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메디톡스 주장 '균주 유사성+영업비밀 유출' 등 인정
'아메리칸 드림' 희망 vs 배상+재허가 위기…"대법원 갈 밖에" 

양 측 입장을 다투는 변론기일만 21번, 서로 입장을 확인하는 준비기일만 21번, 두 번의 감정, 그리고 양 측 사이에 이어진 수 백여 건 서류까지. 2017년 10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보툴리눔톡신 '나보타'를 두고 벌였던 영업비밀 침해금지 1심 소송 결과는 메디톡스 승리로 마무리됐다.

국회에서 한 마디가 7년간 소송으로 이어져 이제야 첫 막을 내리는 상황. 양 측 입장이 명확하게 갈리면서 이번 승부는 회사 사활을 걸 또다른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보여 앞으로 결과가 주목된다. 히트뉴스는 소송 결과와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을 톺아봤다.

 법원의 판결 

400억보다, 제조정지보다 뼈아픈 '균주'

서울중앙지법 제61민사부(부장판사 권오석)는 10일 오후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메디톡스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먼저 대웅제약과 대웅이 메디톡스에게 손해배상금 400억 원을 지급하고, 메디톡스에 균주를 인도하며 이를 대웅제약 측이 사용할 수 없도록 회사 사무소, 연구소, 공장, 창고 등에 보관된 독소 제제 완제품, 반제품을 폐기하라는 주문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2016년부터 양 측이 제기한 이른바 '균주 도용' 논란을 두고 벌이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이번 소송에 쟁점이 됐던 △균주를 도용했는지 △메디톡스 직원이 영업비밀을 대웅에 전달해 회사가 이를 부정취득했는지를 어떻게 판단했는 지 볼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먼저 메디톡스의 균주는 메디톡스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과거 식약청장을 지냈던 양규환 박사가 국내에 이를 들여왔고 메디톡스 정현호 대표가 이를 받아 제품화했으므로 메디톡스의 균주 소유권은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것이다.

균주 동일여부에서는 일부 불일치는 있지만 종합했을 때 동일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감정 결과 두 균주가 유전적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업비밀 유출 부분에서는 메디톡스 전 직원인 이 모씨가 대웅과 기술 자문계약을 맺었고 이를 추론해 선택적으로 메디톡스의 정보를 활용했다고 봤다. 이를 통해 나보타의 허가를 약 3개월 단축했으므로 3개월간 제조판매 금지를 명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다만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정보사용 부분에서는 일부만을 인정해, 대웅은 손해배상 금액 501억 원 중 두 회사가 각각 기간을 나눠 연 5%와 연 12%의 이율을 적용, 총 4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양 측의 입장은 완전히 갈리고 있다. 특히 지난 해 검찰이 영업방해 등을 이유로 대웅제약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과 상반되는 탓에 반응은 더욱 극과 극으로 갈렸다. 메디톡스는 사실상 '완승'이라는 표현으로 대웅제약의 주장을 물렸다고 밝혔다.

메디톡스 측은 "지난 2017년 10월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공정 도용당했다며 대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한 이후 5년 4개월 만에 정당한 권리를 되찾았다"며 "이번 판결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독소 제제에 조치한 21개월간 미국 내 수입 및 판매 금지 명령이 그대로 국내 소송에 반영된 것"이라고 평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은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등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내려진 명확한 판단"이라며 "대한민국에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음을 확인해 기쁘다"고 전했다.

또 "이번 판결을 토대로 메디톡스의 정당한 권리보호 활동을 확장할 것"이라며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불법 취득해 상업화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추가 법적 조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이 명백한 오판이라며 즉시 항소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와 거의 동일한 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과 관련 "유전자 분석만으로 유래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면서도 추론에 기반한 판결로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계를 보인 점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집행정지 및 항소를 즉각 신청할 것으로 나보타 사업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지속할 것"이라며 "철저한 진실 규명을 통해 항소심에서 오판을 다시 바로잡고 K-바이오의 글로벌 성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한 마디 

'균주 도둑질' 의혹으로 기나긴 소송전의 시작 

그동안 여러 이야기는 있어왔지만 그 시작점은 2016년 국정감사에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휴젤과 대웅제약이 각각 부패한 통조림과 축사에서 균주를 채취했다고 공개한 것과 관련, 정부가 허술하게 독소 관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자못 다르게 흘러간다. 메디톡스가 그해 10월 보도자료를 내면서 대웅제약과 휴젤에게 각 사 보툴리눔톡신 제제의 원료인 균주 기원을 규명하자는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이다.

메디톡스 측은 당시 휴젤의 보툴렉스와 대웅제약 나보타에서 생산에 사용하는 보툴리눔 균주를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발견 획득했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경쟁사들은 처음에는 이같은 메디톡스의 행동이 경쟁사를 방해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대응을 자제했다.

상대방 측의 반응이 이어지지 않던 그 때 메디톡스는 자사 제품의 염기서열을 공개하며 나보타 등은 국내에서 추출하기 드물며 독성을 방출하는 시퀀스가 100%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예고했다.

메디톡스의 이어진 문제 지적에 결국 대웅제약도 2016년 11월 초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 대응을 예고했다.

메디톡스는 이후 201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지방법원에 자사의 전 직원 이모 씨가 대웅 측에 자사의 보톨리눔톡신 균주와 제조공정을 전달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대웅제약과 미국 파트너사인 알페온 그리고 에볼루스에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2017년 미국 법원 사건의 경우 해당 법원이 사실상 소송을 중단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대웅과 메디톡스 등 주요 관련인이 한국인인 탓에 한국에서의 소송을 진행한 뒤 만약 소송을 한국사법당국이 '관할권 없음'으로 취급하지 않거나 소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에나 이를 맡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법원의 답변에 메디톡스는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지주회사인 대웅 및 대웅제약를 상대로 보툴리눔균주 및 독소제제 제조기술정보의 사용금지 및 손해배상청구 등의 소를 제기했다고 공시했다. 오늘 이 사건의 시작이다.

