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환자와 만나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

"뇌전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 직장 생활을 잘 하다가 갑자기 발작 증상이 반복돼 뇌전증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환자들의 직장, 학교 등에서 어려움을 겪게 돼요. 약물 치료로 환자 대다수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데도 말이죠."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HIT, 환자와 만나다]를 취재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누구나 암 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김기상 한국MSD Patient engagement leader,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우의 가족이 됐던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던 이들도 뇌전증 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까지.

신 교수는 24일 한국유씨비제약 미디어 에듀케이션에서 '뇌전증 치료의 최신 지견'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히트뉴스는 그의 발표 내용을 토대로 뇌전증 환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24일 선릉 위플레이스에서 한국유씨비제약 미디어 에듀케이션에서 '뇌전증 치료의 최신지견'을 주제로 발표했다. 

우리는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환자들을 '그들'로 규정해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활용합니다. 그들의 학업과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고, 결혼과 임신의 행복한 순간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뇌전증 환우들은 운전의 기회까지 얻지 못 할 뻔 했습니다.

 

뇌전증 환우가 겪는 각종 차별들 

“2014년 해운대에서 뇌전증 환자가 운전을 해 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이유로 당시 뇌전증 환자들의 운전 기회를 전면 제한하자는 입법 활동이 이뤄질 뻔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약물 치료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환자까지도요. 다행히도 뇌전증학회와 국회의 도움으로 전 세계 뇌전증 환자를 조사해 1년 이상 경련이나 발작이 없는 사람은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이 수정됐습니다.

 

뇌전증 환자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직업의 기회를 빼앗기고, 신혼여행 간 뇌전증 환우는 발작 증세로 인해 파혼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뇌전증은 (유전력이 1%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환우들은 자신의 아이도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까 임신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나라 40만명의 뇌전증 환우와 그 가족들은 이런 사회적 차별 속에 질병에 대한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도 마음도 다치고 있습니다.

뇌전증은 어떤 병일까요? 쉽게 설명하자면 뇌전증은 뇌에서 전기에너지가 한 꺼번에 비정상적으로 방출돼 일어나는 증상인데요, 구체적으로 '발작' 증상이 반복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질병입니다. 뇌전증에 걸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발작' 증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술을 많이 마시거나, 잠을 자지 못 해도 뇌가 과도하게 흥분해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켜 일시적인 발작 증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뇌전증은 한 개인의 생애 주기별로 잘 나타는 연령대는 있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즉 선진국과 후진국 국민 모두 비슷한 수준의 뇌전증에 걸릴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이죠.

 

“선진국과 후진국의 뇌전증 유병률을 보면, 0.5~1%로 대게 비슷한 수준을 보입니다. 후진국의 경우 전쟁 등 외상으로 인해 뇌전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반면, 생존율이 떨어져 노화 단계 뇌전증 숫자는 적은 편이죠. 뇌전증은 생후 1년 이내에 가장 높았다가 급격히 낮아지고 청소년기와 장년기에 걸쳐 낮은 발생률을 유지하다가 60세 이상의 노년층에서는 다시 급격히 증가하는 U자형의 형태를 보이거든요.”

 

국내는 뇌전증 환우 40만명 중 19만명이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우들의 어려움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통계 수치도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40만명의 뇌전증 환우 중 19만명이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19만명 이상의 환자가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봅니다. 일부 환자는 자신들이 뇌전증 환우임을 숨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약물을 처방 받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환우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려고 할까요?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뇌전증 환우들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은 환우들보다 실업률 1.7배, 미혼율 2.6배, 이혼율 3배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약으로 충분히 증상을 조절 할 수 있는 뇌전증 환우들도 취업 면접 시 60%가 취업 자체에 어려움 겪고, 일을 잘하고 있다가도 뇌전증 환우임이 알려지면 40%가 해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뇌전증 환우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입니다.”

 

뇌의 전기신호 비정상적 자극으로 일어나는 뇌전증

뇌전증의 원인은 매우 다양한데요, 최근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를 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원인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역학 연구에서는 환자의 1/3 이상이 뇌에 생긴 병리적 변화나 뇌손상의 과거 병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주요한 원인으로는 뇌졸중, 선천기형, 두부외상, 뇌염, 뇌종양, 퇴행성뇌병증, 유전, 미숙아, 분만 전후의 손상 등이 있다고 합니다.

 

“뇌전증은 대뇌 피질(얇은 껍질)이 손상 당하는 것입니다. 뇌종양, 알츠하이머, 뇌출혈, 뇌수막염 등이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뇌의 미세한 출혈을 시작으로 경련과 발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직 현대의학으로 그 원인을 100% 찾지 못 한 영역이고, 원인을 모르는 특발성 뇌전증도 꽤 있고요. 실제로 약물 요법을 쓸 수 없어 수술을 위해 뇌를 절단해 보면, 미세출혈이 일어나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 소인은 1~2% 이고, 이처럼 다양한 후천적 요인으로 발병하는 질병입니다.”

