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허에 가려진 상표분쟁의 중요성

비아그라(Viagra)의 유효성분인 실데나필(Sildenafil)은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다가 부작용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위 약물 재창출에 따른 의약용도발명(제10-0577057호)이 명세서 기재요건 위반을 이유로 무효되면서 2012년에 제네릭 제품이 쏟아졌었다. 누리그라, 해피그라, 세지그라, 헤라그라 등 언급하기 민망한 제품명들로 동료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은 비아그라를 떠올리게 하기 위하여 어미에 “~그라”를 사용한 점에 특징이 있다.

반면 한미약품은 비아그라와 전혀 상관없는 “팔팔”을 선택하였는데, 이제는 비아그라 제네릭 시장 석권을 넘어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왕좌를 지키고 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19년 가을 무렵 한미약품의 “팔팔”과 건강기능식품 업체 등과의 상표 분쟁을 접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2020년 3월 마지막으로 분쟁 중이던 “청춘팔팔”이 대법원에서 무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특허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위와 같이 상표 분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색다르게 “팔팔” 케이스를 중심으로 제약바이오 분야의 상표 이슈들에 대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팔팔정. *사진=한미약품 제공.
팔팔정. *사진=한미약품 제공.

◆ 상표의 권리화 – 유사상표가 없더라도 식별력의 허들까지 넘어야

보통 출원하고자 하는 상표와 유사한 선행상표가 없으면 등록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표를 권리화하기 위해서는 식별력(distinctiveness)이란 허들도 넘어야 한다. 상표는 그 상표에 의하여 상품의 출처를 일반수요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식별력이 있어야 하며, 개정 상표법 제33조 제1항에는 식별력이 부정되어 등록될 수 없는 사유들이 나열되어 있다. 특히, 실무상 가장 흔하게 문제 되는 것은 상표법 제33조 제1항 제3호의 기술적 표장(또는 성질표시표장)인데, 그 상품의 품질, 효능, 용도 등을 “직감”시키는 경우 위 조항의 거절이유를 통지받는다.

한미약품의 "팔팔"도 특허청 심사과정에서 발기부전치료용 약제 등에 대하여 ‘(약을 복용하면) 팔팔해지는’의 뜻으로 직감된다고 보아 거절되었다. 반면, 특허심판원에서는 그 품질이나 효능 등을 암시하는 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누구나 직감할 정도는 아니므로 기술적 표장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처럼 “팔팔”은 식별력의 허들을 힘겹게 넘어 겨우 등록될 수 있었다(제40-1

102745호).

위 내용을 부연 설명하기 위하여 상표 형성과정의 관점에서 상표의 분류를 살펴보면, 상표는 보통명칭 표장(common name mark) - 기술적 표장(descriptive mark) - 암시적 표장(suggestive mark) - 임의선택 표장 (arbitrary mark) - 조어 표장(coined mark)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보통명칭 표장 및 기술적 표장은 식별력이 부족하여 상표법상 등록을 받을 수 없고, 암시적 표장, 임의선택 표장, 조어 표장은 식별력을 인정받아 상표법상 등록이 가능하다.

다시 돌아와서, "팔팔"은 특허청 심사관과 특허심판원 심판관의 의견이 나뉠 정도로 “기술적 표장”과 “암시적 표장”의 경계에 있었던 것이다. 실무상 기술적 표장인지 암시적 표장인지 모호한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런 경우 등록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암시적 표장으로 인정받아 등록된다면 일반수요자에게 제품이 쉽게 인식되어 “팔팔”처럼 브랜드 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도 있다.

◆ 상표 분쟁의 대응(1) – 불사용취소심판, 무효심판을 통한 상표권 소멸

특허 제도와 달리 상표 제도에는 개정 상표법 제119조의 취소심판이 있다. 특히, 상표권자가 3년 이상 상표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 제기하는 불사용취소심판이 가장 흔하다. 무효사유가 없다 하더라도 해당 상표를 소멸시키고자 할 때 주로 이용되는 심판이라 보면 된다.

한미약품이 문제 삼은 상표들로 “청춘팔팔”, “氣八八 기팔팔”, “8899 팔팔구구”, “88靑春 팔팔청춘”, “팔팔 한의원” 등이 있다. 한미약품은 상표권자가 3년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던 “88靑春 팔팔청춘”과 “팔팔 한의원”에 대해서는 굳이 무효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고, 위에서 언급한 불사용취소심판(2018원722, 2018원723, 2017원1742)을 통하여 약 6~8개월 만에 해당 상표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나머지 등록상표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불사용취소심판 청구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되며, 결국 아래와 같이 무효심판을 통하여 상표 분쟁을 시작하였다.

