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가보지 않은 길에서 늘 성장의 기회 잡은 한미그룹

2015년, 렘 수면 상태에 있던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계를 '조 단위 신약개발 기술 수출 패키지'로 깨워 '신약개발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던 한미그룹이 그로부터 대략 9년 만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안타까운 시선을 받고 있다. 2020년 8월 2일 새벽 한미약품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무렵에 유족들이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다. 현 경영진인 ①임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사장에 맞서 ②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막내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한미그룹과 OCI그룹과 통합' 발표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부과된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는 유족들에게는 가슴을 짖누르는 돌덩이였다. 작년 10월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3만원 아래까지 하락할 때는 '한미그룹이 통째로 매각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겠다'는 우려가 산업계 전반에 짙게 깔렸었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한미의 철학과 비전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는 송영숙 회장은 올해 2월 1일 회사가 낸 보도자료에서 "해외 여러 사모펀드들이 주가의 2배 매입을 제시하며 경영권 매각을 제안했으나 50년간 일군 한미의 매각을 단호히 거부했다"고 밝혔었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은 생전에 그의 아내 송영숙 회장을 창업의 동지, 송 실장이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창업동지답게 2020년 8월 임 회장이 별세했을 때 경영 전면에 등장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사진 = 조광연 기자. 한미빌딩 20층에 마련된 임성기기념관 전시물을 직접 촬영.
창업주 임성기 회장은 생전에 그의 아내 송영숙 회장을 창업의 동지, 송 실장이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창업동지답게 2020년 8월 임 회장이 별세했을 때 경영 전면에 등장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사진 = 조광연 기자. 한미빌딩 20층에 마련된 임성기기념관 전시물을 직접 촬영.

임성기약국에 점심을 해 나르고 한미약품 창업을 적극 내조한 까닭에 임성기 회장으로부터 "창업 동지, 송 실장"이라고 불렸던 송영숙 회장과 2001년 입사해 2015년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신약 개발 기술 라이선스 딜 체결 과정을 아버지 임성기 회장과 함께 진행한 덕분에 '지켜야 할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버지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임주현 사장은 올해 1월 12일 한미그룹의 미래와 관련해 큰 결단을 했다. 그것은 바로 소재기업으로 성장한 OCI그룹과 '기업집단 간 대등한 통합을 통한 전략적 제휴'였다.

두려움 없이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서 성장과 발전의 모멘텀을 창출했던 한미 방식(Hanmi Way) 그대로였다. 임주현 사장은 라이선스 딜이 성공했을 때 아버지와 같이 환호했고, 딜이 되돌아 왔을 때 아버지와 함께 고통어린 눈물을 삼킨 인물이다. 임성기 회장과 부녀 사이지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즈니스 의사결정에서 제일 믿음직하게 고통을 나누던 파트너였다.  

한미는 비본질적인 것을 배척하고 본질에 천착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겉치레보다 알맹이를 요구하는 임성기 회장이 만들어낸 문화다. 한미의 시작점, 임성기약국을 할 때 임 회장은 전국 대부분 약사들이 입지 않았던 흰색 가운을 입었고, 약사 임성기가 새겨진 명찰을 달았다. 그것이 약사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1973년 한미약품을 세우고 나선 곧 바로 원료의약품 연구개발과 합성에 나섰다. 다른 회사들이 판매에 비중을 두던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연구개발 역량이 축적되자 특허 도전에 기반한 퍼스트 제네릭 기술수출에 도전했다. 1989년 로슈에 세파계 항생제 기술을 600만달러를 받고 팔았고, 1997년 면역억제제의 마이크로 에멀젼 제제기술을 노바티스에 6300만 달러를 받고 라이선스 아웃했다. 국내 경쟁 회사들과 180도 다른 방향성이었고, 이 방향성은 개량신약, 복합신약 등 자기제품 확보의 화수분이 되었다. 오늘 날 원외처방금액 1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임 회장의 두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판단하고 결정한 OCI그룹과 통합에 대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포함돼 있지 않는 또다른 대주주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막내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 형제는 3월 2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신들이 OCI그룹과 통합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제일 먼저 이번 통합을 통해 OCI그룹의 지주회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에 올라 지배구조의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경영권의 매각인 만큼 주주총회 특별 결의 사안에 해당, 반드시 이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음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임종윤, 임종훈 형제 측은 통합 과정에서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를 대상으로 단행하는 24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한 상황이다. OCI홀딩스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대규모의 한미사이언스 신주를 확보하게 되는데, 이 행위가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에 등극하는데 결정적인데도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 형제의 또다른 통합 반대 명분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주식(구주)을 OCI홀딩스에 처분(구주 매각과 현물 출자)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고 임성기 회장은 도전의식이 강했지만, 매우 현실적인 접근방법으로 실천했다. 대부분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을 외칠 때 한국적 현실에는 개량신약이 길이라고 외치며 중단없이 실행한 결과 오늘날 한미약품을 연구개발 제약회사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고 임성기 회장은 도전의식이 강했지만, 매우 현실적인 접근방법으로 실천했다. 대부분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을 외칠 때 한국적 현실에는 개량신약이 길이라고 외치며 중단없이 실행한 결과 오늘날 한미약품을 연구개발 제약회사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 다시 말해 이종기업 간 통합을 통한 전략적 제휴와 관련해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은 물론 한미약품 임직원, 한미 출신 OB들까지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겠다'는 경영진의 결단과 그동안 확립해온 한미 정체성이 딱 맞아 떨어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하다. "R&D를 신앙처럼 여긴다"고 말했던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의 철학과 그 철학으로 거둔 성과들, 그리고 이 같은 것들로 아로새겨 있는 '한미 DNA 지도'가 통합 이후에도 훼손되지 않을 수 있냐는 걱정들이다.