 

뇌전증 환자의 60%는 약물 치료를 받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치료를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약물로 치료가 어려운 40% 환자는 수술, 식이요법, 뇌 심부 자극술 등 다양한 치료법을 병행하게 됩니다.

 

“뇌전증 치료의 기본은 약물 치료입니다. 뇌전증 환우 10명 중 6명은 약물을 끊을 정도로 호전 증세를 보입니다. 60% 환자가 뇌전증 완치 효과를 보이는 셈인데요, 어떤 질병도 약물 치료만으로 이 정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약물을 듣지 않은 40% 환자는 수술요법(뇌 절단), 케톤 식이요법, 뇌자극 심부 자극술 등 증상 완화에 초점을 둬 치료 전략을 세웁니다.”

 

뇌전증 신약의 약가와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 

뇌전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약물 요법. 그렇다면 현재 뇌전증 3세대 치료제로 불리고 있는 한국유씨비제약의 브리비엑트(브리바라세탐)와 SK바이오팜의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잇달아 나오는 신약은 부작용과 복약순응도 측면에서 개선된 결과를 보입니다. 

 

“뇌전증 약물은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적정 용량을 먹는 게 중요합니다. 대부분 처음부터 고용량을 환자가 복용하면, 부작용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약물 서서히 올리는(titration, 적정)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존 약제는 이런 적정 과정만 1~2개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브리비엑트의 경우 처음부터 용량 조절 없이 투여가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치료 용량으로 쓸 수 있는 약제입니다. 최근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세노바메이트도 매우 기대되는 약물입니다. 향후 다양한 임상시험을 통해서 치료 초기 단계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약제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약제의 가장 큰 장점은 ‘부작용’이 매우 낮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이점이 약가에 직접 반영되지 않아 국내 시장 철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실제 지난 2018년 5월 약가협상 등의 문제로 빔팻(라코사미드)는 국내시장에 철수했습니다.

 

“약가의 기준이 기존 약보다 효능이 뛰어나야만 약가를 높게 받을 수 있습니다. 뇌전증 2세대, 3세대 치료제는 기존 약제와 효능은 비슷하지만 부작용을 유의미하게 낮춰 줍니다. 골다공증, 간손상이 있는 환자에게도 안심하고 처방할 수 있는 약제들입니다. 이런 신약을 우대하지 않으면, 오리지널 약제들을 한국에서 처방할 수 없는 사례는 점점 늘 것 입니다.”

 

브리비액트와 세노바이트와 같은 신약은 기존 약제에 부가(add-on)하는 전략으로 처방이 이뤄집니다. 이러한 처방 경험과 단독요법 임상시험이 진행되면서 기존 약제를 대체하는 치료 환경으로 변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뇌전증 치료제가 나오면 기존 뇌전증 환자들이 복용하고 있는 약에 추가한 뒤 효과를 지켜 봅니다. 추가한 약제의 효과를 보는 것이죠. 이후 스폰서(제약회사)는 뇌전증이 처음 발생한 환자를 대상으로 단독요법 연구를 진행합니다. 우선 브리비액트, 세노바이트 모두 단독요법 연구는 진행 중입니다.”

 

또 뇌전증 환우들의 수술을 위해선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데요, 이 때문에 대학병원 급에서 뇌전증 센터 설립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에 대한 고민으로 센터 설립이 쉽지만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던 차에 지난해 7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세연(미래통합당) 의원은 뇌전증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시행해 뇌전증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법률인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제정안은 국가가 뇌전증의 예방·진료 및 연구, 뇌전증환자에 대한 지원·인식개선, 차별방지 등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시행해 뇌전증으로 인한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부담을 감소시키고 국민건강증진 및 복지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장관은 '국가뇌전증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뇌전증관리에 관한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뇌전증관리종합계획 수립 등 뇌전증관리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국가뇌전증관리위원회'를 두도록 했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뇌전증환자에게 직업훈련 지원, 의료비 지원, 심리상담 지원, 재활·주간활동·돌봄 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뇌전증전문진료센터 및 뇌전증관리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자에게 필요한 비용을 예산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위해 35억원을 편성했는데요, 뇌전증 환자들의 수술을 위한 장비는 수십억원 수준이라 개인병원 뿐만 아니라 중소병원 그 장비를 갖추기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장비 마련은 해결됐지만, 이러한 장비를 설치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병원 간 매칭 펀드 조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술 기기 도입으로 인해 미국, 유럽, 대만, 일본 등에서는 뇌전증 치료 효과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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