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엔 더 높아 보이는 '허들'...제약계 "예외적 접근 고려해야"

지난해 발생한 건강보험재정 당기적자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강청희 보험급여이사는 올해 초부터 문재인케어에 따른 '계획된 적자'로 문제될 게 없다며,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었다.

여기서 '계획된 적자'라는 표현은 내용과 메카니즘 상 큰 차이가 있지만 한국엠에스디 항생제 저박사주(세프톨로잔/타조박탐) 급여평가 이슈와 웬지 닮아있다. 물론 건보재정은 '계획된' 것이지만, 저박사주는 '예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차이가 크긴하다. 무슨 말인지 이제부터 보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1일  '비용효과성 불분명'으로 저박사주가 비급여 결정됐다고 전날 열린 약제급여평가위원회 결과를 발표했다.

중증감염증에 쓰이는 저박사주는 2017년 4월7일 국내 시판 허가돼 다음해 인 2018년 5월1일 비급여 출시됐다. 급여 신청은 4개월이 더 지난 2018년 9월에 이뤄졌었다.

병원감염 이슈로 중증감염증에 쓰는 항생제 수요가 임상현장에서 높은데도 급여 신청이 늦어진 건 그만큼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 국내 시판허가 후 2년 2개월이 지나 처음 상정된 약평위는 역시 높은 '허들'을 또 한번 실감케 해줬다. 적어도 항생물질 신약에는 '예정된 비급여'라는 말이 틀리지 않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항생제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사용패턴 등으로 인해 근거생산이 어려워 경제성평가 자체가 쉽지 않은 약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대체약제들이 오래된 약물이거나 모두 제네릭이 출시돼 있어서 보험약가도 매우 낮은 편이다. 항생제의 이런 특징들은 그렇지 않아도 만만하지 않은 급여 '허들'이 항생제에게는 더 높아 보이게 만든다. 저박사주에도 그대로 적용된 공식이다.

국산신약인 동아제약의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테디졸리드)의 경우 2015년 12월(주사제)과 2016년 1월(정제)어렵게 급여등재에 성공했었다. 최근 10년 사이 거의 유일하게 급여 목록에 오른 항생제 신약이었다. 하지만 약가수준이 외국에 비해 너무 낮아 국내 출시를 사실상 포기했고, 최근 주사제가 2년 미청구로 급여목록에서 삭제되면서 뒤늦게 주목받기도 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카바페넴에 내성인 3개의 그람음성균에 대한 항생제 개발이 가장 최우선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발표했었다. 항생제 내성과 병원감염 문제는 개별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어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국제공제는 물론 국내 항생제 사용 저감노력, 병원감염 대책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와 관련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내과 이재갑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화이자제약 주최로 열린 프레스유니버시티 '항생제 내성: 현황과 해결 방안’ 주제발표에서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속균종(CRE) 뿐만 아니라, 반코마이신 내성 장내세균(VRE),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균(MRSA)이 이미 병원에 토착화됐다. 다제내성균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도 더 다양해 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저박사주와 같은 신약의 급여 조기 도입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이고, 이는 임상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컨센서스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아직 비급여 상태인데도 이른바 '빅5병원' 중 서울성모병원을 뺀 4개 병원에 저박사주가 '랜딩(진입)'된 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보건의료정책 또는 임상현장의 요구도와 국내 건강보험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와 관련 허경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앞서 언급된 프레스유니버시티에서 "내성극복 항생제에는 예외적인 약가를 부여해야 한다. 이런 신약이 내성에 발목잡힌 무력한 항생제 기준으로 낮은 약가를 받게되면, 항생제 연구개발에 나설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다국적 제약업계 한 관계자도 히트뉴스와 통화에서 "현 신약 평가체계에서 항생물질 신약이 급여권에 들어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현 약가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몰아붙이는 건 논란만 키울 뿐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중위생상의 필요성과 요구도, 약제 자제의 특성 등을 감안해 정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는 위험분담제 적용대상 질환 확대 논의 때 항생제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저박사는 항녹농균 효과를 보이는 새로운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 세프톨로잔과 베타락탐 분해효소 저해제인 타조박탐 복합 항생제다. 다제내성 녹농균과 ESBL 생성 장내세균 'in vitro(시험관내)' 활성을 입증했다. 또 그 밖의 일부 그람음성균·그람양성균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적응증은 복잡성 복강내 감염(cIAI, 메트로다니졸과 병용), 복잡성 요로 감염(cUTI, 신우신염 포함) 등이다.

저박사주는 국내외 여러 가이드라인들에 등장한다. 우선 질병관리본부의 요로감염 항생제 사용 지침(2018)은 ESBL 생성 균주에 의한 단순 급성 신우신염 치료에 카바페넴을 대체해 사용할 수 있는 치료옵션 중 하나로 저박사를 권고하고 있다.

복강내 감염의 경우 미국외과학회(2017년)는 저박사와 메트로니다졸 병용 요법을 경험적 치료요법 중 하나로 고려 가능하다(다른 약제가 듣지 않는 Pseudomonas aeruginosa 내성 균주 감염이 의심되거나 확인된 고위험 환자를 위해 필요 시에만)고 했고, 세계응급수술학회(2017년)는 카바페넴을 대체해 저박사와 metronidazole 병용 요법 사용을 언급했다.

영국항균화학요법학회?영국감염학회(2018년)도 세프타지딤에 내성이 있는 Pseudomonas aeruginosa 감염 치료와 ESBL 생성 E.coli 관련 요로 감염이나 복강 내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카바페넴의 대안으로 저박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유럽비뇨기학회(2017년)는 복잡성 요로감염과 패혈증이 동반된 요로감염 치료제로 저박사 1.5g을 1일 3회 투여하라고 권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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