시 지놈앤컴퍼니가 시리즈B 펀딩을 받을 때였어요. 배지수 대표님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급작스럽게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컨설팅 경험과 기존 벤처 경험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자기와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오히려 명확한 역할을 규정하지 않고, 함께 만들어 가자는 말이 와 닿았어요. 그 이후 한달 만에 합류하게 됐어요. 2018년 6월 딱 하루쉬고, 첫 출근지가 바이오USA였어요. 배지수 대표님과 박한수 대표님이 어떻게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는지 옆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어떤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나요?

"기업설명(IR), 이사, 재무, 회계, 임상시험 등 다방면으로 할 일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이 모든 일을 조금씩 관여했는데, 이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오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어요. 처음 올 당시는 연구소 외 인력은 대표님 제외 4명이었거든요. 그 당시는 대표님을 도와 임상개발, 사업개발, 경영지원 체계를 확립하는 역할을 했어요.

연구개발만 한다고 회사가 될 수 없잖아요. 회사로서 모습을 갖춰나가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너럴리스트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바이오벤처에서 제너럴리스트는 생소해요. 역할을 설명해 주세요.

"일종의 코디네이터라고 할 수 있죠. 기술 벤처에서 기술이 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선 제너럴리스트가 하는 경영지원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경영지원 그룹이 하는 재무, 회계가 탄탄하지 않으면 단순한 연구자 모임일 뿐이죠. 상장도 하지 못 할 것입니다. 

상장을 하기 위해선 내부통제와 자금흐름을 탄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분명 각 분야별로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하지만, 조직을 구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제너럴리스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경영진과 함께 그리는 기업문화는 무엇일까요?

"유연성과 오픈마인드가 키워드입니다. 벤처는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돈과 사람은 늘 부족하죠. 하지만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민첩하고, 유연해야 합니다. 당장 안 될 것 같은 것에도 접근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끊임없는 진화를 위해 유연성을 갖춰야 합니다.

또 자신의 생각을 회사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오픈마인드가 필요하죠. 직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지점을 회사에 말하고, 이를 논의해 발전적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으면 좋겠죠."

 

신약개발은 실패 확률이 높은데, 그래도 도전하는 원동력은요?

"글로벌 신약을 만들겠다는 열망이라고 생각해요. 우리회사 대표님들을 비롯해 박경미 부사장님 이하 연구개발진님들도 글로벌 신약을 만들고 싶은 목표가 있고, 저를 포함한 경영지원 및 사업개발 구성원 모두 글로벌 신약을 만들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습니다. 신약개발은 확률이 낮고, 사람과 돈이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모두가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혁신 앞에서 확률을 논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확률이 높은 분야에 굳이 '도전'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을 테니깐요. 분명 우리나라에도 암젠이나 길리어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 산업군에 관심을 보이고, 자금도 모이고 있고, 국내 유수의 제약사 연구원들도 벤처로 유입되는 현상을 보면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한국에 있는 명망있는(prestigious) 글로벌 회사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컨설팅 경험에 비춰 국내 바이오산업, 어디까지 왔나요?

"IT 산업의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롤모델을 바이오산업은 이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구, 개발, 사업화에 대한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하는데, 국내에는 아직 기초과학 대비 개발 인력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단순히 임상시험 운영이 아니라 개발 전반을 꿰뚫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전임상부터 3상까지 신약개발 전반의 경험을 갖춘 인력이 필요한데, 아직 이런 경험을 가진 회사가 국내는 거의 없죠. 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바이오 산업에서 롤모델이 하루빨리 등장하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 회사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축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보고요. 향후 5~10년 이내로 바이오산업이 우리나라 산업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못 다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연구는 개발 관점, 개발은 사업화 관점, 사업은 임상현장과 시장의 관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 파트만 잘 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외부와 협력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죠. 이게 우리 회사의 지향점이기도 하고요."

*서영진 부사장 이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MD)

-듀크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베인 앤 컴퍼니 컨설턴트

-피에이치파마 사업개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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