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천연물서 신약개발 시도... 소소한 성과 그쳐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6]  신약 (2) 

신약이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약을 말한다. '약사법'에서 "화학구조나 본질 조성이 전혀 새로운 신물질의약품 또는 신물질을 유효성분으로 함유한 복합제제 의약품으로써 식약처장이 지정하는 의약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식약처는 한 번도 허가되지 않았던 유효성분을 함유한 의약품을 신약으로 허가한다.

2006년 우리나라 제약회사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paclitaxel 경구용 액제를 개발하였지만, 신약이 아니라 자료제출의약품으로 심사된 다음 개량신약으로 허가되었다. 1996년 paclitaxel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주사제가 이미 허가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 여부는 의약품에 함유된 유효성분의 기허가 여부로 결정된다. 

1940년경부터 2014년 말까지 신약으로 허가받은 소분자 항암제는 총 175개 품목이었다. 이 중 75%인 131개 품목은 천연물에서 분리된 유효성분이나 천연물에서 분리된 성분의 구조를 변경한 유도체를 함유한 의약품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의약품은 대부분 동식물에서 유래하였다. 1

2000년 우리나라도 '천연물 신약 개발 연구 촉진법'을 제정하였다. 외국에 비교하여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전통의약지식을 활용하면 한약재로부터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서 '주후비급방'에서 길을 찾아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성분 artemisinin을 분리한 것이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천연물에서 뚜렷한 약효의 새로운 성분을 찾지 못하였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의 확률을 뛰어넘지 못했거나 한약서인 '동의보감', '방약합편', '동의수세보원' 등에서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약전' 등 의약품 공정서 2 에 등록된 생약의 추출물에서 효과를 찾아 의약품으로 개발하였다. 2002년 황해쑥의 추출물을 이용하여 위염치료제인 '스티렌'이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되었다. 그 후 '조인스' 등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신약 개발 방식이 변화하고 있을 때였다. 인체 내부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1914년 테오도어 보베리(Teodor Boveri)는 암의 원인이 염색체의 이상에서 발생한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1960년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피터 노웰(Peter Nowell)과 데이비드 헝거포드(David Hungerford)는 만성골수성백혈병(CML 3 ) 환자에서 일반인보다 작은 염색체를 발견하였다. 보베리의 가설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 염색체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로 명명되었다.

1973년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일반인의 염색체보다 작은 이유가 밝혀졌다. 시카고 대학의 재닛 로울리(Janet D. Rowley)는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의 끝부분 유전자가 서로 자리를 바꾸어 22번 염색체의 크기가 작아졌다고 발표하였다.

두 개 염색체의 말단에서 떨어져 나간 유전자의 크기가 같다면 22번 염색체의 크기는 작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9번 염색체에서 떨어진 유전자의 크기가 22번 염색체에서 떨어진 것보다 작았고, 이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니 22번 염색체가 작아진 것이다. 

또한 22번 염색체의 유전자가 떨어져 나간 부분에 9번 염색체의 일부가 붙으면서 융합된 유전자(Bcr 4 -Abl 5 )가 생겼다. 돌연변이 유전자의 탄생이다. 

1990년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 등은 22번 염색체에 생긴 Bcr-Abl 융합 유전자를 CML의 원인으로 추정하였다. 6 그리고 이 유전자를 쥐에 주입하여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이 유도되는 것을 확인하고, Bcr-Abl 융합 유전자가 생성하는 단백질인 티로신 키나제가 CML 발병의 원인이라고 확정하였다. 티로신 키나제는 세포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효소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7

정상인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Abl 단백질 티로신 키나제는 백혈구 생산을 제어하지만, 새롭게 생긴 Bcr-Abl 융합 유전자에 의하여 생성되는 티로신 키나제는 백혈구의 생산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CML 환자에서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25배까지 높게 나타나는 원인이 새롭게 나타난 Bcr-Abl 융합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8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분자 수준의 비밀지도였다. Bcr-Abl 융합 유전자에 의하여 생성되는 티로신 키나제를 억제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찾는다면 CML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 

