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회장, 아흔가지 이야기로 '기억이 길이 되다' 회고록 출간
아내에겐 "저 세상에서 만나, 허름한 가게 하나 얻어 다시 동업을"

장성한 자녀와 마주해도 '아버지 김승호'는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나 봅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입안에 맴돈다"는 그의 말 속에는 달콤 쌉싸름한 감정들이 같이 녹아 있음을 우리 아버지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올해 구순(九旬)을 맞은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이 입술 붉었던 소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업인이자 남편이자 아버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온 삶을, 아흔 가지 이야기로 묶어 회고록을 냈습니다.

'기억이 길이 되다(시하기획 출간, 350쪽 분량)'라는 제목의 중보(中甫) 김승호 회장의 회고록은 자신의 양력 생일인 지난 1월 5일 비매품으로 출간했습니다.

2019년 4월 까치발을 떼면 고향이 아스라이 보이는 예산에 보령제약 그룹의 미래를 위한 대규모 스마트 생산시설, 예산캠퍼스를 준공한데 이어 작년에는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을 사회 공익재단에 증여했습니다.

김 회장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혈압치료 신약 카나브의 PM 직도 내려 놓았습니다. 1000억 매출을 장담하며 스스로 PM을 자처했었는데 말입니다. "신약이 없어 매번 외국에서 약을 들여올 때마다 을의 입장"이었다던 김 회장에게 카나브는 처음으로 중남미 국가 제약회사 앞에서 갑의 역할을 하도록 한 신약입니다.  히트뉴스는 회고록에서 네 장면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왼쪽부터 두번째), 김은정 보령메디앙스 대표,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왼쪽부터, 회고록에서)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왼쪽부터 두번째), 김은정 보령메디앙스 대표,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왼쪽부터, 회고록에서)

 # 여든 다섯 번째 이야기 "회장님으로 남지 않을까..." 

"가족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살기보다는 보령약국과 보령제약그룹을 경영하는 창업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는 자식들 마음속에 두 가지 이름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하나는 아버지라는 이름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장님이란 이름입니다. 행여 앞의 이름보다 뒤의 이름이 더 익숙할까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금전적 이익만을 쫓는 기업인이 되지 말아라.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한 가정의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또 어느 가정의 귀한 아들딸, 자녀들도 있다.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주고, 함께 성장하며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인으로서 사명임을 잊지 말아라."

"미래의 보령을 이끌어나갈 손자 정균이에게는 보령가족을 이끌어 간다는 무거운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감을 잊지 않고, 매사에 신중함과 겸손한 자세로 구성원들을 보살필 수 있는 따뜻함과 모든 가족 구성원들 간에 우애의 시발점으로서 모든 역량을 발휘해 주기를 당부한다."

김승호 회장과 부인 고 박민엽 여사가 어느해 리셉션 장에서 같은 자리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 회장이 동업자, 동지라고 부르는 박 여사의 눈길은 김 회장을 향해 있다. (회고록에서)
김승호 회장과 부인 고 박민엽 여사가 어느해 리셉션 장에서 같은 자리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 회장이 동업자, 동지라고 부르는 박 여사의 눈길은 김 회장을 향해 있다. (회고록에서)

 # 여든 일곱 번째 이야기  "저 세상에서 만나, 다시 동업을..." 

김 회장은 아내를 동업자로 추억하고, 미래에도 동업자가 되어 달라고 프로포즈했다.

"창업 동지이자 동업자였던 이는 바로 제 아내였습니다. 약국 문(보령약국)을 연 후 아내는 매끼 머리에다 밥을 이고 날랐습니다. 거래처 관계자들이나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좋도록 하기 위해, 매일 보령약국의 수입금을 다리미로 다렸습니다."

"서른 살 신랑은 아흔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2006년 늦가을 창업 50주년을 1년 쯤 앞둔 어느 날 무심하게 세상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2007년 10월 1일, 보령제약그룹 창업 50주년을 맞는 날, 아내를 창업주로 모시고 그렇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창업의 순간을 함께 하고, 더불어 그 어려움을 이겨낸 동지의 이름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박민엽(朴民燁 ), 저는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다시 그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 만나, 허름한 가게 하나 얻어 다시 동업을 하고 싶습니다."   

1977년 7월 사상 최악의 수해 등 어려움을 이겨내며 계단을 오르내린 '청년 보령'의 정신을 잇고자 현 예산캠퍼스 생산동 입구에 그대로 옮겨 시공한 예 안양공장 중앙 출입 계단.
1977년 7월 사상 최악의 수해 등 어려움을 이겨내며 계단을 오르내린 '청년 보령'의 정신을 잇고자 현 예산캠퍼스 생산동 입구에 그대로 옮겨 시공한 예 안양공장 중앙 출입 계단.

 #여든 아홉 번째 이야기  "우리의 기억은 길이 됩니다" 

스마트 생산시설 예산캠퍼스의 생산동 입구 계단 중간에는 1970년 풍 돌계단이 자리잡고 있다. 안양공장의 통석 계단을 옮겨와 설치한 것인데, 여기에 김승호 회장이 잊지못할, 잊어서는 안되는 사연이 깃들어 있다.

"안양공장은 1977년 수해로 기업의 존폐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임직원의 단합된 힘으로 우리는 그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안양공장은 오늘의 보령을 있게 한 청년 보령의 정신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예산캠퍼스로 옮겨온 이유는 청년 보령의 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에는 잊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잊지 않을 때, 우리의 기억은 길이 됩니다. 길이 또 다른 길을 만듭니다. 할 수 만 있다면, 훗날 언젠가 예산캠퍼스에 있는 안양공장 통석 계단, 그 아래 계단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보령 가족들의 힘찬 발걸음을 영원히 듣고 싶습니다."

보령제약은 2019년 4월 예산캠퍼스에 수령 62년의 느티나무를 심었다. 느티나무는 1000년 이상 생명력을 가진 나무. 김승호 회장은 느티나무를 통해 글로벌 보령제약의 1000년의 꿈도 함께 심었다.(사진제공, 보령제약)
보령제약은 2019년 4월 예산캠퍼스에 수령 62년의 느티나무를 심었다. 느티나무는 1000년 이상 생명력을 가진 나무. 김승호 회장은 느티나무를 통해 글로벌 보령제약의 1000년의 꿈도 함께 심었다.(사진제공, 보령제약)

 #아흔 번째 이야기  느티나무를 심다 

예산 캠퍼스 입구에는 2019년 창업 62주년을 맞은 보령의 역사와 같은 나이의 62년(당시) 된 느티나무가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다. 느티나무는 천년을 살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라고 한다. 해서 김승호 회장이 식수한 것은 천년 보령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저는 나무로 치면 이제 수령 90년입니다. 1,000년은 고사하고 100년도 못 살지 모르는 제가 한 그루 느티나무를 심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떠난 후 보령가족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저와 함께 해 준 모든 분들의 마음 속 어느 곳에 작은 느티나무가 되면 그보다 감사할 일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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