 

 6년의 소송전 결말 
두 회사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소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됐던 것은 바로 균주 감정이었다. 당초 이번 감정을 치르기 위해 양 측은 기관들에 검증을 요청했지만 거절을 당하기도 했고 양 측이 어떤 감정방식을 진행할 것인지 논의하기도 했다.

더욱이 감정 방법 등에서 양 측은 SNP를 비롯해 WGS 감정 등 다양한 방법을 요청했지만 이번 법원의 판단에는 해당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 소송 중 감정 관련 의견서와 추천 등으로 제출된 서류만 180여 건에 달했다. 감정인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도 수 차례의 논의가 이어졌다.

두 회사는 서로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인 선정에도 한 치의 밀림이 없이 다퉜다. 대웅제약의 경우 먼저 유전체 분야의 세계적 귄위자로, 과거 ITC 소송 당시 메디톡스의 진술에 반박했던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 바트 와이머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또 계통분석 결과 해석 분야의 전문가인 경기대 정유진 교수를 함께 증인 신청했다. 이후에는 보툴리눔 톡신 분야 전문가인 마이클 C. 굿너프 박사를 신청하기도 했다.

메디톡스 역시 ITC 소송에 참여했던, 미생물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노던아리조나대 폴 카임 교수와 이승근 씨를 증인 신청했다. 당시 폴 카임 교수는 두 균주에는 다른 균주에서 보이지 않는 둘 만의 변이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대웅제약이 굿너프 박사를 증인 신청한 이후에는 또다른 보툴리눔 톡신 제제인 입센의 디스포트 개발에 참여했던 앤드류 마틴 피켓 박사를 증인 신청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재판은 수 년간 기밀 유출과 투자자 우려 등을 이유로 판결 전 마지막 기일까지 비공개로 진행되며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렇게 무려 6년을 끌었던 소송 '1라운드'가 마무리되면서 양 측의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이는 보툴리눔 톡신을 둘러싼 양 측의 입장차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이다. 

먼저 대웅 입장에서는 ITC 소송에서 패배한 이후 애브비와 교통 정리를 통해 세계 시장 내 판매 문제를 해결한 상황에서 이번 패배가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다.

400억 원이라는 손해배상과 나보타 제조 3개월 정지 등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여기에는 나보타가 최근 대웅에 '효자' 의약품으로 거듭난 상황이라는 점이 작용한다.

투자업계 추산 대웅제약의 2022년 영업이익은 1000억 원을 넘는 1169억 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창사 이후 최대치다. 여기에는 이익률이 높은 나보타의 공이 컸다. 이미 나보타의 누적매출액은 지난해 3분기까지 1079억 원 상당을 기록했다.

업계 내에서도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영업이익률은 50%, 많게는 60% 이상으로 여겨진다. 상대적으로 나보타(수출명 주보)의 경우 가장 먼저 나온 보톡스 대비 낮은 마진으로 시장에 접근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웅제약의 호실적 뒤에는 나보타의 수출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보의 균주를 사용할 수 없다면 새롭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조 정지로 인한 3개월의 공백과 향후 벌어질 손해액을 생각하면 회사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새로운 균주를 찾는다고 해도 새로이 허가를 받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ITC에서 내렸던 결정을 해결하고 세계 시장 발판을 마련한 지 고작 2년 여만에 맞게된 이번 위기가 대웅에게 더욱 뼈아픈 이유다. 

반면 메디톡스는 6년간 끌어왔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 주보의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현재 메디톡스는 지난 2021년 기술수출했다가 반환받은 액상형 메디톡신으로 알려진 'MT10109L'의 미국 진출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2023년 상반기 중 품목허가를 신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3년 애브비(당시 앨러간)에게 최대 3억 6200만 달러의 기술수출을 성사시켰다. 이후 애브비는 2018년 1308명을 대상으로 하는 3상까지 마쳤으나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메디톡스에 계약을 해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ITC 소송 당시에도 업계 일각에서는 보톡스의 경쟁 제품이 될 수 있는 메디톡스의 제품 진입을 최대한 늦추기 위함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제품 출시가 더뎠다. 

결국 메디톡스는 3상 결과를 분석하며 제품 출시를 준비해왔는데,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면서 허가 이후 주춤할 수 있는 나보타의 자리를 다시 채울 희망을 얻게 된 셈이다.

더욱이 애브비가 ITC 판결 이후 대웅 등 회사와 합의하면서 메디톡스의 길을 오히려 막고 대웅의 길을 열어준 불편한 상황에 이번 승리는 메디톡스는 구사일생의 기회를 잡았다.

대웅제약이 주보의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이 보툭스와 향후 진출할 경쟁사의 제품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향후 주보의 자리를 유사한 가격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한국 소송 결과에서 메디톡스 균주의 '원조성'을 입증하는 판단을 내리면서 균주로 인한 허가 문제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진다.

다만 이번 소송은 사실상 그 끝이 대법원 판결을 향하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내부의 반응이다.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양 측이 이번 사안의 패배로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다. 메디톡스는 수출용 제품 허가취소 소송 등 악재 속에서 이번 사안마저 지면 타격이 크다. 반대로 대웅은 이같은 판결이 이어지면 시장 철수까지 감안해야 할 수도 있다"며 "합의 아니면 끝까지(대법원까지) 가는 사안인데 (두 회사의) 골이 깊어져서 상고 가능성이 좀 더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