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배진건 박사(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어떻게 '신약개발'의 멋진 코치가 될 것인가

배진건 박사
배진건 박사

10년 전 쯤 한독에서 막 근무를 시작할 때 레고켐의 김용주 박사와 자주 만났다. 공통분모가 Farnesyl Transferase(FT)였다. 레고켐은 '항체약물접합체, Antibody Drug Conjugate)'의 2세대인 '위치 특이적 결합(Site-specific conjugation)'을 지닌 ADC를 만들기 위하여 FT 효소와 이의 기질(substrate)인 'CaaX' 시퀀스를 이용하여 시스테인(Cys)에 세포를 죽이는 폭탄인 DM1을 위치 특이적으로 붙이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는 Ras 저해하는 항암제를 만들기 위하여 FT 저해제 개발연구를 10년 이상 경험하였기 때문에 레고켐의 그 아이디어에 감탄을 자아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김용주 대표는 화학 분야 국제 학회에서 어느 강사 40년 경험을 강의로 들으니 정말 남다름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본인도 LG를 1982년에 입사하였기에 30년이 지나니 약물 합성의 눈이 뜨이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그래도 앞으로 10년을 더하면 그 강사의 경지에 도달할 것 같다고 느낌을 피력하였다.
 
2012년 나눈 이 대화가 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난 쉐링플라우를 1986년에 입사하였으니 아직 업계 경력이 30년도 안 되었는데 한국의 첫 직장 중외의 '70 학번' 동기 김지배 부사장만 하여도 제약업계 경력 30년을 훌쩍 넘었다. 그는 학부를 마치자마자 75년 중외에 입사하였기에 거기가 시작점이다. 나의 제약업계 시작을 언제로 보아야 맞는 것인가?
 

그 답을 얻으려면 지금의 신약개발전문가 '배진건'이 있기까지 내 인생 길목을 바꿔 놓은 두 분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서울고 정완호 선생님과 연세대 최재시 교수님이시다. 대학을 진학할 때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1970년 연대의대를 지망할 때 소위 '2차 지망'이 있었다. 무엇을 적어야 될까 고민하다 눈에 딱 뜨인 것이 '생화학과'였다.
 
왜냐하면 생물 시간에 DNA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Watson & Crick)은 물론 노벨상을 받은 오초아(Ochoa)의 이야기를 정완호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옐로우북(Yellow Book), 그린북, 불루북 등 영어로 쓰인 소위 원서 교과서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오셔서 앞으로의 미래는 생물대신 '생화학'이 인도할 것이라고 '고삐리'들에게 예언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을 기억하며 '생화학'이라 적었다. 합격자 발표 방이 붙었는데 내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과대학 '생화학과'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교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정 선생님 덕분에 생화학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고 2차 지망에 생화학을 적은 것이 내 운명이었다.
 
한편 최재시 교수님 덕분에 이미 설립된 생화학과에 2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최 교수님이 대단하셨던 점은 이과대학장이셨던 1968년 문교부로부터 미래의 학문 생화학과 설립허가를 받았고 1969년 3월부터 40명 학생들을 모집하셔서 겸직으로 초대 과장을 2년 동안 역임하신 것이다.
 

필자는 Charles J. Sih  교수님(오른쪽)과 졸업식 장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아래 오른쪽 사진).
필자는 Charles J. Sih  교수님(오른쪽)과 졸업식 장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아래 오른쪽 사진).

개인적으로는 의과대학 재수를 생각하던 필자에게 최 교수님이 1학년 2학기부터 '인촌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셔서 등록금 걱정하지 않고 전액장학생이 된 것도 운명이었다. 그랬기에 새로 설립된 대학원 3학기를 끝내고 1975년 8월 7일 부모님, 동생, 무엇보다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김포공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7년 6월 나와 아내는 매사추세츠에서 부모를 떠나 66년형 크라이슬러를 몰고 위스콘신 매디슨으로 향하였다. 약학대학의 Charles J. Sih 교수가 9월 학기 시작전에 실험실에서 일하기 위하여 빨리 오라고 하셨다. 과학원 친구들과 달리 랩(lab) 경험이 없는 필자는 하루종일 랩 생활이 엄청 힘든 중노동이었다. 더구나 토요일에도 랩에 가야하는 빡센 시어머니를 모시고 일하는 경험이었다.

사수인 Joe Hoglum이 학위를 받자마자 S. Dakota 약대 교수로 떠나자 책임이 더해졌다. 필자의 Thesis 타이틀은 'Slow Reacting Substance(SRS) from Cat Paws'이다. Sih 교수의 아들이 천식을 알았기에 이 과제를 시작하셨다. 우리 방에서 5년만에 나온 논문이다. 'Houglum, J., Pai, J.-K., Atrache, V., Sok, D.-E. and Sih, C. J.,  Identification of the Slow Reacting Substances from Cat Paws. Proc. Natl. Acad. Sci. USA, 77, 5688 (1980)'

이 연구의 경쟁자는 스웨덴의 'Bengt Samuelsson'이었다. 그가 1979년 여름 Leukotrien C(LTC) 구조를 워싱턴에서 발표하자 난리가 났다. Sih 교수가 전화로 구조 설명까지 하시었다. 우리 랩에서 결국 구조를 풀은 고양이 SRS-A는 결국 LTD, LTE로 밝혀졌다. 벵트 사무엘손은 1982년에 프로스타글란딘과 관련된 생물학적 활성 물질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LTE의 구조는 필자 논문이 세계 최초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름은 'SRS-Cys'이다.

거실에 모셔놓은 위스콘신대학 박사학위 증서에는 배진건(Jin-Keon Pai)에게 'Given at Madison in The State of Wisconsin, this twenty-second day of August in the year nineteen hundred eighty-two,' 'School of Pharmacy'에서 1982년 8월 22일에 학위를 받아 오늘이 바로 필자가 'Ph. D'를 받은지 꼭 40년이 되는 날이다. 생화학과 졸업생 중 첫 Ph. D.가 됐고 현재 ~500명이 넘는 Ph. D. 중 1번이 되었다. 아무래도 나의 제약업계 경력의 시작을 40년전 오늘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cysteinyl-leukotriene type 1 receptors' 수용체 길항제가 'montelukast'라는 이름으로 천식 및 COPD 약으로 팔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40이라는 숫자의 성서적 의미는 <준비>이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4X10 사순(四旬)인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영적 준비기간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부활 후 40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모세도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한 후에 10계명을 받고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40년간 광야에서 훈련 받고서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40이라는 숫자는 준비의 기간이고 이 훈련을 잘 감당했을 때 영광의 축복이 나타난다.

이제 나도 준비의 기간이 끝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 꼰대가 되면 싫어하는 것 잘 안다. 어떻게 '신약개발'의 멋진 코치가 될 것인가? 400편이 넘는 칼럼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써왔다. 후배들에게 지식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 눈 높이로 쓰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원이고 바람이다. 50을 채우겠다는 욕심은 없다. 단지 여러분의 응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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