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시그널에 국내 vs 다국적사 공성전

비를 잔뜩 지고 오는 태풍은 재난일 수 있고, 단비일 수도 있다. '둑이 터져 저수지가 무너질까' 걱정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며 배 손질에 여념이 없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 지난 7일과 8일 연이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열린 두 개의 행사가 보여준 실루엣이다.

지난 8일 전북 전주에 위치한 그랜드힐스턴호텔에서는 한국보건행정학회 후기학술대회 병행세션 중 하나로 '해외약가 참조 및 활용의 한계'라는 주제로 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한 행사가 열렸다. 정부가 제시한 제1차 건강보험종합계획 내 보험의약품 정책방향은 국내외 제약사 모두에게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흡사 물을 가득 지고 올라오는 태풍과 같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이 중에서도 가시권에 들어온 '약제군별 약가수준 해외 비교와 정기적 조정' 사업을 이날 행사 꼭지로 잡았다.

수성전의 현장, 제약바이오협회 토론회
'고가 제네릭 탓'...깨뜨려야 할 프레임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날 행사에서는 해외약가참조(ERP)의 문제점에 대한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발제자인 이종혁 호서대제약공학과 교수는 "국가마다 보건의료환경, 경제수준, 약가구조가 상이한 탓에 합리적이고 타당한 (비교) 대표값 산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고, 패널토론자인 김기호 씨제이헬스케어 상무는 여기에 덧붙여 "(정부는 약가인하만 하고 싶겠지만) 만약 A라는 성분의 약이 국내에서는 100원인데 반해 해외에서는 1천원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것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ERP는 (약가를 깎기위한) 선택적이거나 편의적인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일 보건행정학회 병행세션으로 열린 제약바이오협회 주관 토론회 모습
지난 8일 보건행정학회 병행세션으로 열린 제약바이오협회 주관 토론회 모습

김성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의 우려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해외의 경우 주로 특허의약품의 상한을 설정하는데 보완적으로 활용되는 게 ERP다. 특허만료의약품에 적용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영진 복지부 보험약제과 서기관은 "어떻게 제도를 설정할 지 아직 검토하는 과정이어서 실무적으로 고민이 많다. 그래서 토론회 참석 요청받고 걱정 많았다. 제약계 우려 알고 있다. 발제와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서기관은 그러면서 "작년 보건행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당시 성대약대 교수였던 이의경 식약처장께서 OECD 국가와 약가 비교연구를 발표하면서 이런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때는 오히려 복지부나 보험당국은 그런 약가비교는 각 국가의 제도적 환경이 달라서 무의미하다고 답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정책상황이 변해서 이제는 그런 측면에서 해외약가 비교를 통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정부도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가천대 장수현 박사도 플로어 토론에서 말을 보탰다. 그는 "약가를 비교할만한 해외 '참값'을 알기 어렵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참값'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외약가 참조는 더 필요하다"고 했다. 장 박사는 심사평가원이 의뢰한 '외국약가 참조기준 개선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장선미 교수)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이의경 처장이 교수시절 발표했던 해외 약가비교 연구는 다국적 제약사 그룹에서 의뢰한 것이었고, 사실 관심 밖의 사안이어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지지나 공감을 표했던 적도 없었다. 편을 갈라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다국적 제약사 그룹이 던진 부메랑이 칼이 돼서 날아오게 생겼으니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어 보인다.

어쨌든 제약바이오협회의 이날 행사는 부메랑의 칼로부터 둑을 지키기 위한 수성전 또는 참호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저수지 아랫마을 사람들처럼. '제네릭 고가' 프레임에 맞서 해외약가비교의 '의미없음'을 과거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의 언어를 빌어 깨뜨리는 게 당면과제다.

앞서 하루 전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신약의 사회적 가치와 건강보험 재정 관리방안' 토론회는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과 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공동 주최했다. 해외 유명연자까지 초청한데다가 장소도 350석 규모 대강당을 빌려 시쳇말로 '세몰이'를 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세몰이' 현장
신약, 환자 생명연장-재정절감 모두 기여

해외연자인 프랭크 리텐버그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이날 기조발제를 통해 신약 출시가 국내 질병 수명연장과 입원일수 감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발표했다. 그는 2003~2012년 출시된 신약으로 인해 2005~2015년 국내 평균사망연령이 1년 이상 연장됐고, 1989~2003년 등재된 신약은 암 5년 상대생존율을 26.7% 상승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2004~2012년 국내에 신약이 등재되지 않았다면 의료이용일수가 30.7%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2017년에 대입하면 약 115억 달러의 재정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되며, 같은 해 해당 약제들에 지출한 약품비보다 6배 더 많은 액수라고 했다.

부지홍 아이큐비아 상무는 주발제에서 현 비급여 신약 추가 등재(27개), 최근 10년간 국내 미출시 신약 국내 출시 및 등재(158개), 현 기준에 비춰 국내 출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중인 신약 등재(54개) 등 3가지 가상의 시나리오을 대입해 건강보험 약품비 지출규모를 분석한 결과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증가율은 0.63% 수준이었다고 했다. 부 상무는 그러면서 약품비 지출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안했는데, 특히 사용량 적정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7일 이명수 의원과 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마련한 정책토론회 모습
지난 7일 이명수 의원과 글로벌의약산업협회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마련한 정책토론회 모습

주최 측은 두 발제자를 통해 국내 신약 조기 도입이 환자 생명연장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어필하면서 동시에 한정된 재정관리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투약되는 약제 사용량 관리 필요성까지 제시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사실상 제약사를 대신해 패널로 참석한 김성주 전문위원의 토론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 본사 1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약가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와 의료이용량이 많은 일부 환자의 청구데이터 샘플 분석결과를 언급했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 본사는 '한국의 약가는 임상적 가치보다 지불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우리나라 약가가 중국, 중동 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며 "이는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위해서는 약가가 어느정도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가 약가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만 투명성을 얘기하는 건 한계가 있다. 국내 환자를 위해 우리도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약가를 높이고 약물 사용량도 많으면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심평원 청구자료 샘플을 봤더니 1년 동안 300회 이상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주상병코드만 13개, 처방받은 약품목수만 30개가 넘는 환자도 있더라. 이중 중복되고 처방이 많은 게 소화제나 소염진통제 등과 같은 경증약물들이었다. 이제는 약가만큼이나 사용량 통제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했다.

KRPIA의 이날 행사는 이처럼 정부가 시그널로 제시한 '트레이트-오프'와 '중증질환 약제비 계정' 등에 힘을 얻어 준비된 것으로 보여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음인 것이다.

곽 과장의 복잡한 속내...결론은 '환자중심'

한편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7일 행사에서 복잡한 속내를 이야기하면서 또다른 시그널을 명확히 제시했다. 7~8일 행사를 관통할 수 있는 발언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곽 과장은 "다국적제약사는 신약에 적정가치를 인정해 달라고 하고, 국내 제약기업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이야기한다. 또 바이오의약품협회는 바이오의약품의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고 하고 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각각의 주장 모두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걸 모아 놓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난제"라고 했다.

곽 과장은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환자를 중심에 높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결과) 결론은 '신약 주머니'가 작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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