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교수 "정책에 참고하는 수준에서 활용해야"
김기호 상무·김성주 전문위원, 산업계와 소통 강조

8일 전주 그랜드힐스턴 호텔에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후기학술대회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병행세션으로 '해외 약가 참조 및 활용의 한계' 세미나가 개최됐다
8일 전주 그랜드힐스턴 호텔에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후기학술대회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병행세션으로 '해외 약가 참조 및 활용의 한계' 세미나가 개최됐다

[종합] 보건행정학회 '해외약가 참조·활용 한계' 세션

"ERP(외국약가 참조 가격제)에서 우리가 원하는 참값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가격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고, 말 그대로 참고 정도로만 활용해야 한다."

이종혁 호서대 교수
이종혁 호서대 교수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는 8일 전주 그랜드힐스턴 호텔에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후기학술대회 '해외약가 참조 및 활용의 한계' 세미나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2011년부터 5년간 건보공단 보험급여실 팀장으로 일하면서 약가협상 업무를 수행했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주최 병행세션으로 마련된 이날 세미나는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안)에 포함된 약제비 적정관리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외국약가를 이용해 약가를 깎는다'는 제약계 우려가 더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을 성토하는 장이 됐다. 

송영진 복지부 보험약제과 서기관은 "해외가 100원이고 우리나라가 1000원이면 100원 수준으로 깎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외와 우리나라 약가를 단순히 1:1로 보고 접근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약가가 해외와 비교했을 때 어느 수준인지는 지속적으로 비교·조정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없는 해외약가 참조 타당한가"

이날 발제는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와 손경복 이화여대 약대 교수가 맡았다. 이종혁 교수는 '해외 약가 참조 활용의 한계', 손경복 교수는 '한국 시장에서 후발의약품 진입과 경쟁' 주제로 발표했다.

이종혁 교수는 국가마다 보건의료환경·경제수준·약가구조가 상이한 탓에 합리적이며 타당한 대표값 산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만일 해외약가를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까지 확대 적용한다면, 신약 등재원리·다른 약가사후관리 제도와 조화 등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심사평가원 급여적정성 평가에서 신약은 A7(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 조정평균가 미만,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은 A7 조정가의 최저가로 평가된다. 건보공단 약가협상에서는 OECD 가입국 및 대만·싱가포르의 보험상환금액 또는 조정가·상대비교가격이 참조된다. 

이 교수는 "해외약가 참조를 사후관리까지 확대하면 왜 7개 국가(A7)만 해야 하느냐, 이들 국가 약가가 대표값이라 할 수 있느냐, 위험분담제(RSA)·리베이트 문제도 있는데 색인가가 과연 맞느냐, 환율 변동은 고려했느냐, 조정가 산출식이 과연 타당하느냐, 평균가·최저가·중간값 중 어떤 값을 대표값으로 사용하느냐 등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약가 사후관리제도는 크게 사용량·약가 연동협상, 실거래가 조사, 특허만료 가격 인하, 사용범위 확대 시 사전 인하 등 4가지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 교수는 "여기에 해외약가를 참조한 기등재 의약품 약가 재평가까지 추가되면, 현재 운영되는 약가 사후관리제도와 조화라든지 여러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손경복 이화여대 교수
손경복 이화여대 교수

손경복 교수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에서 허가받은 아토르바스타틴·로수바스타틴(복합제 포함) 약물을 중심으로 국내 스타틴 시장 동향을 살핀 결과, 제약사 규모가 작을수록 '레이트커머스(Latecomers, 후발자)'로 시장에 진입하는 경향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오더 엔트리(Order of Entry Effects)' 개념으로 보면, 외국은 먼저 진입한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잘 적용된다. 오더 엔트리가 잘 작동하는 나라의 후발의약품은 기등재된 의약품보다 더 높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 경쟁력은 바로 가격"이라며 "미국의 경우 두번째 제네릭 등장 시 77%, 세번째 제네릭 등장 시 60%로 약가가 낮아진다. 후발 의약품이 등장할수록 가격은 점점 더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한가격과 유사 수준에서 대부분 급여가격을 신청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의약품 가격 경쟁이 활발히 이뤄지려면 제네릭 시장이 좀 더 커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은데, 제네릭을 좀 더 활성화해서 제네릭 비중을 높여야 한다. 넓은 시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약사가 가격 혹은 다른 도구를 통해 좀 더 활발히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총액계약제 발판될 수도, 환경 파악이 우선"

패널토론은 배승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김성주 법무법인 광장 위원, 김기호 CJ헬스케어 상무, 송영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서기관이 참여했다.

김성주 위원
김성주 위원

김성주 법무법인 광장 위원은 ERP를 도입한 외국의 경우 특허의약품 상한가에 선을 긋는 식의 보조적 사용이 많으며, 특허만료의약품 적용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제도 시행에 앞서 대상국가·대표값 선정, 인종간 특수성 등 여러 고민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허만료의약품이 포함된 약제군에 ERP 사용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최근 연구를 보면 유럽 등 선진국에서 ERP 사용은 '보조적 용도'로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특허의약품 상한가에 선을 긋는 식의 사용이 많으며, 특허만료의약품에서는 사용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ERP 사용이 특허의약품 또는 특허만료의약품만인지, 두 부문 다 가능한지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했다.