Bcr-Abl 융합 유전자에 의하여 생성되는 티로신 키나제에는 아데노신 삼인산(ATP, Adenosine triphosphate)이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이 주머니에 ATP가 들어가면 ATP에 있던 인산기가 떨어져 나가면서 신호가 되어 백혈구가 생성된다. 그러나 Bcr-Abl 효소의 주머니에 ATP 대신 다른 화합물을 집어넣으면 신호 전달이 일어나지 않아 백혈구 생성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1996년 브라이언 드러커(Brian J. Druker)는 백혈구 생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찾았다. 정상인의 Abl 단백질 티로신 키나제를 억제하는 몇 가지 후보물질 중에서 CML 환자의 Bcr-Abl 단백질인 티로신 키나제를 억제하는 약물을 발견하였다. 9 신호전달억제 물질을 찾은 것이다. ATP와 구조가 유사한 imatinib이라는 물질이었다.

이 약물의 임상시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1998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83명이 참여한 임상시험 1상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imatinib 300mg 이상으로 4주 투여한 54명의 환자 중 53명에서 백혈구 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약성이 우수할 뿐 아니라 반응률이 100%였다. 일반적으로 임상시험 1상에서 반응률이 20%인 점에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특히 29명의 환자에게서는 필라델피아 암세포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7명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10

임상시험 2상에서 532명 환자를 대상으로 하루 imatinib 400mg을 18개월 동안 투여한 결과 89%에서 더 이상 병세가 심해지지 않았으며, 생존율은 95%를 기록하였다. 표준치료법인 인터페론을 사용한 대조군에서의 생존율 73.6%에 비하여 높은 수치였다. 11

2001년 FDA는 불과 2개월 반의 심사를 거쳐 imatinib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의약품 '글리벡'을 신약으로 허가하였다. 같은 해 식약처에서도 '글리벡'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고, 3상 임상시험 조건부로 허가하였다. 

'글리벡'의 시판으로 CML 환자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화학요법 치료받은 환자의 5년 후 생존율은 50% 미만이었지만, '글리벡' 투여 환자는 5년 후에도 95% 이상이 건강하게 생존하였다. 

지금까지 새로운 약효의 성분은 대부분 동식물에서 찾았다. 기원전 210년경 중국의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떠난 후 대부분의 의약품은 민간에서 전승된 약초 등을 이용하여 개발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자연이 아니라 인체의 세포에서 신약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참고문헌 

1. David J. Newman and Gordon M. Cragg, Natural Products as Sources of New Drugs over the Nearly Four Decades from 01/1981 to 09/2019, J. Nat. Prod. 2020, 83, 3, 770–803
2. 식약처에서 고시한 의약품의 규격을 모아 책자로 형태로 만든 것 (공정서, 의허등연구소, 2021.12.22 접속, http://drug.co.kr/drug/1319)
3. CML chronic myeloid leukemia
4. Breakpoint Clustered Region 22번 염색체에서 절단이 일어나는 부분
5. v-Abl은 Abelson 쥐의 백혈병 바이러스에서 분리된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와 거의 비슷한 원암 유전자가 인간의 9번 염색체에 있다는 것이 1982년 확인되었다. (남궁석, 암정복 연대기, 다돌 책방 2019.11.15, 46p)
6. G Q Daley, R A Van Etten, D Baltimore, Induction of chronic myelogenous leukemia in mice by the P210bcr/abl gene of the Philadelphia chromosome, Science, 1990 Feb 16;247(4944):824-30. 
7. 다니엘 바젤라, 마법의 탄환, 이충호 역, (서울: 북하우스 퍼블리셔스, 2016), 55p
8. Leslie A. Pray, Gleevec: the Breakthrough in Cancer Treatment, Nature Education 1(1):37, 2008 
9. Brian J. Druker, Effects of a selective inhibitor of the Abl tyrosine kinase on the growth of Bcr–Abl positive cells, Nature Medicine volume 2, pages 561–566 (1996)
10. Leslie A. Pray, Gleevec: the Breakthrough in Cancer Treatment,  Nature Education 1(1):37
11. 남궁석, 암정복 연대기, 다돌 책방 2019.11.15, 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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