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L/O 비즈니스 모델, 일시적 전략… L/O 넘어선 성장 필요
신약 개발은 '마라톤 게임'… R&D 연구원에 자율성 부여해야
오리온그룹의 '진정성'이 레고켐바이오의 경영진 마음 움직여

 '글로벌 빅파마' 꿈꾸는 레고켐바이오, 왜 오리온과 손잡았나 

오리온그룹이 15일 55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로 글로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하기로 하면서 최대주주에 등극할 전망이다. 국내 바이오 벤처의 신약 연구개발(R&D) 역사를 써내려 온 레고켐바이오가 오리온그룹에 매각되는 셈이다. <히트뉴스>는 레고켐바이오 공동창업자 인터뷰 및 업계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오리온그룹과 레고켐바이오의 '빅딜(Big deal)'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① 오리온과 빅딜에 관한 박세진 사장 브리핑
② 오리온과 빅딜에 관한 김용주 대표의 속내
③ 오리온·레고켐 빅딜 체결에 대한 업계 반응

김용주 대표(오른쪽)와 박세진 사장.
김용주 대표(오른쪽)와 박세진 사장.

"라이선스 아웃(L/O)한 돈으로 어느 세월에 자체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을까요? 임상 (파이프라인) 하나당 1000억원이 투입됩니다. L/O로 1억달러, 2억달러를 받아도 신약 개발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공격적인 신약 개발에 나서야 합니다. 그들(오리온그룹)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에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양사 간 딜 체결이 이뤄졌습니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16일 <히트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이 같은 속마음을 털어놨다. 레고켐바이오가 제과사업을 영위하는 오리온그룹과 손잡은 이유는 명확하다. 오리온에서 탄탄한 자금 지원 및 자율 경영을 보장해 김 대표가 간절히 원하는 공격적인 신약 개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실 3년 전부터 신약 개발 파트너를 찾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오리온 관계자와 접촉 전 여러 기업들을 만났지만,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해 다 어그러졌다"며 "신약 개발은 정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마라톤 게임'이다. 가장 중요한 건 (R&D) 자율성이다. 연구원들에게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으면 신약 개발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진정성을 갖고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어야 신약 개발에 도전할 수 있다. 신약 개발 업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며 "신약 개발의 경쟁력은 올바른 사이언스(과학)와 탄탄한 자본(자금)에 달려있다. 최소 (시가총액) 20조~3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해야 내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대표는 바이오 벤처의 L/O는 기업 운영에 있어 일시적인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예를 들어 선급금(Upfront)이 1000억원 규모의 L/O는 일시적인 전략일 뿐이다. L/O가 (기업 운영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면서도 "다만, 레고켐바이오도 L/O를 하겠지만, 앞으로 단기적인 차원의 L/O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고켐바이오 본사 1층에는 '오직 신약만이 살 길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사진=남대열 기자

"바이오 벤처가 신약 개발에 도전했다면 글로벌 빅파마로의 도약이 지향점이 돼야 합니다. 젠맙(Genmab), 리제네론(Regeneron)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작은 바이오텍에서 시작해 '빅가이(Big guy)'가 됐습니다. 신약 개발의 속성상 빅가이가 되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시가총액) 1조~2조원 규모의 바이오 기업은 신약 개발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다면 회사 경영이 쉽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바이오 벤처의 숙명이 '신약 개발로 빅파마로 도약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보면서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단연 '항체약물접합체(ADC)'가 화두였다"며 "ADC는 이제 선택의 이슈가 아닌, (기업들이) ADC 파이프라인을 보유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레고켐바이오는 3년 전부터 공격적인 신약 개발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며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ADC 파이프라인은 20개다. (이번 딜로) 'VISION 2030'의 조기 달성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오리온과 레고켐바이오의 빅딜에서 주목할 만한 점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기는 것보다는 회사에 단 몇 퍼센트라도 프리미엄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회사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이번 딜 과정에서 레고켐바이오의 창업주 지분은 시가에 파는 대신, 신주는 약 5% 비싸게 발행돼 회사가 더 높은 가치로 자본(투자금) 확충에 나설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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