또 외국 학계는 ERP 사용이 특허의약품에 좀 더 적절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특허의약품은 사실상 독점 시장인 탓에 약가통제 도구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ERP를 사용하면 약가 통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대로 특허만료의약품은 시장 경쟁에 의해 약가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며 여러 약가 규제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외국은 특허의약품에 대한 ERP 사용을 좀 더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현 ERP 이슈는 대상국가·대표값(평균가·최저가·중간값 등) 선정, 국가별 사회문화 환경·환율 변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성주 위원은 "우리나라가 참조하는 대상국가들 문헌을 보면, 한국의 대상국가는 적절하게 선정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가별 경제 수준·보건의료시스템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약가를 쓰는지도 문제가 된다. 우리는 조정가를 쓰는데, 이 조정가에 대한 업계 불만이 크다. 조정가 이슈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약가를 이용해 약가를 깎겠다는 정책에는 상당히 많은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약가가 인종간 특수성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도 많다고 했다. 일례로 다발성 경화증은 우리나라는 희귀질환이지만, 다른 나라는 만성질환에 가깝다. 그는 "희귀질환과 만성질환 약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외국약가를 가져와서 비교한다면 상당히 많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ERP는 제약계가 우려하는 약제비 총액계약제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ERP로 약가 재평가를 시행하면 제약업계가 상당히 반발할텐데, 그 타협점으로 우리가 도출한 약가까지만 급여를 하고 약가인하를 하지 않겠다고 얘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참조가격제가 바로 되므로 총액계약제로 넘어가는 발판이 된다. 이런 제도 변화가 어떤 큰 그림의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김기호 상무(왼쪽)와 송영진 서기관
김기호 상무(왼쪽)와 송영진 서기관

김기호 CJ헬스케어 전략지원실 상무는 외국약가 참조가격을 있는 그대로 비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원화 환산 방식은 적절한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약가는 단순히 표시된 가격만이 전부가 아닌, 그 나라 보건의료제도와 의약품 급여 구조·유통체계 등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수치라는 것이다. 

그는 환경적 요소에 대한 파악이 안 되면, 약가가 왜곡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A라는 약이 어떤 나라에서는 잘 팔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 팔린다면, 잘 팔리는 가격과 단순 비교해 국내 약가가 높다고 내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필수 약제 등 해외약가 기준으로 약가를 산정받은 사례도 ERP에서 고민할 부분이라고 했다. 

김기호 상무는 "해외약가가 참조가 아닌 재산정 기준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며 "만일 A라는 약이 우리나라에서는 1000원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100원이라면 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100원인 약이 해외에서 1000원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이런 고민이 종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ERP는 선택적·편의적인 수치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송영진 복지부 보험약제과 서기관은 기등재약 약가 재산정 시 해외가격을 참조하는 정책은 단순 1:1 비교만을 위한 게 아닌,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과 신약 접근성 강화간 조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건강보험 재정과 신약 접근성 강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효율적인 지출 관리를 위해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주지하는 약제비 적정관리 방안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부 방향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신약 접근 가능성 간 조화다. 돈이 무한정 있다면 상관 없지만, 재정은 한정돼 있다. 해외 자료와 단순 비교해보면, OECD 약제비 증가율은 0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절대금액이 매년 1조원씩 늘어난다. 재정 통제를 강화하고 지출 합리성을 높이라는 주문이 많다"며 "방법론은 더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약가가 해외와 비교했을 때 어느 수준인지는 지속적으로 비교·조정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약가수준이 얼마인지 해외와 계속 비교하는건 (제네릭) 경쟁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참값 도출은 사실상 불가능…참고만 해야"

패널토의 이후 청중 질의가 이어졌다.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이 아닌만큼 그 특수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는 오리지널로 인해 제네릭 시장이 붕괴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므로 여차하면 의약품이 군수물자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총체적인 배경까지 전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심사평가원이 발주한 '외국약가 참조기준 개선방안 연구'에 참여했던 가천대 약대 관계자는 "나라마다 보건의료 특성이 다르고 산업·배경도 다 달라서 참값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외약가 참조는 더 필요하다. 앞선 연구에서는 해외약가를 절대적 기준이 아닌 약가산정 기준 중 하나로 고려했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잘 도출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앞서 발제한 이종혁 교수는 "현재 4개의 약가 사후관리제도 기전이 작동하고 있다. 4개를 전부 적용받는 약도 있고, 1개 기전을 여러번 적용받는 경우도 있다. 이 기전들은 매우 난해해 업계 관계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 가격이 왜 인하됐는지 알기도 힘들다. 여기에 해외약가를 참조해 기등재 의약품을 재평가하는 기전이 들어간다면 이 제도는 정말 너무 어려워진다. 그런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했다. 

해외약가를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에 반영할 경우 우리가 원하는 참값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대표값을 찾아 도입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참고가격으로만 봐야 한다. 그 가격 그대로 우리나라 약가에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산정할 방법을 고려하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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