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건 박사(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의 추모사

10월 3일 한글날 아침 9시, 2박 3일의 '2022 베이직교회 수련회'가 열린 오크밸리에서 막 집으로 돌아왔다. 10월 1일 아침 8시 30분에 떠날 때는 가는 길이 엄청났다. 연휴 행렬 초과 차량의 4시간이 넘는 시간과 비교되게 아침 오는 길은 1시간 10분만에 집에 달려 온 것이다. 수련회를 완전히 마치지 않고 6시 30분의 아침예배만 참석하고 그냥 달려온 것도 이번 수련회 모임에 참석했어야 하는 한 자매의 12시 30분 결혼식에 꼭 참석하기 위함이다.
 
집에 도착하여 카톡을 열어보니 이상한게 떴다. '고(故) 문치장님께서 별세 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이상하여 눈을 의심하며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시 보았다. 허망하게도 그렇게 적힌 것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그 카톡방에는 문치장 대표를 포함한 5명의 카톡방이다. 10월 29일 문 대표 딸의 혼사 전에 14일 금요일에 만나기로 정해졌다. "시간은 저녁 6시로 하고 장소 정한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 카톡방은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로 끝난다.

지난달 30일 금요일 아침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미라티 암젠 등의 경쟁약물처럼 16~19 step 정도 합성이 되니 대학 수준에 많이 했던 9 step 내외 합성 대비 생각보다 합성 성공률이 많이 떨어져서요(30% 정도는 이전보다 더 합성 실패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 고문님, 위와 같은 고민이 있다면 어느 분을 찾아뵈면 도움이 될런지요?"

바이오업계의 시조새 보다 현실적으로 복덕방 노릇의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저없이 (주)카이로드(ChiRoad)의 문치장 대표의 전화번호를 드렸다. 프로세스 케미스트리(process chemistry)에 대한 답을 문 대표처럼 시원스럽게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필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인 차 아내와 함께 저녁 약속 이동 중에 문치장 대표에게 오후 6시 17분 전화를 하였다. "네 배진건 박사님, 지금 문 대표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시기에 상무인 제가 대신 받습니다."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이 상황을 이해하게된 것은 고인이 된 후에 오늘 받은 메시지를 통하여야 알 수 있었다.

내가 문치장 상무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10월 말 대한민국에 'JW중외 연구총괄전무'로 귀국하면서이다. 회사는 필자를 배려하여 팀을 미리 짠 것이다. 시화 공단에서 뒷단을 책임지던 그를 중앙연구소 소장으로 문치장 상무를 임명하여 미국생활 33년만에 귀국한 어리버리한 나를 돕는 주체가 되게 배려한 것이다. 

그 외에도 C&C연구소의 이경준, 바이올로지의 오세웅, 합성의 정경윤, PK의 윤치호 이런 박사들이 문치장 상무와 함께 내 곁에 있었기에 신약개발의 대한민국 'Dream Team'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 곁에 포진하고 있었기에 이런 분들과 같이 대한민국에서 일하면 어느 합성 신약과제인들 못 할까? 지금도 정답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CWP231'을 미국 FDA에 임상허가 신청을 하는 과정도 이런 전문가들이 옆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년 전 모임에서 식사를 하기 전 평소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에서 3번째가 배진건 박사, 그 바로 옆 4번째가 문치장 대표.(사진제공=배진건 박사)
5년 전 모임에서 식사를 하기 전 평소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에서 3번째가 배진건 박사, 그 바로 옆 4번째가 문치장 대표.(사진제공=배진건 박사)

문제는 2010년 말이었다. 전임상 프로세스를 가야할 'CWP231' 대량 합성한 물질의 작은 문제가 생겼다. 거기에 책임을 지고 문 상무는 과감하게 11월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필자도 12월 말에 고문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이듬해 장래가 이미 '이사'로 정해진 오세웅 박사도 사표를 던지고 유한으로 가서 다시 역량을 검증받아 현재 연구소장 전무로 일하고 있다. 문 상무는 2012년 '카이로드'를 만들어 꼭 필요한 이성체를 국내외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회사로 기반을 다졌다.
 
왜 이성체가 중요한가? 신약개발에 약물 중에는 카이랄(chiral) 구조를 갖는 중간체나 물질이 당연히 존재한다. 미국 FDA의 "라세믹 스위치" 지침에 의하면 카이랄 구조를 갖는 의약품의 경우 두 가지 경상체(enantiomer)가 혼합된 채로 판매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약효가 있는 한 가지 경상체만을 함유하도록 순수하게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 그러기에 '카이로드'는 신약개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뿔뿔히 흩어지며 드림팀이 와해가 되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 상무는 JW 중외 연구소를 퇴사한 그 당시 연구소 직원들을 회사 밖에서 친목 모임으로 일년에 4번씩 만나 꿈을 나누게 모임을 형성하였다. 젊은 'Old OB'들은 아직도 '소풍'에서 만나 소풍을 즐긴다. 

오늘 10월 3일 'JW OB' 카톡방은 불이 난다. '너무 황당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줄이었다. 궁금하던 모두에게 "간단히 정리드리면, 28일 충주에서 라운딩 중 갑자기 머리 통증으로 OO대학병원 응급실에서 CT찍고 뇌출혈을 알았으나 감당할 의사가 없어서 원주OO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몇차레 수술했으나 어제 뇌사판정 후 가족들과 어제밤 연명치료 중단결정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상황을 알아도 응급 상황을 대처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문치장 상무님 이렇게 뜻밖에 당신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냅니다. 29일 따님의 결혼식에 꼭 가겠습니다. 가서 눈물이 나도 참겠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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