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A 승인 발판 삼아 "글로벌 원료약 '턴키 CDMO' 도전"

  색 다른 공장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생산 능력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강력한 힘이다. 양적 능력은 물론 질적으로 차별화된 공장은 경쟁력의 원천이다. 완제의약품이 발전한 우리나라는 다양한 역량을 보유한 생산시설이 적지 않다. 색 다른 생산시설을 찾아가 본다.

① 호르몬제 희귀템 지엘파마 안양공장
② 유일무이 카바페넴 독립시설 비씨월드헬스케어 원주공장
③ 한약(생약)제제 국내 최대 생산기지 한풍제약 완주공장
④ 국산신약 케이캡 산실 HK이노엔 오송공장
⑤ 항암주사제 EU-GMP 인증 보령 예산공장
⑥ 중견제약 견인차 알리코제약 진천공장
⑦ CAR-치료제 생산기지 큐로셀 대전공장
⑧ 원료의약품 CDMO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

[끝까지HIT 8호] 퀴즈 시간이다. 실데나필시트르산염, 이소프로필안티피린, 퓨시드산나트륨. 들어본 적이 있는지 한 번 헤아려 보자. 웬만한 제약업계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들어보기는 커녕 처음 듣는 이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팔팔, 게보린, 후시딘은 어떤가. 모른다면 국적을 의심해도 될 정도다. 눈치챘겠지만, 앞서 나온 3개의 복잡한 이름들은 각각 팔팔, 게보린, 후시딘의 원료의약품을 지칭한다. 이처럼 대중은 제품명에 더 익숙하며, 그 제품을 만드는 제약사에 많은 관심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다. 아이폰이 출시되면 애플이 눈길을 받는 것이지, 아이폰의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부각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이폰이 부품 없이는 작동하 지 않듯, 약은 약효를 발휘하는 원료의약품 없이는 '속 빈 강정'이 된다. 그래서 애플은 부품 제조사 TSMC와 어깨동무를 하고, 제약사는 원료의약품 위탁개발생산업체(CDMO)와 손잡는다.

원료의약품 CDMO는 더 많은 양의, 더 높은 품질의 원료를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만들어 약이 환자에게 도달하도록 돕는다. 제약업계의 숨은 일등공신이다. <끝까지 HIT>는 지금까지 코너를 통해 여러 제약사의 공장들을 탐방해 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자연스레 '완제의약품 위주로만 조명한 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완제의 앞 단을 책임지는 원료의약품 전문 CDMO에도 같은 밝기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일 것이다.

문답무용,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곧바로 전화해 약속을 잡고는 빗길을 뚫고 충북 오송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이다.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 전경. (사진 왼쪽부터)사무동, 생산B동, 생산A동이 보인다. / 사진=이니스트에스티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 전경. (사진 왼쪽부터)사무동, 생산B동, 생산A동이 보인다. / 사진=이니스트에스티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은 일종의 바이오 클러스터 안에 위치해 있다. 초행길에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한 번만 핸들을 잘못 꺾어도 바로 옆의 옵투스제약 공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200미터만 더 가면 메디톡스 공장이, 중간에 우회전하면 신풍제약이 나온다. '옆 회사 사람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제약사 공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날 가이드를 자처한 최준호 생산본부장과 김유건 품질경영실장은 기자를 생산 B동 뒤편으로 이끌며 투어를 시작했다. 커다란 은색 탱크들을 눈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박 기자  이 탱크들은 무엇인가요? 여기 부터 보여주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실장  여기가 용매, 그러니까 솔벤트(Solvent)를 저장하는 곳입니다. 옆에 있는 B동과 연결돼 있는 게 보일텐데요. B동 내부에서 '용매 1000리터를 보내라'고 입력하면 여기 탱크에서 용매가 쭉 관을 타고 B동 내부로 이동하게 돼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여기서 원료약품 생산공정이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박 기자  주유소 같은 거네요.

 김 실장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웃음). 소량 생산을 할 때는 그냥 드럼통에 용매를 담아서 들여오는데, B동은 대량 생산 시설이거든요. 그래서 용매 탱크를 따로 구비해 두는 겁니다.

용매 저장 탱크 / 사진=박성수 기자
용매 저장 탱크 / 사진=박성수 기자

이니스트에스티 오송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cGMP 인증이 이뤄진 상태다. 해외 제약사의 원료 의약품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미 해외에서 수주한 제품들이 있어 B동은 생산에 들어갔다. 최준호 생산본부장에 따르면 기자가 투어를 진행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해당 제품에 대한 생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박 기자  B동에서 위탁생산하는 품목이 어떤 게 있나요?

 최 본부장  공개 가능한 제품으로는 중국 제승제약(泽盛药业ㆍGuangdong Zesheng Pharmaceutical)의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가 있어요. A형·B형 독감 치료제입니다. 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다케다(Takeda)의 오리지널 항암제에 대한 판권을 가진 국내 제약사의 동일 제품도 여기서 생산해요.

