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항암제 규제 개혁 이후 가속승인경로 밟아 허가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9]  FDA의 신속허가심사 제도(2) 

1962년 Kefauver Harris 수정법이 통과된 후 FDA에서 신약의 허가 건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연평균 46.2건에서 이후 10년간의 연평균 15.7건으로 감소되었다. 약 ⅓ 정도로 줄어든 셈이었다. 대신 신약의 임상시험 및 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그만큼 늘어났다.  

1962년 이후 신약이 허가되는데 연평균 8.1년 정도 소요되었다. 파클리탁셀 주사제의 경우 임상시험이 시작된 후 10년이 지나서 난소암 치료제로 허가되었다. 그러나 1992년 우선심사제도가 도입된 후 연평균 7.5년으로 줄었다는 연구가 있다. 약 6개월 정도의 단축이었다.  

제약업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FDA 심사관들의 헌신이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AIDS 환자나 암환자에게는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우선심사제도가 도입되기 이전 이미 AIDS 치료제인 AZT의 경우 20개월 만에 허가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암환자의 입장은 약간 달랐다. AIDS 치료제인 AZT, DDI가 허가될 때부터 궁금증을 가졌다. 암도 AIDS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AIDS 치료제만 빠르게 허가되는지 의문을 품었다. 항암제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1992년 10월 우선심사제도(Priority Review)가 도입되고 2개월이 지나서 FDA는 가속승인프로그램(Accelerated Approval Program)을 고시하였다. 소아용 AZT와 DDI의 허가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암환자 단체를 의식해서 FDA는 항암제도 이 규정에 따라 더욱 신속하게 허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심사제도는 신약허가신청서(NDA/BLA)의 접수 후 심사 기간의 단축이 목적이라면, 가속승인프로그램은 임상시험 기간의 단축이 목적이었다. 임상시험을 가속화하는 방법은 완료 지점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장기간 관찰하여야 확인할 수 있는 임상변수 대신 단기간에 측정되는 대리변수에 근거하여 조건부로 허가하고자 하였다. 

임상시험의 가속화는 AZT의 임상시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제1상 임상시험에서 모든 환자의 CD4 수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더욱이 제2상 임상시험에서 사망률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AZT를 복용한 시험군의 사망환자의 수가 대조군에 비하여 현저히 적었다. 또한 시험군 환자의 CD4 수치는 증가하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연구할 때 가장 분명하고 유용한 임상변수는 사망까지의 시간이다. 하지만 AIDS 치료제의 경우 임상변수를 비교할 필요 없이 대리변수인 CD4 수치로 사망률을 예상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1990년 3월 소아용 AZT는 대리변수인 CD4 수치에 근거하여 최초로 가속 승인하였고, 1991년 10월 DDI 역시 가속승인경로를 밟아 허가하였다. 그리고 1992년 12월 12일 가속승인프로그램을 21 CFR Subpart H에 고시하였다.

Subpart H는 1988년 고시한 Subpart E와 어느 정도 중복되었다. 다만, Subpart H에서는 FDA의 재량권으로 대리변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또는 중대한 질환의 치료를 의도하는 신약의 허가를 지원하기 위하여 입증되지 않은 대리변수를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또한 시판 후 임상시험을 통하여 대리변수와 임상변수의 상관성을 입증하도록 의무화 하였다. Subpart E에서는 FDA의 재량권으로 시판 후 임상시험을 요구하였지만, Subpart H에서는 이를 강제화한 것이다. 

물론 모든 의약품이 이 규정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음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약물의 경우 가속 승인될 수 있었다. 

첫째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또는 중대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안전성 및 유효성이 연구된 신약이다. 적절한 치료가 수반되지 않는 경우 생존에 위협을 주는 질환 또는 일상적 기능 수행에 영향을 주는 질환의 치료를 위하여 설계된 신약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질환은 AIDS, 암, 신부전 등뿐 아니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염증성 장 질환, 당뇨병, 천식 등의 만성질환도 포함된다. 