어떤 방향성이든 100%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의 관점과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향점이 일맥상통하는지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대로 임 회장은 본질을 추구하되 실용적 실천을 선호해 왔다. 많은 기업들이 신약개발을 구호처럼 주창할 때 낯설고 촌스러운 용어 개량신약을 외치며, 중단없이 실행한 끝에 성과를 이뤄 바이오 혁신개발 기술까지 수출하는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

 2016년 임성기 회장 연설  "스위스도 했는데... 제약강국 안될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제약, 신약 R&D에 최선을 다하고, 참 많은 약들을 개발했지만 여전히 우리 인체는 풀지 못한 비밀이 너무나 많다. 이제 남은 너희들이 더욱 R&D에 매진해 그 비밀들을 풀어 나가라. 더 좋은 약, 신약을 만들거라. 그것이 너희들의 숙제이자,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임성기 회장이 임종 전 손주들에게 남긴 말을 당시 함께 있었던 송영숙 회장이 메모한 내용)

"뭔가 그 어떤 혁신적인 치료제를 개발해서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고 싶어. 원래부터도 그런 마음으로 제약회사를 세웠잖아, 내가. 이러니 나한테나 한미약품에게 R&D는 신앙이나 다름없는 데... 제약회사 하는 사람들 마음이 다 자기 이름의 그 뭔가, 신약을 갖고 싶지 않겠어? 신약이 잘 되면 회사도 잘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을 줄 수 있고... 난, 말야, 한미약품이 500년, 1000년가는 장수기업이 됐으면 좋겠어.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질병 치료제를 내기 위해 중단없이 R&D를 하는 장수기업 말야." (2016년 어느 봄날 저녁 故 임성기 회장과 저녁 식사자리에서 기자가 들어 기사에 인용했던 내용).

위 두 문장에 스며 있는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철학은 임주현 사장이 2월 26일 언론 앞에 나서 발표한 OCI그룹과 통합 배경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상속세 문제를) 한미 최대주주 가족이 지분을 일부 매각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약개발이나 제약업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부족한 펀드에 지분을 파는 것보다는 OCI와 전략적 제휴가 'R&D 명가(名家)‘ 한미의 DNA를 지켜내고 성장시킬 최선의 길이며, 이를 통해 한미는 한국이라는 둥지를 벗어나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비상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통합은 임성기 선대 회장님의 한미 조직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새기며 내린 결정이다."

1973년 창립 이래 제약회사 본질에 충실면서도 창의적인 발상과 방식, 진득한 실천력으로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생태계를 자극하고 이끌어 온 한미그룹은 OCI와 기업간 통합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길리어드처럼 자체 신약개발이 활발한 글로벌 신약개발 빅파마가 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독감치료제 타미플루 기술을 로슈에 판권을 넘겨 크게 성장한 '글로벌 연구개발 기업 길리어드'가 되려면 경영권 문제로 이렇듯 역량을 분산시키고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이 눈물을 흘리도록 방치하는 것은 후배 경영인으로서나, 유족으로서나 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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