건강기능식품(05류), 의료기기(10류) 등에 대하여 등록된 “8899 팔팔구구”의 경우, 특허심판원은 한미약품의 별도 등록상표인 “구구팔팔”과 호칭 및 관념 면에서 유사하다고 보았으며(2018당716), 무효가 확정되어 소멸되었다.

한편, 식이보충음료, 식이보충제, 혼합비타민제(05류) 등에 대하여 등록된 “氣八八 기팔팔”의 경우, 특허심판원은 “팔팔” 부분이 식별력이 부족하여 요부가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비교할 때 상표가 비유사하고 결국 무효가 아니라고 하였다(2018당715). 반면, 특허법원은 “팔팔”이 특정인의 상표, 더 나아가 주지상표로 인식되어 요부로 인정되고 요부관찰/분리관찰에 따라 상표가 유사하며, 지정상품은 유사하지 않으나 경제적으로 밀접한 견련관계가 있다고 보아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1호에 따라 무효판결을 내렸으며(2019허3687),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 여기서, 지정상품이 비유사하다고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무효라고 판단하였으므로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1호는 상품이 비유사한 경우에도 저명상표의 희석화 우려가 있는 상표의 등록을 방지함으로써 주지/저명한 상표를 사용하는 자를 보호하는 조문이며, 이러한 취지 때문에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남성성기능강화용 허브캡슐, 남성호르몬제, 남성성기능강화에 도움을 주는 식이보충제 등에 대하여 등록된 "청춘팔팔"의 경우, 특허심판원은 상표가 비유사하며 결국 무효가 아니라고 한 반면(2018당714), 특허법원은 “氣八八 기팔팔” 사건과 유사한 논리로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1호 위반이며, 더 나아가 상품도 유사하므로 구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7호 위반에도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위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되었으나, 2020년 3월에 기각됨으로써 “청춘팔팔”과의 분쟁도 끝이 났다.

“팔팔” 사건은 상표 분쟁의 모든 이슈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이 자사의 브랜드와 출처오인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상표권의 소멸 수단으로 불사용취소심판과 무효심판을 활용하는 구체적 예시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 상표 분쟁의 대응(2) – 침해여부의 판단

이번에는 제3자가 사용하는 상표의 사용을 저지하고자 할 때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한 경고장 작성, 가처분 신청, 침해 소송 등의 조치를 고려할 수 있겠다. 이에 여기서는 상표의 침해판단 방법에 대하여 살피고자 한다.

상표권 침해는 동일상표의 동일상품에 대한 사용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범위까지 성립할 수 있다. 즉, “상표의 동일 또는 유사” 및 “상품의 동일 또는 유사”를 충족한다면 침해를 다툴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프라임제약은 SK케미칼의 항궤양제 “프로맥”의 제제 발명에 대하여 소극적 권리확인심판을 청구하고 회피를 인정받아 우판권을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SK케미칼이 프라임제약의 제품명 “프라맥”을 문제 삼고 2020년 2월 상표권 침해에 따른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즉, “프로맥”과 “프라맥”이 유사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프라임제약은 자사의 상호와 SK케미칼의 상표를 결합하여 “프라맥”을 도출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위와 같이 분쟁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표를 제품명으로 선정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다행히 프라임제약은 “프라맥”을 “프레징크”로 제품명을 변경함으로써 침해 위험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김경교 교연특허사무소 대표.
김경교 교연특허 대표.

한편, 상표/상품의 동일 또는 유사 요건을 모두 만족한다고 하여 곧바로 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표권 침해는 침해자의 사용이 상표적 사용일 것, 즉 상표가 출처표시로서 사용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최근 식약처는 컬러콘(Colorcon) 사의 오파드라이(Opadry) 등 정제코팅제가 상표권 침해 우려가 있으므로 첨가제 등 원료의약품 명칭에 사용하지 말 것을 주문하여 업계의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첨가제의 표시는 출처표시로서 사용되었다기보다 의약품의 부형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결국 상표적 사용이 아니기 때문에 침해로 보기 어렵다. 관련하여 컬러콘 사는 실제로 오파드라이 제품을 사용하면 상표권 침해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식약처는 새로운 지침을 철회하고 첨가제가 기재된 상표와 다른 첨가제라면 변경허가 절차를 진행하라고 권고하였다.

위와 같이 “상표의 동일 또는 유사일 것”, “상품의 동일 또는 유사일 것”, “상표적 사용일 것”은 상표권 침해의 핵심 요건이며, 추가로 “상표법 제90조의 효력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충족해야 비로소 침해가 성립한다.

글=김경교 교연특허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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