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약제비 관리의 부담은 왜 항상 업계의 몫인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의 급여 확대가 결국 '건강보험재정' 벽에 다시 가로막혔다. 건보재정을 줄일 수 있는 안을 회사가 제시할 경우 급여 확대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정부는 급여 확대의 공을 다시 '회사'에게 넘겼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키트루다의 급여확대는 한국엠에스디(MSD)가 재정절감 방안을 제출할 경우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급여 확대를'보류'한 셈이다.

올해 암질심위원회의 남은 일정 중 이번달 20일 회의가 예정돼 있다. 키트루다가 만약 암질심을 통과할 경우 약제급여평가위원회와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은 일정을 감안할 경우 이번달 암질심 안건으로 상정돼야 올해 안에 급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년여 동안 정부와 끈질긴 협상을 벌여온 MSD는 정부에 새롭게 제시할 협상 전략이 있을까? 정확하게는 MSD 본사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선 한국MSD 측이 두 주체(본사, 한국 정부)를 모두 만족시킬 만한 재정절감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사실 MSD 본사 입장에서 한국 '시장' 진입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제약회사가 아무리 환자의 생명을 위해 소임을 다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윤을 추구 하는 기업'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MSD에게 중요한 것은 키트루다의 적정 '가치'다. 이는 곧 약가로 책정된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말 중국 정부와 기나긴 협상 끝에 중국 국가 보험 약품 목록(NRDL)에 상정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NRDL은 의약품 가격에 대해 정부에서 일정비율(10~100%)로 환급해 주는 정부 급여 의약품 목록이다. 중국과 같이 큰 시장이라 할지라도, 본사 측이 원하는 적정 가치로 인정받지 못 한다면 섣불리 급여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본사 입장이 이와 같다면, 한국 지사가 정부가 원하는 만큼의 약가 인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 지사는 자국에 좋은 의약품을 공급하지 못하고, 정부는 국민에게 양질의 의약품을 한국의 좋은 보건의료시스템에 편입시키지 못 하게 된다.

국내 다국적사 약가 담당자는 지난 3월 <HIT 블라인드>에서 "한국에 신약을 들여올 때,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고려해) 우리 역시 본사와 협의한 끝에 최대한 낮은 약가를 책정해 들여온다"며 "이렇게 해도 정부와 협상을 하게 되면, 결국 약가를 인하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과정이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다 보면 본사 한국 지사를 크게 신뢰하지 못해 한국에 신약 접근성은 더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면역항암제처럼 적응증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약제에 대한 급여 확대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 입장에서도 쉬운 것 만은 아니다.

송영진 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서기관은 지난해 11월 중앙대병원 송봉홀에서 열린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KAHTA) 후기학술대회 '면역항암제 등재 이슈·쟁점' 세션에 "재정을 어떻게 관리할지로 귀결되는데 사실 답이 명확히 떨어지는 건 없다"며 "때문에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기존 제도를 섞기도 하며 다른 제도는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며 면역항암제 급여 기준 마련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송 전 서기관이 언급한 대로, 면역항암제와 같이 고가 신약을 담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는 게 단순히 약가인하 만은 아닐 것이다. 키트루다 급여 확대가 이뤄지기 위해선 어쩌면 약제비를 깎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초고가 신약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급여 제도 자체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약무사무관은 지난해 12월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 어디까지' 국회토론회에서 기등재약 사후평가를 통해 절감된 건강보험 재정을 항암제·희귀질환 치료제 보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끔 '별도의 주머니'를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고가 면역항암제 접근성 제고를 위해 사전약가인하제를 통한 적응증 확대, 기등재약 재평가 후 항암제기금(CDF) 조성, 선별급여 확대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사무관은 "이 상황이 마치 제약사와 정부, 보험자와 건강보험공단 간 힘겨루기·돈 문제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지막에 키를 든 주체는 제약사"라며 "국가 돈주머니에 한계는 있다. 그러나 면역항암제 보장성 강화를 위해 나름 계획을 세워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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