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회사, 함께 멀리 가는 지혜 마련해야

드넓은 바다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멸치를 두고 "내가 먼저 찜한 거"라고 주장하는 일이 어이없듯 2017년 10월 본격 시작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 특허보호 대상도 되지 않는 보툴리눔 균주 전쟁 역시 일반 관객의 눈에는 참으로 허허롭다. 과거 국내 제약사들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들어 3세대 항생제와 B형간염 백신을 멸치 100마리 값도 못되게 만들었던 '뼈 때리는 사례'마저 떠올리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내서 촉발된 균주 소송은 바다건너 미국으로 넘어가 소송을 벌이다가, 급기야 국제무역위원회(ITC) 재판부까지 이르렀다. 메디톡스와 엘러간이 함께 대웅제약을 제소한 때문이다. 도용 논쟁, 장물 논쟁, 포자형성 논쟁까지 구비구비 사연도 만만치 않아 일반인들은 뭐가 뭔지 모를 상황이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미국 변호사들에게 매달 수십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쓰고 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권 전쟁처럼 기업 간 사생결단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남의 나라 미국에서 국내기업끼리 서로 흠집내며 다투는 모양새는 민망하다.

대웅제약은 세계서 제일 큰 시장(4조5000억 추정, 세계 시장의 50% 비중)이나, 엘러간이라는 절대강자가 사자처럼 영역을 지키는 미국시장에 자사 브랜드 나보타(미국 브랜드명 주노)로 올해 2월 FDA 승인을 받아 진출했다. 이는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계에게 글로벌 진출에 관한 희망과 영감을 줬을 뿐 아니라, 미국 보톨리눔 톡신 제제 소비자들에게도 엘러간 경쟁자 출현으로 더 많은 옵션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엘러간 연대의 협공으로 마음껏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랜 다툼의 여파일까.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장의 최강자인 메디톡스의 행보도 편치는 않다. 품질 이슈에 휘말려 브랜드 이미지에 적잖은 손상을 받았다. 공익제보자 신고로 식약처가 품질검사를 한 끝에 메디톡신100유닛의 유효기간을 종전 36개월에서 24개월로 1년을 줄이도록 조치했다. 이 품질 관련 이슈는 제약바이오기업의 신뢰를 크게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또 수출용 제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한 차례 뒷걸음질 친 중국시장 진출에 간접적이나마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엘러간과 손잡은 메디톡스가 미국시장에서 대웅제약을 좌초시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2013년 보툴리눔 액상제 개발 기술이전 계약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메디톡스는 당시 엘러간에게서 업프런트 계약금 6500만 달러를 비롯해 미국 BLA 승인 등 허가 진척에 따른 마일스톤과 판매 실적에 따라 최대 3억62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메디톡스에게 남은 시장은 한국시장과 공동 권한을 갖는 일본 시장 뿐이어서 확장성이 무한대는 아니다. 기술 도입 후 5년간 잠잠했던 엘러간은 최근 임상 3상시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균주 논쟁은 엘러간을 움직이기 위한 메디톡스의 계산된 빅픽쳐 였을까?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어떻게 철천지 원수가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눈 높이에서 말하면 연구개발 과정에서 국민 세금을 쓴 두 기업이 '국가 핵심기술'을 ITC 앞에 풀어 놓고 다투는 모습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두 기업이 가야할 곳은 ITC가 아니라, 글로벌 곳곳의 시장이며 이곳에서 공정한 경쟁이다. 이렇게 싸우는 모습은 아니다. 두 기업의 경영진들은 온열동물의 감정을 내려놓고, 냉혈동물의 계산으로 타협하고 협상을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일까. 너도, 나도 함께 사는 해법 말이다. 2020년에도 지리한 다툼을 본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갑갑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