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김용주의 열정(熱情)과 초코파이 정(情)이 만났을 때

5월의 어느 저녁 식사 모임에서 그와 와인 한 두잔을 기울이며 제약바이오생태계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또 보자"며 돌아섰다. 돌아서는 내게 "히트뉴스가 생태계에서 좋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은 형벌로 천구(天球)를 떠 받치고 있는 그리스신화 아틀라스(Atlas, Ἄτλας)처럼 온 몸에 저릿한 무게감을 안겼다. 그를 보고선 문득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던 여름 들판의 한 켠에서 자신들만의 사명감에 충실했던 소똥구리가 생각났다. '바이오코리아 2022'가 개막한 5월 11일 '주식 담보로 5억원을 차입해 자사주를 매입했다'는 뉴스의 주인공,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를 만났다. 통성명을 마치자 우리는 직진했다. "신약 개발은 승자독식 게임이라 돈이 투입되는 적절한 시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신약기술 식민지를 벗어나려면 미쳐 버리지 않고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신약개발 선진국과 견줘 기울어진 생태계를 한탄했는가하면,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며 그는 또 전의를 불태웠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가 신약개발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는 단군신화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을 화제에 올렸다. 어라, 홍익인간이 왜 여기서 나오지? 라고 생각했으나, 강렬한 그의 눈 빛과 이견조차 결레가 될것같은 진지함에 압도된 까닭에 웃지 못하고 꾹 참아야 했다. "우리나라가 신약개발에 적합한 이유는 말이에요, 단군신화에도 나오지만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 때문이에요." "아네, 홍익인간. 인간세상을 복되게 한다'는. "아니죠,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죠." 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곧바로 수정 당했다. 신약개발 연구자, 즉 과학자의 언어는 무심코 뛰쳐나온 나의 말보다 정확했다. 그의 주장은 신념에 차 언짢을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복되게 하거나, 이롭게 하거나 그게 그거 아냐"라며 속으로 소심한 반론을 되뇌이는 사이 그는 "갈길이 바쁜데, R&D 비용 만들랴, 매출 걱정하랴 바이오벤처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단군신화에서 돌아오니 다시 현실이었다.

LG화학 23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18년(2022년 당시는 16년) 등 신약개발을 필생의 목표로 세워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승부를 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연히 내 기억의 앨범에서 소똥을 경단으로 빚어 자신의 거처로 힘겹게 가져가던 소똥구리를 떠올리게 했다. 소년의 눈에 자기몸보다 몇 배나 큰 경단을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밀고 가는 소똥구리는 너무나 신기해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고는 했다. 그러다 나뭇가지로 경단과 소똥구리를 방해하거나, 경단을 앞에 던져 놓고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이제 돌아보니 여러 이유로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소똥구리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 알을 낳고, 성충을 기르기 위해 여름 땡볕 마다않고 땀 흘려 밀고 갔던 소똥구리의 필생의 사업을 방해한 점, 곤충이든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소중한 삶의 투쟁을 장난 삼았던 점, 생태계에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소똥을 건강하게 해체한 '홍익곤충'을 몰랐던 점, 모두 다 미안하다. 마치 그로인해 멸종된 듯 말이다.

소똥구리는 알을 낳아 성충을 기르기위해 들판의 소똥을 경단처럼 만들어 자신의 거처로 밀고 간다. 자신은 물구나무를 서 땅바닥만 응시한 채 제 몸보다 훨씬 큰 소똥을 굴려간다. 참으로 숭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똥구리는 알을 낳아 성충을 기르기위해 들판의 소똥을 경단처럼 만들어 자신의 거처로 밀고 간다. 자신은 물구나무를 서 땅바닥만 응시한 채 제 몸보다 훨씬 큰 소똥을 굴려간다. 참으로 숭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1월15일, '마음을 나눈다'는 초코파이의 情(정)과 신약개발의 열정(熱情)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났다. 국내 1세대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로써 10건 이상 글로벌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국내 바이오 벤처의 신약 연구개발(R&D)의 역사를 써내려 온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오리온그룹에 매각됐다. 창업 이래 영혼의 단짝(twin flame)이자, 서로에게 페르소나인 김용주 대표(CEO)와 박세진 사장(COO)은 "오리온은 신약개발만 생각하는 레고켐바이오에게 최대한 자율경영을 보장했다"며 만족해 했다. 실제 둘은 "여러기업을 만나왔다. 신약개발은 마라톤게임인데, 제일 중요한 것은 R&D 자율성이다. 연구원들에게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으면 신약개발은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이야기를 시작한지 한달만에 전격 합의에 도달했다"고 이종산업간 결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나만 먹기 위해 사는 과자에서 '마음 나눔의 가치'를 살려내 불세출의 초코파이를 만든 오리온의 돈은 신약개발 바보, 레고켐에게 4분의 3박자 경쾌한 왈츠곡이다.

작년 말 기술수출을 통해 1000억원대 선급계약금을 받은 레고켐이 오리온과 손잡은 것은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사장, 그리고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의 꿈이 원대하기 때문이다. 바로 글로벌 항체약물접합체(ADC) 분야 1위(No.1) 기업으로 성장이다. "신약개발의 경쟁력이 올바른 사이언스와 자본"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시가총액 20조~30조 기업으로 성장해야 신약개발 기업으로서 자생력 가질 수 있다며,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은 기업운영의 일시적 전략밖에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서 그는 2030년까지 ADC 분야에서 글로벌 톱 기업이 되고, 5년내 신약후보 물질의 임상 파이프라인 5개 이상을 확보해 시가총액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야심찬 내용을 VISION 2030에 담았다. 다그치거나 간섭하지 않는 정(情)이 담긴 돈과 '신약 밖에 없다'며 조직을 신약개발 최종병기로 갈고 닦은 레고켐의 열정(熱情)이 화끈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젠맙(Genmab)이나 리제네론(Regeneron) 같은 빅파마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롤모델로 확장돼 글로벌 제약강국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