 박 기자  오셀타미비르라면 2021년에 맺은 수출 건이군요.

 최 본부장  맞아요. 연간 100억원어치의 물량을 2031년까지 공급하기로 했고, 제품 허가 자료는 중국 당국에 다 제출을 해 둔 상태입니다. 내년 2월경이면 허가가 날 것 같아요.

 박 기자  오늘도 계속 생산 중이겠네요.

 김 실장  지금 실제로 생산공정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방금 용매 탱크를 보여드렸죠. 저기서 용매가 나와 공정이 시작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저 용매 파이프라인이 이어져 있는 B동 꼭대기층으로 가 보겠습니다.

원료투입시설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응기가 있다. 용매가 투입되는 관들이 천장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와 반응기로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원료투입시설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응기가 있다. 용매가 투입되는 관들이 천장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와 반응기로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반응기에 원료를 투입할 때 쓰이는 투입구인 맨홀.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가 부착돼 있다. 그 위로는 뒤집어진 플라스틱 그릇 모양의 후드가 보인다.
반응기에 원료를 투입할 때 쓰이는 투입구인 맨홀.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가 부착돼 있다. 그 위로는 뒤집어진 플라스틱 그릇 모양의 후드가 보인다.

이니스트에스티는 다운플로우(Downflow) 공법을 사용한다. 그 말인 즉 물리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서부터 화학 반응을 시작시켜 아래로 보내면서 그 다음 과정들을 거친다는 이야기다. 공장 꼭대기 층에선 합성, 그 밑 층에선 정제와 건조를 하는 식이다. 그래서 B동 꼭대기층에 도착해 복도를 지나 한 공간에 들어서니 반짝이는 '반응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박 기자  반응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김 실장  아까 1층에서 보여드린 용매 탱크에서 용매가 쭉 올라와서, 여기 있는 반응기로 들어가요. 그리고 여기 합성에 필요한 원료들을 각각 추가하는 거죠. 화학 합성이란 게 간단히 말하자면, A원료와 B 원료를 합쳐서 C라는 물질을 만드는 과정인데요. 국 끓이는 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용매가 물이고, 원료가 건더기인 거죠.

 박 기자  그럼 원료도 저기 천장에 달린 관에서 내려오나요?

 김 실장  원료는 파우더 형태라 따로 반응기에 부어야 해요. 여기 '맨홀'이란 게 있어요. 이걸 열고 원료를 투입하는 겁니다. 투입하는 동안에는 오염이나 비산을 막도록 '후드'를 씌우죠.

 박 기자  물 넣고 건더기까지 넣었으면, 그 다음은요?

 김 실장  끓여야죠. 화학 반응을 시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용매와 원료가 섞여 '슬러리(Slurry)'가 만들어져요. 꾸덕한 체 형태로요. 여기까지가 꼭대기 층의 반응기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아래 층으로 슬러리를 내려보내서 정제와 건조가 이뤄져요.

합성된 의약품이 든 슬러리는 아래층 에 위치한 '필터 드라이어(Filter Dryer)' 로 들어가게 된다. 기기가 위치한 층으로 내려가 보면 복도의 바닥 재질부터 다르 다. 반응기가 위치한 맨 꼭대기 층의 바닥은 철판으로 이뤄진 반면, 필터 드라이어가 있는 그 아래 층의 바닥은 매끈하고 반짝이는 재질로 코팅돼 있다. 산들거리며 공기가 순환하는 것도 느껴진다.

 박 기자  윗층과 다른 점들이 있네요.

 김 실장  여기서부터 실제 약 원료로 사용되는 최종 제품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엄격히 관리되는 환경이죠. 바닥이 코팅돼 있고, 외부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양압ㆍ차압 시스템이 적용돼 있고요.

 박 기자  예전의 코로나19 지정 병원들처럼 말이죠.

 김 실장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박 기자  여기 있는 기기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윗층의 반응기랑은 달리 위아래로 길쭉하네요.

 김 실장  필터 드라이어입니다. 반응기에서 만들어진 슬러리를 여과해서 유효한 의약품 원료물질만 남기고, 건조시켜서 최종 제품을 내보내는 기기입니다.

필터 드라이어의 모습
필터 드라이어의 모습
필터 드라이어에서 최종 생산된 원료의약품은 사진의 배출구를 통해 나와 포장된다.
필터 드라이어에서 최종 생산된 원료의약품은 사진의 배출구를 통해 나와 포장된다.

 박 기자  여과 과정과 건조 과정이 분리돼 있지 않네요. 한 기기 안에서 모두 이뤄진다는 거죠?

 김 실장  한 기기에서 다 합니다. 최신 기기죠. 이전에는 여과와 건조가 서로 다른 기기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인력도 더 많이 필요했고 도중에 원료가 오염되거나 일부 소실될 가능성도 있었어요. 필터 드라이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런 단점들이 상쇄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박 기자  필터 드라이어에서 최종 원료 제품이 나오면, 그 다음은 뭔가요?

