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1972년 21만4000종 화합물로
항말라리아 작용을 보이는 성분을 검색

중국은 '주후비급방'으로 개똥쑥서 비밀 풀어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5]  신약 (1) 

인류의 역사는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최종 목적지는 한 번의 스캔으로 만병이 치료되는 영화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힐링 머신이겠지만, 기원전 210년경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동방으로 떠난 것이 기록된 최초의 시도이다. 

서복이 장생불사의 약을 찾아 진나라의 진황도를 떠난 후 400년이 지난 한나라 말인 220년쯤 장준경은 '상한잡병론'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생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이용하여 감기와 감기의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는 지침서였다. 

초기 감기에는 갈근탕을 처방하도록 기록되어 있다. 초기 감기 중 목과 등이 뻣뻣하고 땀이 나지 않으면서 바람을 쐬면 오슬오슬 추운 증세에는 칡뿌리(갈근) 등 7가지 약재로 구성된 약제의 투약을 주문한다. 

당시에는 감기도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었다. 감기에 걸려 오한이 들면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데우고,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의복이나 주거시설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열이 심하게 나면서 기침까지 겹치면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갈근탕을 복용하면 발열을 막아 쉽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존의 약물이나 치료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갈근탕처럼 해열의 원리를 파악하여 개발된 약은 아니었다. 땀을 흘리게 하여 체온의 상승을 막는 새로운 기전의 신약이 개발된 것이다. 

1997년 KBS 스페셜에서 "생물자원시대, 종이 유출되고 있다"라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5년 동안 미국의 Barry R. Yinger를 비롯한 수목원 관계자가 3차례에 걸쳐 한반도 전역의 희귀한 식물을 채취해 갔다는 이야기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을 채취한 이유로 품종의 개량을 통한 상업화로 설명했다. 우리나라 재래종이 1901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으로 유출되어 오늘날 콩 산업의 근간이 되었고, 미국의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미스킴 라일락은 북한이 원산인 정향나무라는 사례를 들었다. 그뿐 아니라 마지막 부분에 아시아 식물 전문가인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같은 종이라 하여도 한국산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 자생식물보다 언제나 예쁘고 훨씬 강하다."

하지만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항암제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식물 채취가 단순히 품종의 개량의 목적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약 개발의 목적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에서 1982년까지 약 23년간 NCI는 항암제를 개발하고자 농무부(USDA) 의 도움으로 온대지역에 자생하는 약 1만2000종의 식물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1986년부터는 식물 채집을 열대 및 아열대 지역까지 확대하여 항암제는 물론이고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치료제 개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제주도를 찾은 것이 사실이라면 약 2000년이 지나서 미국의 Barry R. Yinger 일행이 다시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구체적인 목적을 안고 왔다는 점이다. 불로초가 아니라 항암 성분이 함유된 식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NCI는 상당히 체계적인 분업 시스템으로 신약 개발을 시도하였다. 항암성분을 찾고자 전 세계에 자생하는 식물을 대대적으로 수집하였다. 기원이 확인되는 식물은 잎, 뿌리, 껍질 등으로 나누어 식물의 조직에 함유된 성분을 추출하였다. 

온대지역에서 채집한 약 1만2000종의 식물을 부위별로 추출하여 약 3만5000종의 엑스를 보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새로운 약효 검색법이 개발되면 보관 중인 엑스를 분양하여 약효를 검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paclitaxel 등 세 가지 항암성분을 발견하였다. 

태평양 주목나무(Taxus brevifolia)에서 분리한 paclitaxel은 1993년 난소암 치료제로, 희수나무(Camptotheca acuminata)에서 분리한 camptothecin의 유도체인 topotecan,  irinotecan은 1996년 전이성 난소암과 전이성 직장 결장암 치료제로,  개비자나무(Cephalotaxus harringtonia)에서 분리한 homoharringtonine은 2012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FDA에서 허가되었다.

성공률은 낮았다. 식물의 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확률은 1/4000이었다.  식물의 부위별 엑스를  기준으로는 1/1만1700에 불과하였다. 이 수치를 보고 신약 개발의 성공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에 비하면 2015년 개똥쑥(Artemisia annua)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artemisinin을 찾아 노벨  생리상을 수상한 중국의 Youyou Tu는 조금 달랐다. 1969년 처음 100여 개 이상의 식물 추출물을 대상으로 검색하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AD 400년경에 발간된 중국의 고서 "주후비급방"을 꼼꼼하게 읽고는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식물 개똥쑥을 1971년 발견하였다.

"청호 한 줌을 두 되 분량의 물에 담근 후 짜서 즙을 내어 그것을 모두 먹는다"라는 문구에서 길을 찾았다. 개똥쑥을 말리지 않은 채 저온에서 에테르(Ether)로 추출한 엑스에서 항말라리아 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1972년 8월과 10월 사이 하이난에서 21명의 말라리아 환자를 대상으로 추출물을 투여하여 전원 완치되는 놀라운 결과를 관찰하였다. 임상시험이 끝난 11월에는 추출물에서 항말라리아 작용의 원인 물질인 artemisinin을 분리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는 중국 정부로부터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안전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국제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의 기준이 탈리도마이드 사건으로 한층 엄격해졌기 때문이었다. 비임상시험을 포함한 새로운 연구가 추가 수행되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 중 호치민의 부탁을 받은 중국은 1969년 천연물에서 항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시작하였고, 미국 역시 1960년에서 1972년까지 약 21만4000종의 화합물에 대하여 항말라리아 작용을 보이는 성분을 검색하였다.  중국은 개발에 성공하였지만, 미국은 실패하였다. 신약 개발에 "주후비급방"과 같은 비밀 지도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갈근탕의 처방은 갈근, 생강, 대추, 마황, 계지, 작약, 감초로 구성된다. 
2. 미국 농무부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3. G M Cragg 등, Ethnobotany and drug discovery: the experience of the US National Cancer Institute, Ciba Found Symp, 1994;185:178-90
4. 김규원 등, 과학의 발전과 항암제의 역사, 범문에듀케이션, 2015.03.06, 195-198p
5. Gordon M. Cragg, Bioprospecting for drugs, Nature  volume 393, page 301 (1998) https://www.nature.com/articles/30586
6. Tu Youyou Biographical, The Nobel Prize, 2021.11.10 
접속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5/tu/biograph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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