둘째는 기존의 치료법으로 소용이 닿지 않는 질환에 치료적 유익성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신약이다. 의학적 미충족 요구를 해결할 것으로 예측되는 신약을 말한다. 기존의 약물에 반응하지 않거나, 불내성의 환자에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예견되는 신약도 해당된다.  

셋째는 대리변수와의 관련이다. 임상효과를 예측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대리변수를 제시하여야 하고, 그 대리변수에 효과를 나타내는 신약이다. 

넷째는 시판 후에도 임상연구를 계속 수행하여 임상적 유익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가속승인프로그램이 고시되고 5년이 지난 후인 1996년까지 가속승인된 항암제는 단 1건에 불과하였다. 1994년 대리변수 TTP 에 근거하여 허가된 전립선암 치료제 bicalutamide가 유일하였다. 이에 비하여 AIDS 치료제는 가속승인경로를 밟아 11건이나 허가되었다. 

항암제는 가속승인프로그램이 거의 적용되고 있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1995년 PhRMA의 연례 조사에서도 항암제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해 동안 제약회사의 항암제 개발 건수는 AIDS 치료제에 비하여 2배였지만, FDA의 항암제 심사부서의 정규직은 항바이러스 심사부서의 ½에 불과하였다. 

1995년 한 해 동안 제약회사에서 개발 중인 항암제는 215건이었고, AIDS 치료제는 110건이었다. 그러나 FDA의 항암제 심사부서의 정규직이 42명이었고, 항바이러스 심사부서의 정규직은 91명이었다. 

암환자들은 FDA가 PDUFA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암환자들은 왜 AIDS 치료제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하소연하였다. 공화당 의원들도 의약품의 승인 절차와 기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항암제도 Subpart H의 규정에 따라 가속승인할 수 있었지만, FDA는 암환자의 치료를 예측할 수 있는 대리변수의 사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리변수의 적절성에 대한 종양 전문가들의 의견 불일치로 FDA는 항암제의 허가를 주저하고 있었다.

1996년 2월 21일 FDCA 개정을 위한 청문회에서 Ellen Stovall의 진술을 살펴보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의약품의 가속승인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항암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FDA의 재량권은 AIDS 치료제 허가에만 집중되었다. 암환자 단체는 시정을 요구했지만, FDA는 만족할 만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 암환자의 목소리가 AIDS 환자보다 작았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암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 법제화 없이 FDA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암제의 신속 허가를 입법하여 강제화할 필요가 있다. 

항암제도 유익성/위해성을 분석해야 하고, 질환의 심각성에 따라 유익성/위해성의 비율을 달리하여 허가하여야 한다. 또한 암환자도 약물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1996년 3월 29일 클린턴 대통령은 항암제에 대한 규제 개혁(Reinventing the Regulation of Cancer Drugs)을 발표하면서 항암제의 빠른 허가를 명령하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인 Donna E. Shalala는 즉시 개혁을 시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FDA는 새로운 접근방식은 이전만큼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어려울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약간의 위험성을 감수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지금까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암환자의 생존 연장, 삶의 질 향상 등의 임상변수를 기반으로 허가해 왔지만, 이제는 짧은 시간에 관찰되는 종양 반응률(종양크기감소)라는 대리변수의 사용으로 인해 약물의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절한 치료 대안이 없거나 난치성 악성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의 경우 치료효과가 독성을 능가할 것으로 판단되면 대리변수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시판 후 확증적 임상시험을 의무화하여 임상적 유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허가를 철회하거나 의약품 표시사항이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1996년 항암제에 대한 규제 개혁 이후 항암제는 가속승인경로를 밟아 허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항암제의 허가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가속 승인된 의약품 중 항암제의 비율은 AIDS 치료제와 대등할 정도였다. AIDS 치료제가 39.7%이고 항암제가 35.6%로 약 2%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2010년에서 2020년까지의 통계 수치를 보면 놀랍다. 가속 승인된 의약품의 85%가 항암제였다. 물론 1990년대 중반 HAART 요법의 등장으로 HIV 감염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가능하게 된 것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계속]

★ 용어와 약자의 상세 설명은 http://www.drug.co.kr에서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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