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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건 박사(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1978년 영화 '그리즈(Grease)' 팬들의 그리빙(Grieving)

배진건 박사
배진건 박사

지난 9일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 ONJ)'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나이 드신 남자들이 페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멋진 인생을 살다 간 영원한 누님~ RIP(Rest In Peace)' 등으로 애도한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Physical 등으로 4회의 Grammy상을 수상하였지만 중장년 남자들은 뮤지칼을 영화로 만든 'Grease'의 Sandy역 'ONJ'를 기억하는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뮤지컬 영화의 19세 역을 맡은 당시 29세였던 올리비아가 어느덧 73세가 되었고, 상대 남자친구 Danny역 존 트라볼타의 24세에서 68세가 되었다. 필자보다 3살 누이라는 것이 상상이 안 된다.

1984년 결혼한 'ONJ'가 1986년 딸 클로이(Chloë )를 낳고 3년간 휴식기를 보낸 'ONJ'가 다시 음악 커리어를 쌓고자 노력할 때 유방암을 진단받으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스타인 'ONJ'는 유방암을 숨기지 않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직접 알렸다. 투병과 회복 과정을 통해 'ONJ'는 또 한 번 음악적 변화를 맞게 된다. 더 대중적인 팝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유방암 투병 30년 동안 'ONJ'는 유방암 예방 홍보대사 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ONJ Cancer Centre (www.onjcancercentre.org/)'를 설립하여 대중들과 함께 유방암 조기 발견과 치료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올리비아 뉴트 존(오른쪽)과 존 트라볼타의 공연 장면.
올리비아 뉴트 존(오른쪽)과 존 트라볼타의 공연 장면.

'ONJ'는 1992년 그녀의 유방에 혹을 발견하고 곧바로 치료에 들어간다고 팬들에게 밝혔다. 항암제치료 (chemotherapy)와 유방 부분 절제 수술 9개월 후에 암이 존재않는다고(cancer-free) 판명 받았다. 2013년 'ONJ'의 유방암이 어깨로 번졌지만 이번에는 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7년 세번째로 재발이 되었을 때 팬들에게 다시 알리면서 2013년 재발을 밝혔다. 암도 내 인생이기에 내 자신만 간직하기로 정했다. "I thought, 'It's my life,' and I just decided to keep it to myself."  2020년 1월 'ONJ'의 암은 뼈까지 번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일년 후 2021년 2월 'ONJ'는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여 축하하고 즐겼다.

'ONJ'가 지난 30년을 이겨낸 유방암을 더 알아보자. 한국유방암학회 보고에 따르면, 4만6000명의 유방암 환자들의 수술 후 5년 생존율을 보면 0기는 99%, 1기는 98.2%, 2기는 91.7%, 3기는 68.2%, 4기는 30.5% 순으로 병기가 증가할수록 생존율은 떨어진다. 4기는 암 크기에 관계없이 전신 장기 (뼈, 폐, 간, 뇌 등)에 퍼져 있는 상태이다. 2020년 1월 뼈까지 번진 'ONJ'의 암은 4기였다. 

지금까지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인간 표피 성장인자 2형), Ki-67(세포 안 단백질) 발현 정도에 따라 '호르몬 양성 유방암', 'HER2 양성 유방암', 그리고 호르몬과 HER2 모두 갖고 있지 않은 '삼중 음성 유방암'으로 나누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여성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에 단백질이 결합된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를 발현하는 암이다. 'HER2 양성 유방암'은 HER2를 발현하는 암으로 HER2 면역화학 검사 혹은 ISH 검사를 통해 양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HER2는 정상적인 세포에도 근소하게 존재해 세포의 증식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 단백질이지만, 과잉 활성화가 되면 유방암의 예후인자로 바뀌어 세포의 악성화에 관여한다. '삼중 음성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를 모두 발현하지 않기에 치료하기 더 어려운 유방암이다.

'ONJ'의 죽음의 소식과 동시에 유방암 진단과 치료가 새롭게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7일 FDA의 승인을 획득하여 마침내 'HER2 저발현 유방암' 치료제가 탄생한 것이다.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HER2 표적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Enhertu)가 'HER2 저발현 유방암'이란 새로운 정의에 기반한 치료제로 처음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전에 항암치료 전력이 있는 전이성 HER2 저발현 유방암 환자나 수술 후 화학항암제 치료 후 6개월 이내에 종양이 재발한 환자에 엔허투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전까지 HER2 음성 환자는 HER2 양성인 환자와는 달리 내분비치료법을 받을 수 없기에 화학항암제 치료가 받을 수 있는 방법뿐이었다.

FDA가 인용한 국립암연구소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진단될 것으로 추정되는 28만7850건의 새로운 유방암 사례 중 약 80%에서 85%가 이전 정의에 따라 HER2 음성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중 60%가 현재 HER2 저발현 유방암으로 분류되어 엔허투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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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 신청 11일만에  이루어진 이번 FDA 승인은 절제 불가능 또는 전이성 'HER2 저발현 유방암'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DESTINY-Breast04 임상 시험결과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승인으로 HER2 음성  및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 중 이번 승인으로 ~60%가 엔허투에 적합한 환자로 분류될 수 있을 전망이다. 환자들에게는 소망을 품게하는 혁명적인 진전이다.

암이 유관 내에서 발생하여 자라지만 주변 유방조직으로 침투하고 퍼져나가는 성질이 없는 "비침윤성 암"이라 부른다. 전체 유방암의 5~10% 정도로 비교적 드물고 수술만으로도 완치가 되었다고 의사들은 선언한다. 하지만 0기 유방암이라도 이미 암세포가 유방밖에 전이되어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암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오랫동안 조용히 숨어지내다가 기회를 포착하여 서서히 다시 자라기 때문이다.

'ONJ'의 지난 30년 암과의 전쟁은 완치되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한 실상을 다시 알려준다. '그리즈(Grease)'를 기억하는 팬들이 현재는 '올리비아 뉴튼 존'을 먼저 하늘에 보내고 그리빙(Grieving)하지만 '엔허투'라는 인간의 새로운 방패는 미래의 'ONJ'를 40년 이상 지켜주는 윤활유(grease)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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