 김 실장  포장해서 완제의약품 생산 시설로 보내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저희 역할이예요. 완제의약품 생산 시설에 가서 부형제도 섞고, 캡슐에 담는 등 의약품의 최종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 이뤄져요. 흔히들 말하는 DS(원료의약품)를 담당하는 곳이 이니스트에스티이고, 그 DS를 가지고 DP(완제의약품)를 만드는 곳은 또다른 회사가 하게 됩니다.

B동 관람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또다른 시설이 있다. B동의 절반 정도 크기인 A동 생산시설이다. B동이 제약사의 꿈을 이뤄 펼치도록 돕는 곳이라면, A동은 꿈을 꾸도록 돕는 곳이다. 이니스트에스티의 다음 먹거리를 책임질 곳이기도 하다. 원료의약품의 대량 생산을 하기 전, 시험삼아 적은 양을 생산해 최적의 공정을 고민하는 작업이 여기서 이뤄진다.

 박 기자  A동에선 어떤 일들을 하나요?

 최 본부장  A동은 '킬로랩(Kilo Lab)'이라는 소형 생산 장비를 운용해요. 대량 상업 생산을 하기 전, 적은 양의 의약품을 여기서 시험 생산할 수 있어요. 개발 단계가 얼리(early)한 약물을 가지고 오면, 여기서 저희가 만들어 보면서 최적의 공정을 개발하는 겁니다. 준비가 끝나면 B동으로 가서 대량 상업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죠. 또 고가의 의약품의 경우 필요한 양 자체가 비교적 적어서 그런 경우에도 여기서 생산해요.

생산A동에 위치한 킬로랩. 여기서 고가의약품의 소량생산과 시험생산이 이뤄진다.
생산A동에 위치한 킬로랩. 여기서 고가의약품의 소량생산과 시험생산이 이뤄진다.

 박 기자  항체약물접합체(ADC) 생산 사업에도 뛰어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A동에서 이뤄질 일일까요?

 최 본부장  그렇죠. 이미 착수했습니다.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머크 (Merck), 암젠(Amgen) 등에서 투자받은 미국 소재 ADC 개발 바이오텍이 있어요. 그곳과 계약해서 ADC 시험 생산을 했고, 샘플 생산을 완료해서 배송까지 마쳤죠. 계속해서 협업할 예정입니다.

 박 기자  그럼 증설 계획도 있나요?

 최 본부장  지금 여유 공간이 충분해요. ADC 생산 사업이 앞으로 확장되면, 여유 공간에 구획을 따로 나누고 공조 분리를 할 계획입니다.

ADC 생산 CDMO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이니스트에스티. ADC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뻗은 시선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최준호 생산본부장의 입을 빌려 그 포부를 들어봤다.

 최 본부장  기자님, 중간체가 무엇인지 아실까요?

 박 기자  자세히는 모르지만, 원료의약품을 합성할 때 쓰이는 이전 단계의 물질인 걸로 압니다.

 최 본부장  중간체에 대한 규제가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에요. 원래는 원료의약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ㆍ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가 적용되죠. 그런데 그 원료의약품을 만들 때 쓰는 중간체도 GMP 수준의 공정을 요구하는 게 요즘 트렌드가 됐어요.

 박 기자  아까 B동 꼭대기 층의 반응기에 용매와 함께 쏟아붓는다는 그 물질, 그것마저 GMP 기준으로 생산해 달라는 거군요.

 최 본부장  그렇습니다. 중간체 생산은 원래 다른 화학 공장에서 하는 일이지만, 거기선 GMP 수준으로 중간체 생산을 하고 있진 않아요. 그래서 규제 발달에 맞춰서 이니스트에스티에 중간체도 GMP 수준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속속 들어 오고 있어요. 글로벌 제약사에서도요.

 박 기자  그럼 이니스트에스티는 일종 의 '턴키(Turn Key)' 원료의약품 CDMO를 최종안으로 두고 달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중간체를 만들어 주고, 개발 단계가 이르다면 A동 킬로랩에서 공정을 개발해 주고요. 그 다음 B동으로 가서 직접 만든 중간체와 직접 개발한 공정으로 원료의약품을 만들어 주는 그림이군요.

 최 본부장  그렇게 하겠다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어도, 장기적으론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 cGMP 인증까지 이뤄진 상태니까요.

 박 기자  결국 이니스트에스티가 오늘 보여준 모든 것들의 함의는 글로벌 진출이네요.

 최 본부장  맞습니다. 중간체 사업도 결국은 대량 수주를 해야 수지가 맞게 됩니다. 글로벌 수준의 사업을 하는 회사와 손 잡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무역 리스크도 자꾸 발생하다 보니 가까운 한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거든요. 이니스트에스티가 여기서 다할 수 있는 역할이 커지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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